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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숲길 솔바람소리 침묵·고요로 마음을 씻다

[삶은 걷기다] 팔공산 왕건길 제3코스

  • 입력 2019.07.08 00:00
  • 수정 2021.01.05 11:53
  • 기자명 이상국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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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대 명산 팔공산은 대구의 진산이자 대구 걷기의 진경이다. 팔공산을 얼싸안는 수많은 산행로 중에서도 왕건길 제3코스는 걷기의 즐거움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부남교에서 물넘재로 이어지는 10여 리 소나무 숲길이다.

특별한 준비 없이 나선 걸음에 명산의 큰 풍모를 조망하고 소나무 사이 맑은 바람 소리를 듣는 기쁨은 더 크다. 거기다 묵연길, 통시바위, 발바닥바위에서 조용히 맞닥뜨린 생각의 갈피들이 내내 말을 걸어온다. 구름 사이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풍경과 먼 발치 산사의 담장 너머 오롯한 석탑이 비취색에 먹빛으로 담채화를 그린다.

제3코스 구간 길이는 5.4km. 왕건길 중에서 가장 길다. 안내판에도 산행 난이도가 ‘상’이라고 한다. ‘멀고 험하다’는데 걸어보면 그리 힘들지 않다. 길이 부드럽고 수월하다.

‘힘들다’는데 힘들지 않은 길

팔공로 공산터널 지나 공산중학교 못 미쳐 미곡교에서 좌회전한 뒤 용수천을 따라 차로 10여 분쯤 올라가면 3코스 출발지인 부남교가 나온다. 부남교에서 이정표와 빨간 리본을 따라 마을 안길을 지나고 논두렁길을 지나며 10여 분쯤 걸으면 묵연센터 정자가 나오고 소나무 숲길이다. 묵연체험길의 시작이다.

제3코스는 대부분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 숲길에서는 바람소리가 잘 들린다. 솔잎과 소나무 가지 사이로 부는 맑은 바람소리다. 이름부터 묵연체험길이다. 묵연(默然)은 말없이 조용하다는 뜻. 갈수록 말 넘치는 세상에서 고요히 입을 닫아야 바람소리가 들린다. 솔바람소리는 마음을 씻는다. 씻긴 마음 아래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묵연체험길은 솔바람소리길, 마음소리길이다.

삼거리를 지나고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꺾어 한 시간쯤 오르면 8부 능선쯤 통시바위가 있다. 왕건길의 지명들은 대부분 왕건과 견훤 간 공산동수전투 과정의 전황이나 일화에서 유래한다. 왕건이 볼일을 보고 잠시 쉬어갔다는 곳. 세상사로 마음에 변비나 설사 앓이 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흔적도 없이 볼일 한 바탕 시원히 지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솔숲을 따라 20여 분쯤 더 걸으면 발바닥바위. 이름 그대로 발바닥처럼 생긴 바위위에 발바닥을 붙이고 내려다보면 동화사 산내암자인 비로암의 삼층석탑(보물247호)이 한눈에 보인다.

비로암 삼층석탑에 담긴 발원

이 석탑에는 통일신라시대 왕권쟁탈의 골육상쟁과 그 혼란수습을 위한 해원·용서의 발원이 담겨 있다. 838년 김명은 사촌형인 희강왕(김제륭)을 겁박하여 자살케 하고 신라 제44대 민애왕에 즉위한다. 그러자 완도에 피신해 있던 김우징과 김양이 839년 장보고 군사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켜 경주로 진군하던중 달구벌에서 민애왕의 정부군과 만나 전투 끝에 승리했다(달구벌전투). 민애왕을 죽인 김우징은 제 45대 신무왕이 됐다.

민애왕은 23세에 죽었으니 재위기간은 1년 남짓. 민애왕을 죽이고 즉위한 신무왕 또한 6개월 후 병사했다. 경문왕(제48대)은 왕권쟁탈로 얼룩진 왕족 내부의 해원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비로암에 민애 왕의 극락왕생과 추숭복업을 축원하는 삼층석탑을 세웠다. 경문왕으로서는 조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민애왕이 원수와 다름없으나 대승적인 결단으로 애장왕 사망(809 년) 후 60여년에 걸친 왕실의 혼란을 수습했다. 비로암 삼층석탑은 그 해원 발원의 상징이다.

발바닥 바위에서 하산길이다. 왕건길 제 3코스에는 소나무 숲길, 묵연, 능선과 능선의 풍경, 유래가 있는 바위, 역사 속 권력쟁투와 해원의 발원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솔바람소리로 시작한 걷기를 솔바람 소리로 마무리한다. 솔바람에 씻긴 마음이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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