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70평생 한 길, ‘고독한 춤꾼은 춤춰야 행복하다’

[이 사람] 백년욱 한국무용가

  • 입력 2015.11.01 00:00
  • 수정 2015.11.05 16:48
  • 기자명 강은주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으니 뿌리를 깊게 내려서 꽃과 열매를 맺도록 힘쓰겠습니다.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첫 합동공연이라 감회가 남다르고 긴장도 됩니다.”

지난 5월 백년욱(70.한국무용가) 씨는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8호 ‘정소산류 수건춤’ 전승자로 지정되어 숙원을 풀었다. 대구무용계의 무형문화재 지정은 제9호 살풀이춤 이후 10년만의 경사라 이목이 집중되었다. 10월 11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2015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제전’ 합동회가 열렸다. 60여 년간 춤을 춘 거장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연은 무형문화재라는 무게감을 깨고 눈에익은 듯이 정겨웠고 유례없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이번 공연은 무형문화재 등록을 위해 오직 한길만을 고집하며 성실히 전통을 계승해온 지난 10여 년간의 결실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올해 5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정소산류 수건춤’은 하규일-정소산-백년욱의 전승계보로 이어졌다. 무형문화재는 3대에 걸쳐 100년의 역사가 있어야 신청자격이 주어지며 당대에는 이룰 수 없는 업적이다. 10살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백씨는 1955년 정소산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60여 년간 총 36회의 개인발표회를 한 대구무용계의원로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했던 아버지는 우연히 최승희의 무용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당시 5살이던 맏딸(백년욱)의 손을 잡고 동네 무용학원(원장 강상규 전 안동대교수)을 찾은 것이 춤을 추게 된
계기였다. 아버지의 기대처럼 시작부터 재능을 보인 백씨는 얼마 후 스승과 함께 ‘파랑새’라는 한국무용으로 무대에 섰다. 10살이 되던 해, 당시 가장 유명했던 정소산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정식으로 무용계에 입문했다. 예술적 재능이 넘쳤던 막내고모는 어린 시절 백씨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린 마음에 하기 싫은 날도 있었지만 늘 막내고모는 백씨의 손을 잡고 무용학원에 데려다주었다. 10년 후 정소산 선생은 오직 백씨에게만 분원을 내어주며 후계자로 삼았다. 재능 있는 많은 제자들이 거쳐 갔지만 스승은 백씨만을 제자로 인정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소산류 수건춤’의 보유자이자 전승자로서 맥을 잇게 되었다. 오로지 정소산 선생의 춤만 배웠고 외골수 한 길만을 걸었다. 그렇게 춤은 숙명이 되었다. 현재 백씨의 3남매가 무용을 전공하였고, 집안전체에서 총 9명이 무용을 하여 무용명가를 이루고 있다.

‘정소산류 수건춤’은 경상도지방의 독특한 춤사위다. 마지막 궁중무희 정소산 선생의 춤원형이 보존된 입춤형식의 작품이다. 특징은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이 결합된 춤사위로 장중함과 단아함, 절제미와 즉흥을 동시에 내포한다. 소박하고 투박하며, 우아하며 섬세하다. 정중동의 절제와 흥이 나면 역동적이며 기개가 넘친다. 인간 삶의 희로애락과 한과 흥을 오롯이 수건에 담아 다양한 춤사위로 녹여낸 역설적 역동구조로 완성된 신명의 춤이다. 형식의 즉흥이 아니라 감정의 즉흥이 다양해서 즉흥무, 흥춤이라고도 한다. “한국 춤은 무거워야 합니다. ‘춤은 거무처럼 추어라’고 스승께 배웠습니다. 거미가 집을 집듯 조용히, 무겁게, 큰 획을 긋듯이 춤을 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춤의 바탕을 이렇게 설명했다. “춤의 기본은 반복입니다. 반복하다보면 호흡이 정리되고 자세가 바르게 됩니다. 한국무용은 오래하다 보면 내면으로 채워지는 내공이 생기며, 이 나이까지 춤을 출 수 있는 저력이 됩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무용을 출 수 있는 DNA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무용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 체질에 맞게 자기 식으로 즐기며, 한곡 정도는 제대로 출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 애환이 많은 민족일수록 한을 승화시키는 여러 형태의 예술이 발달하였다. 대구흥춤은 서양 집시의 플라멩코와 크로스 오버되면서 집시의 미소와는 또 다른 조용한 나라 한국, 동방의 미소로 여운을 남긴다.

글=강은주 기자 tracy114@dghankooki.com
사진=김홍배 사진작가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