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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가리는 문경새재를 넘어갔을까?

시민기자 맨발축제 참가기

  • 입력 2020.09.17 00:00
  • 수정 2020.11.24 12:40
  • 기자명 시민기자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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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에게 비는 찬스다. 물이 불어나면 평소엔 엄두도 못 냈던 보도 날렵하게 뛰어 넘는다. 본능을 따라 윗물로 윗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고기에게 비는 노는 물을 바 꿀 수 있는 하늘이 내린 기회다.

문경새재로 향하는 길, 산이 구름에 잠겨 있었다. 아랫도리는 구름에 가린 채 고개 만 겨우 빼놓고 있는 산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도로는 비에 잠기기 직전이었다. 비가 폭우로 돌변하는가 싶더니 자동차 바퀴가 조금씩 헛돌았다. 바퀴가 물에 떴다. 날치처 럼 수막 위를 붕붕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비를 뚫고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고갯길을 향해 꾸역꾸역 전진했다.

문경새재 초입부터 물소리가 콸콸거렸다. 10년 안쪽에 문경새재에 이만한 비가 온 적이 있었던가. 1관문 즈음에서 물밑을 살펴봤다. 여느 때 같으면 툭 튀어나온 눈으로 사람 그림자를 살피며 촐랑촐랑 돌아다니던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녀석들도 윗 물로 달려갔을 것이다.

문경새재 계곡엔 피리 같은 녀석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쏘가리도 보인다. 쏘가리는 한자어로 궐어(鱖魚)다. 궁궐 궐 자가 들어간 덕에 선비들의 방에 걸리는 민화의 모 델이 되기도 했다. 과거에 급제해야 궐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궐어가 얼마나 상서로 운 고기였을까.

10분을 걷자 시원한 빗물과 뜨거운 땀이 뒤섞였다. 우산을 받쳐들었는데도 소금 치 듯 뿌려대는 빗방울에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

“진흙이 내 발가락에 깎지를 끼는 것 같네.”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파고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느낌 때문에 쨍쨍한 날보다 궂 은 날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경새재 행사도 벌써 10년째 나름의 ‘즐기는 법’ 을 터득한 이들이 적지 않다. 비가 오면 땡볕에 얼굴을 그을릴 걱정도 없고 흙이 말랑 해져 걷는 맛이 배가 된다. 올해는 여기에 비 오는 날 걷기의 미덕이 하나 더해졌다. 왁자하게 떠들면서 올라가는 여성 참가자에게 배웠다.

“우산 쓰고 걷느라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결돼 버리네, 호호!”

비탈이 심해졌다. 물소리는 더 거칠어졌다. 헉헉대는 길손들에게 그만 내려가라고 으르렁대는 듯. 그럴수록 오기가 생긴다. 이왕 가는 거 2관문까지는 가자, 문경새재 한번 넘어볼까? 하는 대화들이 오간다. 걷는 맛이 좋아서 힘들어도 갈 수 있을 것 같 아! 물에게 귀가 있다면 태풍을 만난 파도처럼 속이 뒤집을 것이다. 늘 아래로 아래로 흘러 어느 한군데 높거나 낮은 데 없는 수평선을 만들고서야 걸음을 멈추는 이  위대 한 평등주의자에게 산을 오르는 이들은 ‘반골’들일 것이다.

2관문까지 걷는 사람은 대부분 맨발이다. 발바닥이 본능을 깨운 까닭이다. 맨발로 걸어보면 발바닥을 간질이는 흙의 손길을 뿌리치기 힘들다. 시원한 빗줄기에 땀을 씻 고 산의 맨살을 밟으며 걸어가다보면 어느새 관문이 다가선다. 흙맛에 매료된 이들이 경험하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2관문의 성벽을 손으로 짚은 후 하산했다. 허리를 휘감아 끌어당기던 중력이 이제 는 슬금슬금 등을 떠밀어 준다. 내려오는 시간은 올라갈 때의 반도 걸리지 않는다. 누 군가는 묻는다.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느냐고. 산밑 커피숍에 앉아 있어도 시원 한데 굳이 땀 흘려가며 시원한 그늘을 찾아가는 까닭이 뭐냐고. 질문은 말로 할 수 있 지만, 대답은 말로 안 된다. 직접 걸어봐야 답을 알 수 있으니까.

하산 후 물소리가 더 시원하다. 올라갈 땐 으르렁대는 듯하더니 내려와서 들으니 박수 소리 같다. 그나저나 쏘가리(鱖魚)는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까지 갔을 까?

올해는 코로나19로 지친 마음과 몸을 문경맨발페스티벌에서 달랠 수 있었다. 오랜 장마에 날씨가 걱정이었는데 도착하면 비가 그치길 바라며 아침에 출발을 했다. 문경 새재에 도착하니 큰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계획된 행사에 비가 온 것이 아쉬웠지만 빗속에 맨발로 걸으니 색다른 경험을 한 것 같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데로 물안개의 운치가 있었다. 돌아와 촬영한 사진을 보니 알 록달록한 우산 속의 모습들이 정겨웠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의 참여는 아니었지만 즐거웠다. 인천에서 왔다던 어느 노 부부도 내년 행사에도 다시 참석 하겠다며 즐거워했다. 화창한 날이 아니라 조금 아 쉽긴 했지만 나이 들어 빗속을 걸을 일이 없었는데 인생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 을 남긴 것 같다. 내년에는 좋은 날씨와 많은 분들이 함께하는 행사가 될 수 있길 기원한다.

시민기자5기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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