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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학교 연중 캠페인

맨발로 걸으면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져요!

  • 입력 2019.06.13 00:00
  • 수정 2020.11.05 14:23
  • 기자명 박성애 (경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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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장에 '토요일 범어산 걷기 06:00 ~ 07:30, 롤링핀 빵집 위 나야대령비 앞'이라고 적었다. 세 해 전부터 우리 반 학생들에게 금요일이면 적어 주던 문구였다.

동네의 학교와 학생들이라 토요일 새벽 범어산 걷기를 제안하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좋아라 모였다. 맨발에 도전하는 학생도 있었고, 운동화를 신고 걷는 학생도 있었다. 어쨌든 좋았다. 평상시 같으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친구들과 숲속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신선하다고 했고, 즐거워했다. 

대구KBS 근처에 있는 롤링핀 제과점의 우측으로 난 길로 오르면 6.25 때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인도의 장군 나야대령의 묘가 나타난다. 나야 대령비 근처의 소나무 숲은 이 지역사람들의 휴식처이다.  4월부터는 새벽6시가 되면 동이 훤해진다. 5분쯤 친구들을 더 기다리 다가 산길을 오른다.

탱자나무의 흰 꽃도 어느새 졌고 산딸기의 분홍 꽃과 아카시아의 향이 숲을 가득 채웠다. 하루가 다르게 연두빛 잎은 초록으로 짙어지고 그 잎들은 푸른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고라니가 그 길을 황급히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혼자인 것 같았다.  도시 속의 숲에 고라니의 존재는 기이하다. 까투리와 까치, 딱따구리도 제 할 일로 분주해 보인다.  비 온 뒤의 지렁이 도 곧 합세를 할 것이다.

나야대령비에서 출발하여 구릉으로 오르고 남쪽 길을 선택하여 걷다 보면 어느새 황금동 롯데 캐슬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 보이는 운동기구가 많은 공터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운동기구와 철봉 등을 이용하며 짧은 휴식을 갖는다. 아쉬움을 남긴 채 김대건 성당이 있는 방향을 잡아 내려온다.

문을 열어 둔 가까운 P제과점에서 간단한 빵과 음료를 마시며 또 한번 재잘거릴 수 있다. 이것이 한 시간 반 동안 할 수 있는 토요 범어산 걷기이다. 

나른하지만 유연해진 몸과 마음으로 집안 일을 하고 책과 놓친 영화를 다운받아 보며 쉼 속으로 들어간다. 학생들도 토요 방과 후 수업에 참석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다.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학생들 몇 명은 교실에서도 활발하고 움직임이 많은 학생들이다. 이전의 상황 같으면 성가시다는 이미지의 학생이라고 단정하고 부정적인 판단을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범어산을 걸으면서 더 자세하게 그의 눈을 쳐다보았고, 작은 몸짓도 관찰하였고, 그의 유순한 행동에 익숙해진 나의 착해진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 있었기에, 산에 의존하여 그들과 내가 함께 어울린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아울러, 난 다름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십일 년째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범어산을 하루에 한 번 이상 오르게 된 것은 2017년 대구 경동초 4학년을 데리고 있었던 해부터다. 배움의공동체 연구회의 절친인 최순나 선생님의 수성못 둘레를 맨발로 걸어보자는 제안에 선뜻 응했고, 맨발걷기의 알싸한 뒷맛이 좋아서 혼자서도 범어산을 맨발로 걷게 되었다.

평일 새벽의 범어산은 나 혼자이다. 학교의 일정을 대강 정리하고 무작위로 떠오르는 학생들을 생각한다. 찌푸둥한 몸의 근육도 제 자리를 찾아 가는 느낌이 들고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일들도 명료해진다.

지, 덕,  체에서 가장 먼저 실천해야만 하는 온몸 깨우는 공간, 범어산이 있어서 좋다. 퇴근시간에는 같은 학년 선생님 세 명과 함께한다. 코스는 아침과 비슷하다. 살이를 이야기하고 학생에 대해서, 학부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걷는다.

지나가시던 분이 “발바닥 조심 하소!”라는 말과 걱정 어린 눈빛을 제법 받았다. 맨발로 걷기를 시작한지 세 해째인 요즘은 범어산을 걷는 사람 열 명 쯤을 만나면 한 분 정도는 맨발임을 확인하고는 반가운 목례를 나누곤 한다.

교원 성과급제도가 생긴 지 스무 해가 되어간다. 지난 해는 운이 좋아 최고등급인 S등급을 받았다. 전교조의 균등분배 안내서를 보니, S등급은 460여만원, A등급은 320여만원, B등급은 260여만원으로 책정이 예상되어 있었다. S등급은 B등급의 급여를 가져가는 정황인거다. 지난해까지는 전교조 차원으로 균등분배에 참가하였다. S등급을 받았으니 학교 단위로 균등분배를 제안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2016년의 근 거자료에 의하면, 받은 성과급은 사유재산이며 그것을 나누는 것은 위헌이 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붙여 교내 선생님들께 균등분배를 제안하였다. 반기는 분도 계셨고, '교과 등 일을 덜하는(?) 분과 균등분배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분도 계셨다. 교장 선생님도 나를 불러 공문에도 균등분배를 하면 안된다는 내용을 보내왔는데, 나의 균등분배 제안은 신중하지 않은 것 같다 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1930년 대의 경제학자 케인즈의 고민이 생각났고, 버스 안에서 뒷자리로 가라는 차별적 대우를 받고 기꺼이 교도소에 들어가 부당한 인종차별의 상황을 알렸던 로잔파크가 떠올랐다.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의 어느 대목은, 의과 대학생들에게  어려운 공부를 익히게 하기 위하여 경쟁의 방법으로 진행하니, 앞서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의학 논문을 찢어 가 버리는 일이 생겼다. 반대로 환자를 대면하고 그들의 심정을 듣게 하는 협력의 방법으로 가르치니 환자에 대한 애정과 배움이 더 상승하더란다.

더 나은 교육 수준을 위하여 교사를 성과급 제도로 단련을 시키지만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교사들에 대한 대응이 진부한거다. 경쟁을 촉발하고  동료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성과급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누군가는 잘못 짚은 정책에 대하여 누군가는 지속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을 해야 함이 옳다.

함께 또는 혼자, 신발을 벗거나 또는 신고 걷는 범어산 걷기는 삶의 일상이 되었다. 정년을 기준으로 어느새 3/4을 훌쩍 지나고 남은 1/4의 날이 지나고 있다. 홀가분하고 고즈넉한 일상이며 배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과 맘의 틈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네 해 전, 정기검진에서 발견된 갑상선암은 나의 발소리를 들으며 고이 잠자고 있는 중이다. 6개월마다 검사를 해 보면 크기도 모양도 그대로라고 했다. 맨발 걷기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냐마는 습관처럼 마시던 술을 줄이고 건강 식단으로 바꾸었다. 이면에는 걸으며 맑힌 몸을 삿된 음식과 섞기 아까운 그 무엇의 실천임을 고백한다. 10년째 하던 수영을 끊은 지도 3년째이다.

큰 뜻이 있어 수영을 끊은 것이 아니라 돌아보니 수영장을 찾지 않은 나를 발견하였다. 범어산 걷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걸었으며, 화가 풀린 곳에 지팡이를 꽂아 두고 돌아서 왔다’라는 문구를 어디서 읽었는데 그들도 맨발이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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