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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14년째 차디 찬 영안실에 누워있는 해군이병

  • 입력 2012.01.13 00:00
  • 기자명 김용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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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마치고 귀대한 지 하루 뒤 고향에서 숨진 채 발견된 현역 사병이 14년째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다. 사망 원인 규명과 처우 등을 둘러싸고 유족과 군 당국이 법정 다툼을 벌이면서 장례 절차도 밟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하고, 군 당국도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이 사병이 얼마나 더 냉기로 가득 찬 이곳에 누워있어야 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첫 휴가 때 의문의 사체로 발견

해군 N(당시 21) 이병은 1998년 9월 부모가 살고 있는 경북 김천시 S아파트 화단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석 달 전인 98년 6월 해군에 입대, 훈련소를 수료하고 경남 진해시 함대사령부 소속 전함 갑판병으로 배속된 뒤 첫 휴가를 나왔다 귀대한 다음날 아침이다.

군 헌병대의 행적조사결과 그는 휴가 마지막 날인 9월27일 오후 3시6분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김천역을 출발, 오후 5시32분 마산역에서 내린 뒤 진해에서 이모씨 등 부대 동료들을 만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헌병대는 N 이병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 및 정밀조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해 투신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후 부친의 사업부진과 가정사 비관으로 자살했다'는 내용이다.

N 이병 부모는 군의 조사를 신뢰할 수 없었다. 입대 100일만에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이 자진해서 열차편으로 귀대한 정황이 뚜렷했던 것이다. 더욱이 투신자살일 경우 심한 출혈과 골절이 있어야 하지만 시신이 깨끗하고, 입고 있던 청바지도 N 이병의 옷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N 이병 부모는 '타살'의혹을 제기하며 시신 인수를 거부,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N 이병은 경북도립 김천의료원 영안실의 차가운 시신 보관함 속에 잠들어 있다.

유족과 군 법정다툼

N이병의 부모가 국방부를 상대로 10여년 가까이 힘겨운 싸움을 하는 사이 한줄기 빛이 생겼다. 2008년 11월 N 이병의 사인에 대한 조사에 나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한 것이다. N 이병의 부대 현문일지 내용 중 '이○○외 5명 휴가 후 귀대함'이란 당초 기록 중 '5'가 '4'로 수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N 이병의 부대 복귀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이 군의문사진상규명위는 부대원에 대한 조사를 통해 "N 이병의 자살은 가혹행위와 무관치 않다" "비록 자살이라도 가혹행위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었다면 순직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휴가 말미에 귀대하기 위해 부대로 향했던 N이병이 어떻게 고향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유족들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의 결론을 토대로 "부대에서 타살된 후 누군가 시신을 옮긴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후 유족들은 각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N 이병의 국가유공자 지정과 국립묘지 안치를 요구하는 싸움을 벌여왔다. 하지만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자살'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유족들은 지난해 6월 대구지법에 국방부를 상대로 국가유공자 지정 행정소송을 제기, 법정공방을 벌이게 됐다.

N 이병 언제쯤 편히 잠드나

우여곡절이 거듭되는 사이 유족들은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 사체 냉장 보관함이 8기뿐인 김천의료원은 사망 다음해인 99년 9월 '병원운영 곤란' 등을 이유로 유족을 상대로 '장례식장 사용료 청구 및 유해 인수소송'을 제기, 2005년 6월까지 3건의 재판을 모두 이겼다. 이로 인해 N 이병 가족들은 재산을 압류당하기도 했다. 시신 보관료로 유족들이 물어내야 할 돈은 무려 2억여원. 대구지법 김천지원이 2005년 6월 체납액에다 결제일까지 매일 5만원의 시신 보관료를 물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의문사진상규명위가 "시신 보관료의 부담은 국가에 있다"는 입장을 밝힌 데 따라 김천의료원은 국방부를 상대로 시신 인수를 요구하는 한편 시신 보관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국방부는 체납 보관료를 대폭 감액할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신 인수와 관련해 국방부는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는 답변만 하고 유족 측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시신의 군 병원 이송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

유족 측 변호사는 "N 이병의 귀대 당일 부대 현문 통과자 명부에 귀대자 수를 축소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유족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라가 되다시피 한 N 이병이 편안한 안식처를 찾을 수 있을지 여부도 이 재판결과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한편 의문사 논란으로 10년 이상 보관 중인 현역사병들의 시신은 전국에 20여구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천=김용태기자 kr88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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