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너는 늙어 봤니? 나는 젊어 봤다

지공거사를 위하여

  • 입력 2019.06.22 00:00
  • 수정 2021.01.05 11:52
  • 기자명 이예경 시민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공거사(地空居士), 최근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숨어 살 면서 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를 거사라 한다. 지공은 지하철 공짜의 줄임말이니 ‘지하철을 무료로 타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을 일컫는 은어다. 숨은 뜻은 그렇지만, ‘지공거사’라니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비록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세대 간 갈등도 있지만 말이다.

예전과 달리 65세부터 75세까지가 인생 황금기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에 걸맞게 지공거사 원년이 만 65세가 되는 날이다. 빨리 나이를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지청구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나이가 되면 나의 의무는 끝나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건강만 잘 유지한다면 가능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건강식품 챙겨 먹는 이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았다. 지금은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자’며 건강식품도 챙겨 먹고 적당한 운동도 하라고 독려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백세 시대를 살고 있다.

모르긴 해도 지하철 무료 승차가 좋아 빨리 지공거사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하지만 은퇴 후 이런 혜택이 일상을 바꿔 놓았다. 수도권에서는 춘천, 여주, 수원, 인천, 에버랜드, 온양온천, 웬만한 곳은 지하철을 타고 다 갈 수 있다.

대구 또한 2호선 종착역인 문양으로 가면 지공거사를 기다리며 늘어선 매운탕 집 버스들이 즐비하다. 1,000원짜리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도 있다. 지갑이 얇은 지공거사들이 다닐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건 없건 노인들의 씀씀이는 거기서 거기다. 사실 크게 돈 쓸 일도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 나를 위한 취미활동도 좋고 남을 위한 재능기부도 좋다. ‘과유불급’이라지 않던가. 무엇이든 정도껏 행하면 된다. 젊었을 때는 경쟁 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았지만, 이제는 돈과 시간 그 외 많은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때로는 지공거사 혜택을 누려도 보고 마음 내키면 거부도 해보자. “나는 형편이 되니 굳이 무료 승차를 하지 않겠다”며 승차권을 사서 타는 분 을 본 적이 있다.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먼저 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인생이 끝나 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중략)’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란 노래의 일부분이다. 3개월 만에 조회 수가 36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연세 드신 분들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서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아니, 늙어보지 않은 젊은이에게 늙은이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 않으면 세대 간 갈등도 문제 될 게 없으리라.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며 거사(居士)답게 여유롭게 살자. 세대나 계층 간의 위화감이나 박탈감 따위는 날려 버리자.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족하는 생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다.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