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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 라오스가 체질?

[이 사람] 황세원 라오스여자국가대표팀 코치

  • 입력 2019.07.11 00:00
  • 수정 2020.11.11 15:40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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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있을 거예요? 5년 정도 우리하고 같이 있으면 안 되나요?”

막상 걱정한 더위는 걱정할 게 아니었다. 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을 정도로 열이 많은 체질이었지만 라오스에 와선 열대야에도 선풍기만 틀어 놓고도 잘 잔다. 3달 전 라오스로 파견된 황세원(39) 라오스여자국가대표팀 코치는 그렇게 잘 적응하고 있다.

황 코치는 이만수 전 감독을 통해 라오스를 알게 됐다. 4년 전, 이 전 감독이 황 코치가 뛰고 있던 팀에 재능기부를 왔었다. 그때 인연으로 코치직을 제안받았다. 처음엔 ‘체질상’ 도저히 안 되겠다고 고사했지만 결국 요청을 받아들였다.

“국가대표팀에서 뛰긴 했지만 선수로 뛰는 것과 지도를 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선수들과는 금세 친해졌다. 황 코치는 “라오J브라더스에 먼저 오신 감독님들과 봉사자들이 너무 잘해줘서 라오스 선수들의 마음이 활짝 열려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선수들이 조심스럽게 ‘계시는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 군요. 여자 선수들이 한국 사람처럼 정이 많아요.”

수영장에도 같이 가고 여자선수들끼리 집에서 파티를 하면 어김없이 황 코치를 초청한다. 몇 달 사이에 라오스국가여자대표팀의 ‘언니’가 되었다. 특히 주장인 까따이(Kataiy)가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너무 잘한다고 했다. 5월30일 까따이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5년 정도만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들었어요.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울컥했다.

인간적으로 친해진 것 외에 선수들의 야구 열정을 확인한 계기도 있었다. 여자야구 팀에 학생 모델이 2명이나 있단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라오스에서는 하얀 피부가 가장 중요한 미인의 조건 중의 하나에요. 4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모자 하나 쓰고 훈련하기란 정말 쉽지 않죠. 그것도 모델로 활동하는 친구들이 말이에요. 피부를 포기하는 모델의 열정은 감동 그 자체였죠.”

이런 열정 앞에서 실력은 두 번째 문제다. 황 코치가 “야구 실력을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워 지지만 선수들 자체만 놓고 보면 한없이 희망적”이라고 했다.

“선수들 하나하나가 건강한 씨앗이라고 생각해요. 야구를 하면서 땀을 흘리며 배우는 모든 것들이 이 선수들의 삶에 단비가 될 거구요. 그 씨앗이 어떤 꽃과 열매를 품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단비 담뿍 머금고 각자의 삶에서 대단한 도약을 해낼 거라고 믿어요. 전문 야구 선수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야구가 가장 중요한 삶의 전환점이자 에너지의 원천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야구를 통한 성장이 가장 아름다운 열매지만 야구 자체의 성과도 그에 못지않게 큰 숙제다. 라오스는 영웅에 목마르다. 라오스의 국위를 떨치고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라오스의 국가 규모는 생각보다 왜소하다. 국제 스포츠 대회만 하더라도 아시안 게임도 남의 나라 잔치처럼 여긴다. 그렇게 큰(?) 대회에서는 라오스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시게임(Sea Game)에 열광한다. 태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강팀들을 상대로 득점을 하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난다. 이들은 희망의 증거를 보여줄 영웅을 고대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가 ‘펜스 플레이’다. 전용 야구장이 없어서 펜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선수들이 많다. 한국에 와서 야구장을 구경한 선수들도 있지만 외야수 대부분이 공이 머리 위로 넘어가면 그 자리에서 포기한다. 펜스까지 따라가서 공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황 코치는 보이지 않는 펜스를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라오스 선수들이 하나 같이 펜스 앞까지 달려가 멋지게 도약해서 공을 잡아내는 플레이를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건 플레이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이상으로 열정과 정신이 도약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라오스 최초의 야구장 건설이 확정됐다. 6월 3일에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공사가 시작됐다. 2009년 시게임(Sea Game)이 열렸던 종합 운동장 부지 내에 조성된다.

“한국처럼, 50년 후 100년 후에는 한국야구의 열정을 수혈받은 라오스인 중에 슈퍼스타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만수 감독님이 늘 말하는 것처럼 100여년 전 질레트에서 시작한 재능기부의 역사가 류현진을 만들어냈듯이, 라오스 야구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르면 점점 큰 무대로 올라설 거라고 확신합니다. 순수한 재능기부를 통해 실크로드 못잖은 ‘야구 로드’가 형성되는 거죠. 그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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