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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운 공정’이지만 긴장 때문에 더운 줄도 몰라요”

SPECIAL 여름보다 뜨거운 당신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는 정준원씨

  • 입력 2018.08.04 00:00
  • 기자명 이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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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아연은 정말 변함이 없어요.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북 봉화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준원(59)씨. 그는 석포제련소에서 가장 ‘뜨거운 공장’인 주조 2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제철소의 용광로에 해당하는 전기로가 자동화되어 있다. 그래서 고온도의 아연액을 아연괴로 바꾸는 주조공장이 제련소 전체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다. 

정 씨는 여기서 인생의 절반을 보냈다. 

“아연이 가장 품질이 좋은 온도가 약 480도입니다. 펄펄 끓는 아연액을 주조하기 전에 불순물을 걸러 내는 과정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아직까지 사람이 하고 있어요. 로봇이나 소프트웨어 기반 시스템에 맡기기 힘든 노하우들이 있습니다. 장인(匠人) 정신을 갖지 않은 사람이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 전 인도에서 Pb(아연순도) 25 이하의 고품질 아연 500톤을 주문 받아 단기간에 생산해 냈던 것은 정 씨가 자랑하는 실적이다. 

“아연순도 30 수준만 돼도 꽤 높은 수준의 금속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몇 달 안에 25 이하까지 낮춘 것은 저희의 자부심입니다.”정 씨의 삶은 석포제련소의 성장과 궤적을 함께한다. 그는 1980년 무렵, 석포제련소가 1년 조업량이 10만 톤이 안 되던 시절에 입사했다.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1970년대 공고 시절 실습생으로 다니게 되면서부터였어요.”

70년대 봉화는 국내 3대 광업 도시였기 때문에 꿈을 가진 10대, 20대들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정 씨도 석포제련소에 입사하면서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지금도 봉화군 석포리는 경상북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곳이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 보면 아이들이 확실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대부분 제련소 직원 자녀들입니다. 여기 공장에도 젊은 직원들이 많아요. 내 생활을 꾸려갈 터전이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죠.”

아연 제련 공정은 자기 자신을 깎고, 다듬고, 주물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연 제련 공정은 대단한 개인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 순간이라도 제조 과정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긴장과 집중을 필요로 하죠. 기본적으로 감시 조업이기 때문에 안전이 제일 중요합니다.”

정 씨의 평생 제련 공장 일을 하면서 터득한 인생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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