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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행위만도 누덕·적덕하는 일 10년 전 차에 빠져 5년 전부터 차 나눠요”

차 고수들

  • 입력 2020.07.12 00:00
  • 수정 2020.11.13 10:02
  • 기자명 심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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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여산 심지훈은 2009~2010년 무렵 다연회 운경 양보석 선생에게 보이차를 사사했다. 그 뒤 10년째 선생과 차를 교류하며 선생한테 배운 대로 차와 다기를 지인에게 나누고 있다.

1. ‘차 마시기’는 흔히 다도(茶道)로 표현된다. 찻잎을 다관에 넣고 우려 마시는 행 위- 그 일련의 과정에 도와 예가 담겼다는 의미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다도는 녹 차 마시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차라 하고, 다도라고 할 때 이를 쉽게 풀면 ‘녹차 마시는 법’쯤 되겠다. 신라 고려 조선 2,000년간 곳곳에 차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로 차는 양반과 스님의 문화였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대표적인 차 애호가로 고운 최치원, 포은 정몽주, 다산 정약용, 완당 김정희, 초의 의순, 김육 등이 있다. 이 땅 한반도의 대표적인 ‘차 선수’였던 만큼 관련 에피소드가 지금까지 회자된다.

차를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선수가 초의선사다. 그가 우리 차 문화를 엮 은 ‘동다송’을 지었기 때문이다. 하나 초의가 ‘동다송’을 엮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차 스승 다산 정약용의 영향 때문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산과 초의, 두 선수는 1809년 강진에서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다산이 스승 이 되고, 초의가 제자가 된다.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던 초의는 다산과 차를 마시며 세 상살이를 논하다 틈틈이 다산초당을 그려 그림으로 남겼다.

 추사로 잘 알려진 완당 김정희와 초의가 만난 건 1815년의 일이다. 서울서 미팅을 가졌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이 미팅으로 40년간 ‘베프’로 지냈다. 추사가 제주도로 10년 유배를 갔을 적엔 매년 차를 챙겨 보내는 의리를 보였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알려진, 이방원의 수하에게 선죽교에서 철퇴에 맞아 생을 마감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단심가’의 저자이자 주인공 정몽주는 돌솥에다가 차를 끓여 마실 정도로 차를 애호했다. 다동(茶童)을 대동하고 돌솥에 차를 끓이게 하고, 시회(詩會)를 여는 행위는 그 시절 차 애호가들의 다반사긴 했다.

 이 땅에서 천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치원은 손꼽히는 다인이기도 했다. 최 치원이 얼마나 차를 사랑했는지는 그의 초상(조선, 1793년)에 잘 나타나 있다. 화승 평 일과 찰호가 그렸다는 이 초상은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언제고 한 X선 촬영에서 동자 두 명이 깜짝 발견됐다. 그 중 한 명이 차 공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동법 주창자였던 김육은 ‘유원총보’를 지어 차에 관련된 고사와 차의 효능을 두루 담아냈다. 이는 조선 중기 차 문화, 지식수준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하나 주지하다시피 이들은 모두 ‘녹차 선수’였다.

 

 

 

2. 현대에 와서 차 선수, 특히 보이차 선수를 꼽으라면 나는 두 사람을 꼽는다. 한 사람은 보이차 다법에 관한 선수 고, 다른 한 사람은 보이차 전반에 관한 선수다.

 이들 이야기에 앞서 먼저 짚고 갈 것이 있다. 위에 이 땅의 차 선수들은 어떻게 선수가 됐나. 그들은 차를 사랑하 고 즐기면서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했다. 적어도 차에 관한한 그들의 명성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차 즐기기 법이 있었 기에 오늘날 ‘차 선수’로 통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의 보이차 다법 선수로는 경북 의성 태양마을의 김동윤 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정몽주처럼 차를 끓여 마시는 걸 즐기지만, 자사(다관) 2개를 이용해서 차를 즐긴다. 하나의 자사에는 뚜껑이 있고, 다른 하나에 는 뚜껑이 없다. 뚜껑 있는 자사에 우린 차가 뜨거우니, 뚜껑 없는 다른 자사에 부어 적절한 온도를 맞추어 마신다.  나는 김 촌장의 다법을 ‘분다법’이라고 명명했다. 솥에 끓여 마시는 정몽주의 방식을 점다법(마른 찻잎을 끓는 물 에 부어 우려냄)이라고 하는데, 김 촌장은 그걸 차용하면서도 자신만의 다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 다음 보이차 전반에 관한 선수로는 양보석 다연회 회장을 나는 주저 않고 꼽는다. 그는 ‘차에 예를 갖추며’ 보 이차를 즐기는 진정한 다인이요, 도인이다. 아무리 하찮은 보이차라 할지라도 마실 수 있는 것이면 묽어질 대로 묽 어진 끝물까지 귀하게 여기고 마신다.

그는 보이차 감정의 숨은 고수이면서, 일개 장사치가 아닌 만큼 차를 나누는 데도 인색함이 없다. 보이차를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7~8시간은 기본. 밤새도록 차에 취해 마시는 것도 다반사. 시간 계절 환경 기분 분위기 따라 각양 각색의 보이차를 선발해 마신다. 양 회장은 “그때그때 어울리는 보이차를 가려 마실 줄 알아야 진정한 다인”이라 고 말한다.

 오늘 새벽엔 김동윤 촌장의 다법으로, 양보석 회장이 가려낸 10년 된 보이청차 타차를 마신다. 분다법은 가히 놀 랍니다. 다구가 단번에 단출해진다. 잔, 자사 2개, 공도배(숙우)가 다다. 기가 막힌 아침이다.

3. 나는 차를 마신 지 10년이 됐다. 차를 마시는 행위, 그 행위만도 누덕·적덕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 이 차에 흠뻑 취해 수소문해 좋은 차를 사 모았다. 다기도 기회가 될 때마다 사 모았다. 이렇게 사 모아서는 지인과 인연이 닿는 사람들에게 다기와 차를 나눈 세월이 또 5년이다. 차를 즐기다 보니 그 좋은 차를 나만 알고 지나칠 일 이 아니라 좋은 이들과 나누는 것이 다인의 옳은 자세라 여겼기 때문이다. 차는 마음의 평화를 추스르고 연장시키는 방법 중 으뜸이다. 차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커피가 아니라 차다. 이 단순한 사실을 가까운 이들에게라도 알리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차 고수가 되는 길이 아닐까, 차 고수들 앞에서 감히 생각해 본다.(출처: 『심지훈 살이집-보통글밥』 pp57~60 증보)

 

 


차 나눔의 뜻에 대하여
(심지훈 1979~)
 

아, 이 복됨을 어찌할꼬 중국 옛법에 따르면 차를 나눈 사람은 한 가족이 된다는데 남녀가 호감을 표시할 때 차를 권한다는데 마음에 들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들이킨다는데 사위를 맞이하기 전 장인 장모는 차로써 융숭하게 대접한다는데 살아가면서 혹 자기 딸로 인해 힘든 일이 생겨도 이때를 생각해 잘 참고 극복하라는 의미라는데

차는 혼례법에도 깊이 스며있다는데 송나라 땐 약혼을 ‘차를 받았다’는 의미로 수다라 했다는데 약혼 축의금을 다금이라 했다는데 또 신랑이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을 다례, 납폐 보내는 일을 하다, 신부가 예물 받는 걸 ‘차를 받았다’하여 흘다라 각각 했다는데

이것이 청나라 때 삼다지례, 즉 혼인의 3가지 법으로 변모했다는데 청혼하는 것은 하다, 혼례식을 정다, 신방에 들어가는 걸 합다라 했다는데 고로 차를 나눈다는 의미는 가족에 버금가는 친교를 뜻하는 것이라는데

나는 한때 그 의미를 잘 모르고, 나누면 무조건 좋은 것인 줄 알고 차를 자랑삼아 나누고 좋은 일했다고 우쭐댄 적 있는데 귀한 차, 좋은 차 일수록 사람을 가려 내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몰랐던 것인데

지난날을 후회하고 반성한다 참고로 예로부터 재혼한 여자는 두 집안의 차를 마셨다 하여 수치로 여겼다 하네 요즈음은 ‘부끄러울 취(恥)’를 ‘취할 취(醉)’쯤으로 알고 안하무인격으로 날뛰는 치들이 너무 많아 모두 예를 몰라 그런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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