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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OUR 신도청 기행

  • 입력 2018.07.05 00:00
  • 기자명 이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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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포

사)대경문화연구원이 경상북도, 안동시, 예천군의 지원으로 ‘시도민과 함께 하는 신도청 기행’에 따라 나섰다. 웅도 경북의 천년 도읍지 신도청과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의 무대인 안동 부용대, 예천 회룡포, 삼강주막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신도청 기행은 지난해까지 연인원 1만5,000여 명의 시도민이 참가할 정도로 성원을 받았다. 동일한 경로를 따라 안동과 예천의 정신과 문화의 참 맛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회룡포

회룡포는 2000년 인기 드라마 ‘가을동화’의 첫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드라마를 통해 회룡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찾는 이도 부쩍 늘었다. 강변을 따라 걷기만 해도 어디든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회룡포는 명승 제 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성천과 낙동강 상류에 분포하는 감입곡류(嵌入曲流) 지형 중에서도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덕분이다. 회룡포(回龍逋)라는 이름은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것을 용의 형상에 비유한 것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극무늬 형태로 흐르면서 모래사장을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회룡포이며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회룡포 마을은 육지 속의 섬으로도 불린다. 일명 ‘뿅뿅다리’를 통해 주민들이 들고 난다. 기존에 있던 외나무다리가 낡아서 1997년 강관과 철 발판을 이용해 다리를 놓았는데, 걸을 때마다 발판 구멍에 물이 퐁퐁 솟는다 하여 ‘퐁퐁다리’라 불렸다. 이후 신문과 방송에 잘못 알려지면서 ‘뿅뿅다리’라는 더 친숙한 이름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회룡포 마을은 2004년부터 생태체험 관광지로 조성되었으며, 둑길 산책로에는 자두, 배, 복숭아 등 과실수가 심어져 있어 봄이면 화사한 꽃 대궐로 장관을 이룬다.

 

삼강주막

회룡포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삼강주막이 있다. 아담한 초가 건물인 주막 뒤로 500년 넘을 회화나무가 옛 정취를 더한다. 삼강주막이 위치한 곳은 금천, 내성천, 낙동강, 세 개의 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1900년대까지 장날이면 하루 30번 이상 나룻배가 다녔던 교통요지였다. 보부상과 사공들의 쉼터로 번성했던 호시절이었다. 그러나 1934년 대홍수로 모두 떠내려 가 버리고 지금의 주막만 남았다.주막은 2006년까지 마지막 주모인 유옥연 할머니가 운영하다 세상을 떠나면서 방치되던 것을 2007년 새롭게 복원했다. 현재 인근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주막에서는 드라마에서나 보는 마루에 앉아 잘 익은 막걸리와 함께 제철 요리 안주를 맛볼 수 있다.

 

부용대

안동의 하회마을 북쪽, 하회를 돌아 굽이치면서 내려가는 낙동강이 부딪히는 붉은 색의 절벽이 바로 부용대이다. 하회를 연화부수형이라고 하는데, 부용대는 바로 연꽃으로 상징되는 하회마을을 구경하는 전망대인 셈이다. 그래서 이름도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대이다.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의 모습은 이번 투어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회의 좋은 자연경관을 노래한 하회 16경 가운데 적벽호가라는 것이 있는데, 중국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을 부용대와 빗대어 노래한 것이다.

부용대는 양쪽 끝자락에 두 개의 정사를 품고 있는데, 겸암정사와 옥연정사가 바로 그것이다. 중요민속자료 제 89호인 겸암정은 명종 22년(1567) 겸암 류운용 선생이 세워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기르던 곳이다. 숲이 우거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찾을 수 없다. 겸암정은 중층 누각식 팔작지붕으로 지어졌으며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정자는 중요민속자료 제 88호인 옥연정으로 부용대 동쪽에 위치해 있다. 선조 19년(1586) 서애 류성룡 선생이 세운 것으로 임진왜란 직후 고향으로 내려온 뒤 징비록을 구상했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이 정자를 짓고자 하였으나 재력이 모자라 근심하던 중, 탄홍이라는 승려가 10여 년을 시주하여 완공하였다고 한다.

 

겸암과 서애, 두 분은 형제이다. 임진란을 극복한 명재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행적을 남긴 서애와 함께 그의 형인 겸암 역시 학문적 성취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하회마을에서 바라볼 때 부용대 왼쪽에 겸암의 겸암정사가 있고 오른쪽엔 서애의 옥연정사가 서 있다. 부용을 사이에 두고 두 형제는 아직 서로를 그리워하며 후손들에게 못다 한 말들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료제공 : (사)대경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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