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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우리 민화서 영감을?

민화 속 로시난떼

  • 입력 2020.11.09 00:00
  • 수정 2020.11.13 15:02
  • 기자명 심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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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의 명작 ‘돈끼호떼’에 등장하는 말 로시난떼를 연상케하는 이 그림은 1982년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의 민화(상권)’ 에 수록된 것이다.

수박물관 소장 민화도록엔 돈끼호떼 속 로시난떼가…


1. 7년 전 지역의 한 신문사로부터 민화전시 기획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2억 원짜리 사업이었는데, 내 몫으로 2천만 원을 달라고 했더니 신문사 관계자가 어이없어하며 없던 일이 됐다. 그때 계명대학교 출판부가 발간한 대학박물관 소장 민화도록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3년 전 여름엔 대구 수성구에 자리한 ‘박물관수’(관장 이경숙)를 찾아 민화도록을 몇 권 훑어봤다. 다화(茶畵) 그림을 몇 점 구해볼까 싶어서였다. 

2. 박물관수가 소장한 민화도록은 내가 이전에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중 오늘의 압권은 이 세르반테스의 명작 ‘돈끼호떼’ 속 로시난떼를 연상케 하는 말(馬)이 들어간 민화였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르반테스의 돈끼호떼가 세상에 나온 건 1605 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완역돼 나온 건 368년 후인 1973년의 일이다. 세르반테스 가 혹시 우리 민화를 보고 로시난떼를 구상한 건 아닐까 하는 유쾌한 상상력이 발동 했다. 이 정감 가는 해학적인 말을 보라.(*첨부 사진) 단박에 돈끼호떼와 로시난떼가 떠오르지 않는가. 

3. 하나 말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상한 돈끼호떼와 로시난떼를 그것이 원래 세르 반테스가 이야기했던 것으로 잘못 알아왔다. 엉터리 번역 탓이다. 우리는 그 잘못된 번역본을 보고 돈끼호떼 상을 구축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 을 하는 사람’ 혹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돈끼호떼’라고 칭한다. 이는 엉터리 번역에 따른 명백한 오류다.

4. 돈끼호떼 완간 400주년이었던 지난 2015년 안영옥 고려대(스페인어과) 교수는  “정말 돈끼호떼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뒤 “(돈끼 호떼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이상적인 해답을 주는, 인류의 바이블”이라고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돈끼호떼 번역서를 내놨다. 

5. 안 교수는 “세르반테스는 돈끼호떼에 자기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설명이 필요하다 고 적어 놓았다”며 “세르반테스는 종교재판과 검열이라는 비인간적인 정치권의 압 박으로, 인간성이 유린당하고 학문이 교살당하는 사회에서 돈끼호떼를 집필했다”고 탄생배경을 설명했다. 17세기 스페인 시인 케베도는 돈끼호떼에는 “경이로운 다양한 메시지가 내포돼 있 다”며 “두려움과 경의를 표한다”고 고백했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돈끼호떼 속에서 자신의 근원을 발견했다”고 역시 고백했다.

 6. 안 교수는 말한다.
“젊은이들은 세르반테스가 터무니없는 기사소설의 모험담을 우롱할 목적으로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인지할지 모르나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인생의 단계 단계 마다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돈끼호떼는 한마디로 ‘분별 있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과 탁월한 이치의 보고 (寶庫)’라는 게 안 교수의 판단. 그리고 인생 경험 두루 쌓은 지천명쯤은 돼 읽어야 그 진가를 알아볼 것이라는 게 안 교수의 생각이다. 

7. 돈끼호떼 속 ‘그토록 여위고 마른 몸’ 로시난떼가 민화 속에서 금방이라도 달려 나 올 것 같다. 우리 민화는 돈끼호떼만큼이나 보물이고, 보고인데 대우를 못 받아 안타 깝다.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수는 대구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귀한 장소고, 박 수 받아 마땅한 곳이다. 나는 박물관수의 이경숙 관장과 언제고 한 번은 꼭 세계무대로 뛸 꿈을 갖고 있다. 며칠 전에도 이 관장과 그런 ‘꿈 수다’를 실컷 떨었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은 여러 번 상상해도 시간 아깝지 않다.

(출처: 『심지훈 살이집-보통글밥』 pp290~293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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