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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돌려다오’의 작사가 선배를 ‘디스’했다?

  • 입력 2021.12.05 00:00
  • 수정 2021.12.14 13:43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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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대구 사람에게는 동네 이름이다. ‘반야월 막창’ 하면 군침이 돈다. 
 반야월이란 작사가가 있었다. 본명은 진방남.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2012년에 작고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곡은 ‘불효자는 웁니다’(1940년), ‘꽃마차’(1942년), ‘울고 넘는 박달 재’(1948년),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년), ‘산장의 여인’(1957년), ‘소양강 처녀’(1969년), ‘열 아홉 순정’(1959년), ‘유정천리’(1959년) 등이 있다. 
 부산 피란 시절 반야월과 관련해 해프닝이 일어났다. 대구 반야월과 작사가 반야월이 모두 얽 힌 사건으로 작사가 정두수 선생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밀양 출신 작사가 월견초(1936 ~ 1974) 가 일으킨 ‘필화사건’으로 기록했다.  
 월견초는 부산에서 대구로 올라오는 기차를 탔다. 당시엔 무척이나 긴 여행이었던지 술과 간 단한 안주를 사들고 기차에 올랐던 모양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술을 즐겼다. 술자리에서 그의 인기는 최고였다. 개인기 덕분이었다. 이를테면 기차나 기차역이 등장하는 노래를 부를 때면 기 적소리와 기차 바퀴소리를 기막히게 재현했다. 뮤지션들의 젓가락 장단에다 그의 효과음이면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이 넋 놓고 구경했을 만큼 재미난 공연이었을 것이다. 
 “여기가 어디야?”
 취기가 올라 깜빡 졸다가 잠을 깼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마도 늦은 밤이거나 새벽이었던 듯하다. 월견초의 눈에 역 표지판이 들어왔다. ‘반야월역’. 글자가 희미했다. 잠에서 깬 월견초는 반야월역 풍경을 소재로 노랫말을 지었다. 휘갈기듯 써놓고 보니 마음에 들었다. 노래의 제목은 영감을 준 소재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희미한 반야월’
 곡이 발표된 후 작은 소동이 일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월견초가 반야월 선배를 깠 다”는 소문을 퍼뜨린 거였다.  
 본인으로선 얼마나 억울했을까. 역 표지판을 보고 노랫말을 썼을 뿐인데, 그걸 반야월 선배 에게 갖다 붙이다니. 다행히 반야월 선생이 호탕하게 웃어넘기는 바람에 별 일 없이 사건이 마 무리됐다.
 반야월을 진땀 빼게 했던 반야월역은 이제 그 자리에 없다. 2008년 폐역 후, 대구 동구 신서 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전된 건물에는 도서관이 들어섰다. 
 월견초의 삶을 생각해보면, 희미한 것은 반야월이 아니라 월견초였다. 시골(밀양)에서 태어 나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작사가로 살 길을 모색하다가 서울로 올라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젊 음을 보내다가 불혹에도 닿지 못하고 훌쩍 세상을 떠났다. 혹자는 그가 즐겨 마신 막걸리에 문 제가 있다고 했다. 당시 막걸리를 빨리 숙성시키려고 카바이드를 탔는데 이것이 젊은 목숨을 갉아먹었다는 것이다. 
 늘 유쾌하고 넉살이 좋아 사람들과 두루 어울렸다지만 불안정한 삶에 위로였을 뿐 뿌리는 언 제나 흔들렸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도 곱잖았을 것이다. 가수를 ‘딴따라’로 부르던 시절에 시 도 아닌 노랫말을 쓰면서 매니저 노릇까지 했으니, 아마도 별 볼 일 없는 청춘으로 여기는 이들 이 더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고향에서는 별 직업도 없이 이냥저냥 세월 허송하는 허우대 멀쩡한 청년으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그는 청춘의 끝자락에서 생을 마감했다. 소위 조금씩 반응이 올라오는 노랫말은 있었지만 대 박은 요원했던 그에게(그 시절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어서 전속 작사가가 되기 전에는 일정한 수입을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청춘의 시간이란 아쉽고 원망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 그는 희미한 청춘 대신 짱짱한 젊음을 한번 더 누리고 싶지 않았을까. 그가 남긴 노 랫말 중에서 대중의 귀에 가장 익숙한 곡은 ‘청춘을 돌려다오’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 다한 그 사랑도 태산 같은데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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