오전 5시, 알람 시간에 맞춰 휴대폰이 쇳소리를 내며 쨍쨍 울어댔다. 좀비처럼 어기 적거리며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새벽잠을 씻어냈다. 화장대 앞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 며 잰 동작으로 풀 메이크업을 했다. 아침 방송 시간에 맞추려면 미적거릴 여유가 없 었다. 정장 차림에, 계절에 맞는 향수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방송 시작,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멘트를 날렸다. 화면 속 아나운 서가 아니라 본인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간혹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내가 미친 게 아닐까?’”포항에서 활약하
“자네 어디 갔다 왔는가?”회사로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제대 후 새로운 회사를 찾을 생각이었다. 말 년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공장장의 설득에 넘어가 군복을 벗자마자 다니던 회사로 나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쩌다 출근’이었다. 며칠 뒤, 생 산라인을 돌아보고 있던 창업주가 군에서 돌아온 젊은 직원의 손을 덥석 잡 았다. 악수가 아니었다. 일하고 있는 그의 손을 불쑥 감싸 쥔 것이었다. 장갑 에는 기름때가 끼어 있었지만, 창업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기창(100) 경 창산업(주) 명예회장은 어느 날 문득 보이지 않다가
지인들 사이에서 ‘여자 나훈아’로 통하는 여자가수가 있다. 미스임(31). 시원시원한 성격에 강단도 나훈아의 젊은 시절 못잖다. 그리 길지 않은 가수 생활이지만 그의 생 각이나 행보를 들여다보면 나훈아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많다.백석예대 실용음악과를 다니던 시절 그의 별명은 “대구 언니”였다. 동기들보다 두 살 정도 많았기에 ‘언니’였고, 대구라는 수식이 따라다닌 건 사투리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올라가면 으레 이틀만 지나도 ‘서울말 모드’를 켜기 마련, 그는 끝끝내 사투리를 고집했다.“연예계 생활을 하려면 서울말을 써
“짝!”큰형이 동생의 따귀를 찰지게 올려붙였다. 그리고는 종이 쪼가리 하나를 툭 던졌다. 쪽지에는 모 식품회사 신입사원 모집 공고문이 담겨 있었다. “잔말 말고 여기로 가라.” 동생은 형의 불호령에 군말 없이 회사에 지원했다. 동생의 나이는 서른 살, 늦깎이 신입사원이었다. 동생은 잠시 쉬어가는 셈 치고 딱 석 달만 회사에 적을 두고 ‘은거’하기로 했으나 뜻밖에도 그럴듯하 게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입사 4년차에 반장에 올랐고, 2010년 노조 간부가 됐다. 2020년부터 전국식품산업노동조합연맹 대구경북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동시는 동심으로 쓴 시입니다.”예전에는 조금 달랐다. 교장 선생님이 훈계하듯 쓴 동시, 어리광부리는 투의 시가 대부분이었다. 박방희(76) 시인은 다르다. 2005년 ‘푸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시는 아동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동심으로 쓴 시’가 해당 분야에서 주류로 자리 잡는 신호탄이었다. 박 시인은 현재 까지 10여권의 동시집을 냈고, 그중 2편은 교과서에도 실렸다. 그의 시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전달하고픈 교훈을 담은 시나 어린아이인 척 하는 시가 아 니라, 그야말로 아이의 마음이 담긴 시를 쓴다. 일반
조승형 작가는 대중들에게 ‘부적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화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 만 관람객들이 워낙 “부적을 연상시킨다”는 말을 쏟아놓고 가는 바람에 지난해 12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 서 열린 개인전의 타이틀도 ‘문자 추상-행운의 부적’이라고 붙였다.서각으로 입문한 예술의 세계굳이 ‘부적’이라는 생각 없이 보아도 그림 속에는 어떤 기원이나 소망이 넘실댄다. 제목만 봐도 ‘대길상집’ ‘결실’ 등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할 때 쓰일 법한 단어들을 싹 모아둔 느낌이다.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작가에게 오래된
미나리는 봄나물일까, 겨울나물일까.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에 겨울 나물이란 게 있을 리 없지만 아삭한 식감과 입안에 가득 차는 청량한 기운은 꼭 겨울의 새벽 공기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옛 선비들은 미나리를 두고 날씨가 추울수록 더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는 채소라고 칭송했다고 전한다. 옛사람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생으로 미나리 한 줄기만 입에 넣어봐도 여타 봄나물을 모두 제치고 미나리가 가장 이르게 맛 보는 봄나물이 되었는지 금세 납득이 된다. 청량한 느낌만큼이나 해독작용 에 탁월해 산성화된 몸을 중화시켜주고 혈액을 맑게 하
일본은 우익의 망언과 한류가 공존하는 나라다. 소위 독도나 위안부와 관련된 태도를 확인할 때마다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국 가수들과 드라마가 흥행 신기록을 세 우는 현상을 보고 있자면 이건 또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우 찾은 대답은 “대중은 윗 분들의 행태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정도다. 무관심도 관심 이상의 적극적인 의사표명이 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 없는 구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은 그럴 수도 있겠단 생 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여러 모로 신기한 나라다.‘병합’? 사실은 ‘폐멸’시키려 했던 일제한반도와 관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머리와 가슴은 겨우 한뼘 거리지만, 때로 화성과 금성처럼 거리가 멀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가슴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데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죽은 아내를 위해 쓴 제문에도 간혹 그런 구절이 발견된다. 제문이라면 그저 형식적인 글로 생각하기 쉽 지만, 남편들이 쓴 제문은 연서와 전기를 합쳐놓은 느낌이다. 시집온 후 죽음에 이르 기까지 다사다난한 삶의 기록과 함께 죽은 이를 향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배어있다. 남
“마늘소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직접 먹어보니 정말 대한민국 최고 한우네요!” 13일 2021년 미스대구 진(善) 이희원(25ㆍ경희대 무용학부)씨와 미스대구 엠 플러스한국 김하늘(22ㆍ계명대 무용학부)씨가 의성 마늘소 전문 판매장인 ‘덕 향’을 방문했다. 이상문 의성축협조합장은 이날 ‘의성마늘소 1일 해설사’로 나서 서 마늘소의 장점과 탄생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그야말로 음식 해설과 시식이 어우러진 ‘명품 한우 미식회’였다. 이희원씨는 “마늘 하면 빠지지 않는 건강식품인데 소에게 먹여서 건강한 한 우를 키운다는 발상
31일 제11회 대구한국일보 효콘서트가 대구 엑스코 5층 컨벤션홀 에서 열렸다. 매년 어버이날을 전후해 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 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3번이나 공연일을 미룬 끝에 2021년 의 마지막 날 ‘효콘서트’를 겸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송년회’로 진 행됐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방역에 만전을 기했다. 공연장 입구 체온 측정 을 비롯해 마스크 착용, 손 소독, 간격 띄어 앉기 등의 일반적인 방 역과 함께 지난해에 이어 실내 대기와 사물의 표면에 붙은 바이러스 와 세균 등을 멸균하는 것으로 알려진 UVC 플라즈마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과 주목받는 부분이 다를 때가 있다. 이를테면,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들보다 더 쫄깃 한 긴장과 재미를 선사하는 조연들 같은 경우다. 김구 철 경기대 교수가 쓴 ‘선비문화를 찾아서’도 그런 측면 이 있다. 제목에선 선비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겠다 고 천명했으나 의외로 간간이 언급되는 여성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간다. 조선 500년 최고의 천재라고 일컬어 지는 선비를 압도한 시골 할머니부터 젊은 나이에 남 편을 잃고 80까지 장수하며 홀로 가문을 일으킨 숙부인까지, ‘한 많은 조선 여성’ 류의 이야기만 듣고 지내온 사람
“새벽 5시에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이 꽉 차 있었어요. 너무 놀랐어요. 한국이라는 나라의 진짜 모습을 본 것 같았어요.” 2015년 한국에 온 절멍개래(32ㆍTsolmongerel)씨의 고백이다. 2012년에 관광 차 한국을 다녀갔을 때는 전혀 몰랐던 풍경이었다. 3년 후 다소 절박한 상황에서 한국을 찾았다. 몽골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오빠가 운영하는 물류회사에서 일했지만, 경기가 나빠져 외국에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 로 한국행을 택했다. 처음 한 일이 아파트 입주청소였다. 새벽에 일어
“어릴 때부터 농사가 좋았어요.” 경북 고령에 사는 최민호(24)씨는 2년차 농부다. 평생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 동네 친구 3명은 모두 대구로 나갔다. 최씨는 “친구들이 직장생활하면서 고충 털어놓는 걸 보면 마음 편한 건 농사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농사로 인생의 승부를 보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내비쳤다. 정식 경력은 2년이지만, 중학교 때부터 외삼촌과 어머니가 함께 경영하는 육묘장에서 모판을 나 르면서 농사를 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치는 바람에 지체장애1급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 혼자 농
차 사고로 아파트 한 채 값이 날아갔다. 직원이 회사 차를 몰다가 사고를 냈다. 차가 뒤집어졌다. 사장 은 모든 일을 조용히 덮기로 했다. 경찰에 신고를 할 경우 사고를 낸 직원이 구치소에 들어가야 할 상황 이었다. 그는 이전에 특정 사건에 휘말려 기소중지 상태였다. 사장은 직원이자 친구인 그를 위해 사고를 불문에 붙였고, 회사가 2,000만 원에 달하는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80년대 말, A간장 경북 총판에 서 일어난 일이었다. “마산으로 가라.” 덮는다고 덮일 일이 아니었다. 사장의 부친이 이 사실을 알아버렸다. 불호령이
‘최진사댁 셋째 딸’이라는 노래가 있다. 여러 가수가 불렀다. 이 노래를 우리나라 사람이 작곡했다고 생각 하는 이들이 많다. 토속적인 내용의 가사 때문 일 것이다. 대만에도 그런 노래가 하나 있다. 번안곡인데 대만 사람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어, 그 거 대만 노랜데?”할 가능성이 높은 곡이다. 원 곡은 우리나라 가요이고, 대만으로 건너간 지 는 50년쯤 됐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 곡이 뭔지는 몰라도) 상 당히 공을 들여서 만든 대곡이었겠다 싶을 것이 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작곡 과정이 이렇다. 1963년, 여름이 막 시
“2020년에는 매출이 40% 감소했습니다.” 코로나19와 농업은 크게 상관없는 듯하지만 실제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전하는 상황은 다르다. 청도 농부 곽영준(63)씨는 청도에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 9곳에 자신이 직접 기른 농작물들을 공급하고 있 다. 직매장의 특성상 지역을 방문하는 이들의 숫자와 판매고가 직결된다.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로 발길이 뜸해지면서 매출이 급락했다. 곽씨는 “2012년에 귀농한 이후 가장 힘든 한해였다”고 말했다. 귀농 10여년 만에 매출 10배 상승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기 전까지 그의 ‘전원일기
반야월. 대구 사람에게는 동네 이름이다. ‘반야월 막창’ 하면 군침이 돈다. 반야월이란 작사가가 있었다. 본명은 진방남.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2012년에 작고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곡은 ‘불효자는 웁니다’(1940년), ‘꽃마차’(1942년), ‘울고 넘는 박달 재’(1948년),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년), ‘산장의 여인’(19
“‘아름답다’란 말이 몽골어로 ‘열다섯 살’을 뜻하는 ‘아르반 타브 타이’에서 나왔다 는 말 들어보셨나요?” 대구대학교에서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보양네메흐 마르가트(22)는 2019년 9월에 한국으로 왔다. 몽골에서 10달 정도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생활도 겨우 2년 반 남짓이지만 한국어가 원어민 수준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많 이
“택시 기사가 ‘우리 한국인도 몽골반점 있다’고 했을 때 속으로 생각했어요. 에이, 거짓말!” 빌렉 온다르히(25)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2017년에 한국으로 왔다. 몽골 국립대 에서 국제관계학 전공으로 졸업장을 받은 후 대구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몽골 시 절부터 그룹 ‘빅뱅’의 골수팬이었지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한국을 잘 몰랐다. 어학당 을 다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