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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전국 유일의 초등학생 항일운동 일어난 곳입니다”

이 사람 ‘일제강점기 영주’ 발간 향토사학자 김인순 씨

  • 입력 2019.02.05 00:00
  • 기자명 이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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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영주’ 발간 향토사학자 김인순 씨

‘근대화과정의 역사적 대전환 시기에 우리 영주가 겪은 식민지 수탈과 인간적 박해 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찾아보기로 했다.’

향토사학자 김인순(71ㆍ영주시 풍기읍)씨가 최근 500쪽 분량의 ‘일제강점기 영 주’를 발간했다. 그는 서문에서 ‘그동안 영주의 독립운동을 비롯해 향토사에 언급된 일제강점기 실태가 소개된 바가 있으나 부족함을 깨달았다. 몇 년간 당시 신문을 검 색하고 연구논문을 참고하여 행정, 경제, 산업, 문화, 종교 등 전체적으로 엮어 보기 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저작은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펴낸 결과물이라 더욱 뜻이 깊다. 

“향토의 역사를 찾아보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행정자치와는 달리 중앙에 의지해 역사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기록이 되었더라도 향토 자체의 자 료를 특별히 보관하거나 관리하는 곳은 전혀 없었습니다.” 

초등학생들 “일본은 이 땅에서 물러가라!”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사진물들이다. ‘1937년도 영주 행정관서와 학교’ 사진에는 초가(草家)로 지어진 문수지서, 안정 오계 간이 학교의 모습이 있 다. 지서는 경찰서가 없는 읍, 면 지역에 두어 경찰서장의 업무를 나누어 맡아보는 기관이다.

‘사진으로 본 식민지교육 현장’ 사진에는 어린 학생들이 숙련된 솜씨로 모를 심는 모습과 가마니 짜는 사진도 있다. 어린 여학생들이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맨 손으로 누에를 만지는‘양잠·기타작업 실습시간’ 사진에는 왠지 모를 애잔함이 느껴진다.

 운동회 사진에는 여학생이 앞·뒤로 서서 들것을 들고 달리는 사진이 있다. 들것은 긴 나무막대기에 짚으로 멍석을 엮어 만들었다. 남·녀 학생들이 허리를 90도로 숙이 고 학교운동장에서 신사단 참배를 하는 사진도 인상 깊다. 130페이지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록이 담겨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등학생 항일운동이 영주 순흥에서 일어났다. 1944년 4월 1 일 순흥공립보통학교에서 순흥공립여자양성소가 창립되었고 그해 9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어린 4학년 학생들이 동맹휴학까지 하면서 “일본은 이 땅에서 물러가라”라 고 외치며 교장을 상대로 항일운동을 했다. 이에 당시 교장(中神義雄)은 어쩔 수 없 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항복했다고 한다. 현재 순흥초등학교에는 항일운동기념 비가 있다.’ 

풍기 출신 도지사를 찾아 나선 길

김씨는 일제시대 영주군수를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특히, 일제시대 우리지역 최고 의 관료였던 영주군수를 찾아 1대부터 11대까지의 재임기간과 업적을 소개했다. 예를 들면 4대 전성오군수는 1922년 5월 영주군수로 부임했다. 재직하는 동안 지금 구성공원에 있는 가학루(駕鶴樓)를 옮겼다. 이건기(移建記)는 ‘이 누각은 옛 동헌의 바 깥 문루로서 학교 운동장을 넓힘에 있어 부득이 철거해야 할 사정이므로 이건위원 회를 구성하여 관민이 물력(物力)을 내어 구성공원(龜城公園)에 옮겨 세웠다’고 상 황을 설명하고 있다.

발품을 팔아 새롭게 발굴한 인물도 있다. 주인공은 풍기군 동부리 출신 김병태 도 지사로, 작고한 김계화(전 풍기인삼조합장)옹으로부터 들은 “일제강점기에 풍기 출신 도지사가 있었다”는 단 한마디가 그를 찾아나선 계기로 작용했다.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김병태 도지사의 아들과 연락이 닿았어요. 정장을 입고 있는 전신사진과 상반신 사진을 받고 자세한 이력도 들을 수 있었어요. 또 멀지 않은 곳이 라 유택(幽宅)을 찾아갔는데 당시의 권위를 상징할 만큼 분묘와 비석은 호화스럽게 장식되어 있었으나 돌보는 이 없어 잡초가 우거져 더 방치하면 묘소도 찾기도 어려 울 것 같았죠. 찾아온 흔적을 사진에 담고 돌아서는데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어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 134페이지에 ‘일제강점기 풍기출신 김병태 도지사’라는 소제목으로 자세히 실려 있다.

독립운동이 참가한 초대 인삼조합장, 서울로 끌려가...

풍기인삼조합 설립 배경과 과정도 담았다. 풍기는 인삼의 고장인 만큼 풍기인삼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실었다. ‘풍기를 시작으로 풍기인삼조합(1908년), 개성인삼조합 (1910년), 금산인삼조합(1921년)이 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인삼전매국 에서 발행한 한국인삼사 전 7권중 4권에 재배편을 보면 풍기인삼이 기원최고( 起源 最古)로 기록되어 있다’라고 적혀있다. ‘초대 인삼조합장 이풍환(1866~1933)선생은 인삼재배 체계적인 생산과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노력했을 뿐 아니라 일제의 눈을 피 해 본동 출신 강택진 독립운동가에게 독립자금을 준 것이 발각되어 서울까지 가서 심 문을 받았다. 고령이었고 지역산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행히 옥고를 치르지는 않았다. 선생은 몇 년 뒤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나 풍기지역 14개 단체 사회장으로 장 례를 치렀다’고 적었다. 1933년 6월8일 자택(금계1리)에서 찍은 발인장면 사진을 실 었다. 흑백사진에는 자택에서 장지로 떠나려는 듯 흰 상복을 입은 수백명이 만장과 상여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

책이 나오기까지 가족의 후원과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특히 딸은 휴일마다 국회 도서관 등을 방문해 자료를 찾았다.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 신문자료를 찾아 복사해 보내주는 등 애를 많이 썼다. 

“혹자는 일제강점기 부끄러운 역사를 왜 기록하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부끄러운 역 사도 우리의 역사고 역사는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또한 후세에 교훈이 될 것으로 봅니다.” 

 

김인순씨는...

일제강점기 영주의 저자 김인순 전 풍기읍발전협의회회장은 풍기에서 태어나 20대 때 풍기면사무소 근무를 시작으 로 영풍군청, 보건소, 영주시청, 영주시의회에서 32년 7개월간의 공직생활을 하다가 2001년 12월 정년퇴직했다. 저서 로는 ‘뒤돌아보는 길이 아름답다.’, ‘풍기인삼 천 오백년’, ‘지역산업을 알고 미래를 열자’, ‘근대화의 선구자 구당 이풍환 선생’, ‘다시 태어나도 이 땅에 상, 하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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