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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하루 18시간 먹고, 사자는 18시간 잠만 자요

전준호의 아프리카 기행 ❷ 야생의 세렝게티에서 대한민국을 만나다

  • 입력 2020.06.10 00:00
  • 수정 2020.11.05 11:00
  • 기자명 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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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열기구가 수 백 마리의 누떼 위로 날아오르고 있다. 11월 중 열기구 이용료는 미화 599달러다

글ㆍ사진=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세렝게티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몇 개의 키워드 중 하나다. 세렝게티가 탄자니아에 있는 것은 몰라도 동물의 천국, 아프리카의 대명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워낙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극적인 장면을 많이 봤던 터라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몇 개월, 몇 년을 걸려 찍은 TV 영상의 극적인 장면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었고, 사자 한 마 리 보지 못했다는 후일담도 있었던 탓이다.

 

▲ 기린이 세렝게티 지평선 위로 목을 길게 올리고 있다.

 

하지만 11월의 세렝게티는 절대로 이방인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루 만에 평생 동물원에서 봤 던 사자와 코끼리, 기린보다 많은 동물을 만났다. 누와 얼룩말은 10월부터 북쪽의 케냐 마사이마 라에서 이곳으로 대이동 중이었다.

마사이어로 ‘끝 없는 평원’이란 뜻의 세렝게티는 하늘과 초원이 탁 트여 있었다. 세렝게티를 알 리는 입구를 지나도 길은 끝 없이 이어졌다. 사파리는 나비게이트에서 시작됐다. 오후 3시 평원 한 가운데 살짝 솟은 나비 언덕에서 이방인들은 맹수를 맞을 각오를 다졌다.

짚차 문이 닫히고 뚜껑이 열렸다. 차에서 내릴 수 없다는 신호였다. 풍경이 타란기리와는 딴판 이었다. 나무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 듬성듬성 보였다. 초원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그란츠 가젤이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톰슨 가젤보다 조금 큰 놈이다. 무리에서 벗어난 얼룩말도 눈에 띄 었고, 지평선보다 한참 위로 목을 뺀 기린도 신기했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인 토니는 한 손으로 계속 무전기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현지어로 몇 마 디 주고 받고는 갈래 갈래 흙길을 잘도 내달린다. 짚차가 모여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동물가족들 이 떼를 지어 있었다.

 

▲ 암사자가 새끼 2마리를 이끌고 사파리 짚차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미 사람이 익숙한 듯 경계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장 만나고 싶은 동물은 백수의 왕 사자였다. 전속력으로 달린 짚차 앞으로 7, 8대의 차량이 정체현상을 빚고 있었다. 사자 가족이었다. 숫사자와 암사자 새끼 사자 2마리는 인간을 아랑곳하 지 않았다. 숫사자는 잠만 자고, 암사자는 새끼를 돌보느라 목을 빼고 있었다. 새끼들이 물가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는 모습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계하는 기색도 없었다. 짚차 옆으로 어슬렁 걸어와 흙길 건너편 풀숲에 엎드린다. 새끼도 폴짝폴짝 어미 곁을 맴돈다. 숫사자는 여전히 수면모드다. 토니가 말한다. “코끼리는 하루 18시간 먹고, 사자는 18시간 잠만 자요.” 이 날 깨어있는 사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대부분 보초 서는 녀석 하나를 제 외하고는 암수 가리지 않고 잠만 자고 있었다.

소를 닮은 누가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는 누떼 가 강을 건너다 악어 공격을 받는 동영상이 떠올랐다. 웅덩이에서 물을 먹는 녀석들이 뒤로 움찔 물러났다. 웅덩이 한 켠에 악어가 숨어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물을 마셔야 하는 누떼는 끊임없이 교대로 물을 마시고 빠지고를 반복 했다.

이 녀석들은 머리가 나빴다. 얼룩말과 함께 다니는 것이 증거였다. 누떼의 우두머리는 얼룩말이었다. 얼룩말이 이끄는대로 따라 다녔다. 누떼는 국경 너 머 케냐의 마사이마라에서 먼 길을 이동해왔다. 물을 찾아서다. 사람에게나 국경이 있지 동물의 세계에서는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는 한 동네다.

세렝게티에 좀처럼 보기 힘든 동물이 떴다. 치타였다. 시속 110㎞로 달리는 사바나 최고의 단거리 선수다. 멀리 풀 한가운데 머리만 솟아있었다. 그로부 터 200~300m 옆으로 누떼가 민족의 대이동을 하고 있었다. 치타 때문인지 그가 웅크린 구간 옆을 통과할 때는 전속력으로 뜀박질을 했다. 치타가 누떼를 한 번 덮쳐보기를 응원했다. 누에게는 미안하지만 야생에 온 느낌을 맛보고 싶었던게다. 하지만 치타는 고독한 사냥꾼, 겁 많은 포식자에 불과했다. 끝내 풀숲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상파 ‘라이프 오브 사만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한 어미 치타 사만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초 마사이마라에서 카 메라 앵글에 잡혔던 사만다가 이때쯤 세렝게티로 건너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세렝게티를 통틀어 은둔자를 하나 꼽자면 표범이다.

이 맹수는 결코 풀숲에서 만날 수 없 다. 위장색과 무늬의 보호를 받으며 나무 가지 위에 엎드려 있는 탓에 눈 좋은 사람도 발견 하기 힘들다. 비록 세렝게티에 큰 나무가 많이는 없지만 일단 가지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 나무 그 자체다. 운 좋게도 무전이 날라들었다. 벌써 짚차 여러 대가 표범을 확인하기 위해 달려와 있다. 나 무와 짚차 거리는 20~30m 정도였다. 그런데 도착한 지 5분이 지날 동안 일부 여행객들은 표범을 찾지 못했다. “큰 나무 3그루 중 중간 나무 왼쪽 가지에 엎드려있다”고 해도, 심지어 망원경으로 보는데도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꼬리나 다리가 모두 나뭇가지처럼 보인 탓 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표범을 발견한 사람은 대단하다고 할 밖에 없었다.  아침 사파리 하늘에는 열기구가 떠다니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렝게티는 또 다 른 느낌일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열기구가 사자 무리 속으로 불시착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열기구 티켓 가격이 미화로 599달러란다. 1시간 비행에 아침도 근사하게 나온다지만 70만원은 해도 너무 했다. 이집트 룩소르에서 왕가의 골짜기를 열기 구로 누비는데도 20만원을 넘지 않았다. 세렝게티 한 가운데서 대한민국을 만날 줄은 몰랐다.

세렝게티 홍보관과 열기구 사무실, 식당, 이 나라 고유의 푸른색 보석 탄자나이트 판매점이 있는 세렝게티 한복판에 KOICA라 고 쓰여진 새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과 우호협력, 상호교류, 경제발 전을 지원해 국제협력을 증진시키는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의 영문이름이었다. 이 건물은 한국국제협력단이 세렝게티의 역사와 동물, 기후, 식생 등 모든 것을 소개하기 위해 지은 ‘미디어센터’였다. 탄자니아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요청으로 우리가 무상으로 지 어 2월 중 문을 열게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세렝게티와 타란기리 등 탄자니아 16개 국립 공원을 소개하는 3D 영상관과 사진, 그림 전시관이 들어섰다. 이곳 홍광희 미디어센터장은 “미디어센터는 세렝게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전 세계 여행객에게 전달하는 창구가 될 것” 이라며 “대한민국이 아프리카를 홍보하는 선봉에 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세렝게티가 가슴 속으로 훅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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