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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시라고 쓴 것들은 다 시가 아니더라”

  • 입력 2017.12.19 00:00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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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로애락.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이어놓은 성어지만 삶의 과정을 설명하는 느낌도 든다. 달떠서 기쁘다가 마음대로 안 돼 화가 나고, 그런 처지에 서글퍼하다가 문득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한 기쁨을 찾는 과정을 설명한 듯하다.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요약한 성어가 희로애락이 아닐까.

문차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익은 봄날’은 생의 여정을 짧은 언어들로 축약해놓았다. 시인은 희로애락은 봄, 길, 강, 돌이라는 소제목으로 표현했다.

봄은 출발이다. 희망을 품고 욕망의 질주를 시작하는 즈음이다. 근사하게 말해서 꿈이던, 거창한 말로 야망이던, 사람은 누구나 알을 깨고 하늘로 솟아오르고 싶어 한다.

시인의 봄은 서서히 쇠락하는 꿈을 묘사한다. ‘그곳’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한시도 떨치지 못하는 / 그를 / 천천히 단념하면서’라고 노래한다. 시 속의 ‘그’는 사람이 아니다. 꿈이나 야망, 혹은 희망이다. 최소한의 자존심일 수도 있다.

시인이 돌아가는 곳은 몸만 두고 떠나왔던 곳이다. 언제나 거기 있었지만 한 순간도 마음을 붙이지 않았던 곳. 시인의 706호 아파트 풍경이 그려진다. ‘나 이제 돌아가리’에서 묘사한 706호는 ‘뽀글뽀글 된장국 끓는 소리 /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 곳’이고 ‘잔소리를 반복해도 즐거운 음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시인은 “나 돌아왔소!” 하는 대신 펑펑 울기로 한다. ‘돌아가서 펑펑 울 수 있는 / 그곳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 

다음 소제목은 ‘길’이다. 시인은 어떤 길을 가고 싶었을까. ‘하루’에 답답한 마음이 비친다. ‘이 저질의 하루 / 시인의 시가 될 수 없는 것들과 / 막 살은 하루’. 시인은 시인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 살았다’고 자책한다.

그에게 시의 길은 무엇일까. 그는 ‘들풀2’에서 ‘내 어찌 들풀로 살지 않으리오’라고 말한다. 시에서 들풀은 큰 나무와 대비된다. ‘저 위의 것들’ 혹은 ‘위의 것들’과 대비되는 낮게 자라는 풀처럼 살고 싶다고 한다. 그 낮은 곳에서 시인은 길을 찾았다.

소제목이 ‘강’으로 접어들면 시인은 성숙한다. 유난히 ‘가을’이라는 말을 많이 가져온다. 강도 성숙한다. ‘강물3’에서 시인은 ‘제 뜻은 접어두고 다 받아주다니 / 한 번도 요동치지 않고 / 거스르지 않고 / 한날한시 같으니’라며 강의 넉넉한 품을 칭송한다. 그 넉넉함이 곧 성숙을 가져온다.

봄에서 출발해 길, 강을 거쳐 시인은 바위 앞에 선다. 바위 앞에서 고백한다.

‘지난날 시라고 쓴 것들은 다 시가 아니고 / 내가 사랑한 것도 다 사랑이 아니다 / 모든 것은 한낱 유치한 장난에 지나지 않아 / 저 돌에 비하면’ - 시 ‘돌2’ 부분

돌에게 마음을 빼앗긴 시인, 돌의 그 무엇이 시인에게 매력으로 다가왔을까.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인은 돌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돌에게서 돌처럼 단단한 생각과 의지를 붙잡았다. 그것이 봄에서 잉태한 욕망과 자기 부정, 성숙을 거쳐 닿은 결론이다. 변하지 않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하는 돌처럼, 시인은 긴 방황을 끝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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