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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들과 나선 먼길 800km 걱정·조바심 저멀리…인생 친구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 데 산티아고)

  • 입력 2019.07.06 00:00
  • 수정 2021.01.05 11:53
  • 기자명 김정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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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과 함께 순례의 상징인 조개 문양 앞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알게 된 지는 10년 가까이 되었다. 우연히 사진 한 장과 파올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을 보고서였다. “우리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는 우리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줄 것이며, 마침내 우리는 원하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딸아이와의 소통을 위하여 2014년 딸아이와 함께 레온에서 산티아고까지 350km를 걸었다. 아이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물론 좋았지만,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전체 800km가 아니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순례길에서 누군가가 전해준 말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번도 안 걸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걸은 사람은 없다‘는 말을 기억하며 다음에 다시 오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두 번째 순례는 아들과 함께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다녀올 기간을 얻었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과 함께 걷는다면 정말로 멋진 경험과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주저 없이 가족에게 동의를 구했다. 먼저 다녀온 누나가 적극 추천했고 아내도 내 생각에 지지를 표했다.

아들과 함께 걸은 카미노길은 프랑스 생장피에 드 포르에서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의 거리다. 800km가 얼마나 긴 거리인지 설명을 하자면 대략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으로 걸어야 하는 거리라고 보면 된다.

출발하기 전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아빠, 정말 걸을 수 있을까?”하고 물었다. 아들도 물론이지만 나 역시 바쁜 삶으로 인해 운동을 거의 못한 상태라 체력적으로 조금은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고, 아들에게 광활한 대자연을 보여주고, 외국의 새로운 문화도 접해볼 수 있으며, 800km라는 먼 길을 걸으면서 겪은 것들로 인해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 순례길을 걸었던 생각을 하면서 용기를 갖고 잘 헤쳐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섰다. 또 순례길을 걷는다는 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내가 선택한, 내 의지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생각하러 갔다가 아무 생각 없어지는

스페인어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남녀노소 국적불문하고 연간 수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것일까?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걷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TV 프로그램을 보고 무작정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또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들과 은퇴를 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온 분들, 또 직장에 휴가를 내거나 그만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등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주일 정도 걷고 나면 ‘아무 생각도 걱정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문득 카미노는 생각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오는 곳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길을 찾을 필요도, 헤맬 필요도 없이 그저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데기만 따라가면 산티아고에 다다른다. 여행을 할 땐 언제나 길을 찾아야 했고, 지도를 봐야 했고, 가끔은 헤매기도 했었는데 카미노에서는 지도도 휴대폰도 필요 없이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길은 이미 정해져있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라는 목적지도 정해져있으니까. 인생도 카미노처럼 그렇게 심플!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순례길을 걸 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순례길은 여러 길이 있으나 가장 많이 걷는 길은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일명 프랑스 길이다. 아들과 함께 25일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kg의 무거운 배낭을 메고 프랑스 길을 걸었다.

프랑스 길에는 스페인의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았고, 순례길의 경치를 보면서 쉬면 에너지가 다시 생기기도 했다. 중간중간 드넓은 평야와 산맥들을 겪지만 그곳에서도 볼 것이 참 많았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스페인 길을 걸으며 햇빛과 바람이 참 좋고 자연의 색감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나 생각하게 한다. 걷다보면 마을들을 지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먼저 인사해주고 좋은 카미노 길이 되라고 응원 해준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하게 되는 그런 길이다.

온전히 소통할 수 있었던 둘만의 시간

그렇게 세 번째 날이, 네 번째 날이, 다섯 번째 날이, 그리고 스물다섯 번째 날 아침이 밝을 때는 종착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었다. 똑같은 길이지만 각기 다른 목적과 목표를 안고 오는 수많은 순례자들 중에서 나는 아들과 좋은 추억을 하나 만들기 위한 목적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목표의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 대성당 종착지에 도착했을 때 굉장히 뿌듯함과 감동을 느꼈던 것은 순례길의 완주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카미노를 걷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친한 친구가 생긴 건 뜻밖의 수확이었다. 한 달 내내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걸었던, 다름 아닌 아들이다. 항상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명령적이기만 했었는데 카미노의 한 달 동안은 아무런 제재나 방해 없이 아들의 생각을 들어줄 수 있었고 둘만의 사색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카미노 길을 걷는 동안 아버지의 마음속 어딘가 조바심이 나고 불안했던 감정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대화 속 에서 아들이 훌쩍 성장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장의 현실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차분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아마 또 이렇게 오롯이 아들과의 시간을 쓸 수 있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아들과 소통하며 걸었던 한 달. 황홀할 만큼 멋졌던 스페인의 시골풍경과 길 위에서 만났던 수많은 연연들, 그리고 도보여행의 재미를 아들이 발견한 것, 모든 것들이 오래오래 꿈같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Tip.

순례 비용

아들과 둘이서 25일 동안 1000유로 정도. 하루 평균 40유로, 약 52,000원.

필수 어플

스마트폰 구글맵과 ‘camino pilgrim’이라는 앱은 필수다. 다음날 몇km를 갈지, 코스가 산 길인지 평지인지 확인해서 일정을 짜는데 시간·체력에 무리하지 않도록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야 한다. 걸으면서 매일 확인하는 게 날씨. 구글 날씨 어플은 필수다. 예보가 정확하다. camino pilgrim-frances 어플도 프랑스 길에서 필수. 가이드라인 확인, 마을간 거리, 마을 정보(병원, 식 당, 바, 마켓, ATM 등 유무)는 물론 알베르게의 정확한 위치, 운영시간, 전화번호, 수용인원, 주방 유무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순례자 숙소(알베르게)

순례자 여권이 있어야만 머물 수 있다. 여권은 순례자 숙소에서 만들 수 있다. 숙소의 종류는 도네이션(기부제), 공립(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가격이 저렴하며 수용 인원이 많은 곳이 대부분), 그리고 사립(개인 운영, 대부분 소규모)이 있다. 도네이션과 공립은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가기 때문에 베드버그에 물릴 확률이 높다. 소독 등 관리를 하지만 위생관념이 우리처럼 철저하지는 않은 듯하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알베르게 투숙 전쟁이 대단하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 일찍 도착해 배낭으로(선착순) 자리를 맡거나 전화 예약을 하기도 한다. 10월부터 시작하는 가을 비수기에는 여유 가 있다. 겨울에는 문을 닫는 곳이 많으므로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순례길의 적 베드버그

베드버그(빈대)는 침대 매트리스나 나무침대, 특히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볕이 잘 들고 보송한 알베르게에 묵는 것이 좋다. 베드버그 방지 스프레이, 효과는 별로다. 혈관을 따라 여러 방을 문다. 모기보다 훨씬 가렵다. 물리면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먹고 발라야한다. 물렸다면 다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탈탈 털고 모든 옷을 세탁하고 높은 온도로 건조시키고 침낭 배낭은 햇볕에 바짝 말려야한다.

발·다리 관리

물집이 생겼을 때는 알콜 솜으로 바늘을 닦은 뒤 실을 꿰어 물집에 관통시켜야 한다. 실은 물을 흡수하도록 그대로 두고 나중에 제거한다. 매일 저녁 안티푸라민, 멘소래담 등을 무릎과 종아리 등에 바르고 충분히 풀어주면 좋다. 파스는 유럽에서 아주 비싸다. 한국에서 구입해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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