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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나들이 분야의 ‘미슐랭가이드’를 만들고 싶어요”

  • 입력 2019.01.05 00:00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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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청도코미디극장 모시고 갔더니 “웃음 코드가 안 맞아!”

최빛나 함지노인복지관 복지사가 어르신 나들이맵을 만드는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최빛나 복지사는 “어르신 나들이 장소로는 당신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곳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비키니를 입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다구요! 내년엔 꼭 해변으로 가려구요.”

최빛나(27ㆍ함지노인복지관)복지사는 동료 복지사들 사이에서 어르신 나들이 전문가로 통한다. 복지사 경력은 4년이지만 그 동안 다른 복지관에서 참조할 수 있도록 나들이 길 맵을 작성해 SNS 등을 통해 주변에 알렸다. 나들이 철이 되면 주변 복지관 나들이 담당자들에게 “이번 나들이는 어디로 어떻게 가면 좋을까?”하는 전화를 받는 건 기본이다.

최복지사의 ‘나들이 맵’에는 그간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어르신 나들이 계획을 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몇 가지 있다”고 밝혔다. 첫 번째로 거리 문제다. 대부분 어르신 나들이라고 하면 무조건 가까운 곳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 복지사는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귀띔한다. 중요한 건 짬짬이 잘 쉬는 것이다.

“휴게소를 절대로 빠트리면 안 돼요. 적절한 타이밍에 잘 쉬어주면 먼 거리도 괘념치 않으세요. 거리에 대한 강박만 없애도 훨씬 훌륭한 나들이 계획을 짤 수 있겠죠?”

추억을 자극하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최복지사의 최고 작품은 ‘어르신 경주 수학여행’이었다. 어린 시절에 한번쯤은 나들이를 다녀왔을 경주다. 불국사, 첨성대 등은 잘 알다 못해 지겨울 거라고 생각하는 장소지만, 오히려 그런 곳에 더 많은 추억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어르신들은 옛날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 중에서도 옛풍경을 재현해놓은 ‘추억의 달동네’는 인기 최고였다.

“추억을 자극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요. 추억의 음악도 좋구요. 나들이는 아니지만 효콘서트에도 모시고 가고 싶어요. 티켓 비용 등이 문제이긴 하지만 후원을 받아서라도 신나는 추억여행을 시켜드리고 싶어요.”

어르신들에게 추억을 떠올리는 건 단순히 흘러간 옛일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다. 그 추억 속에 청춘도 있다. 젊은 시절에 했던 것을 다시 해보거나, 반대로 젊을 때 못 해 봤던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했다.

“해변 여행에서 그런 걸 느꼈어요. 어르신들이라면 점잖게 바닷물에 발 담그고 오는 걸 원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분들도 젊은이들 못잖은 욕구가 있어요. 내년 여름엔 꼭 비키니 여행을 감행할 생각입니다.”

최복지사는 “조금만 거들어줘도 젊은 시절이 활력을 되찾는 분들은 수없이 봐왔다”면서 “나들이와는 다르지만 패션쇼도 젊은 시절로 되돌리는 타임머신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늘 탁구만 치시던 분인데, 2017년 5월에 대구 전체 복지관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패션쇼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었어요. 행사 후에 저에게 ‘런웨이가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는 개선로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하시더군요.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마음 한쪽이 늘 무거웠는데, 그게 훌훌 날아가 버린 것 같다고 하셨어요. 새로운 경험이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늘 성공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눈높이를 맞추는데 실패해 엉망이 된 나들이도 있었다. 청도코미디극장 나들이를 갔을 때가 바로 그랬다. 코미디 공연이 시작되자 반 이상이 자리를 떴다. 여자분들은 “감을 사러 간다”면서 삼삼오오 택시에 몸을 실었고 남자분들은 극장 옆 편의점 앞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나중에 여행 소감을 묻자 ‘요즘 코미디라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옛날식 코미디나 장터 각설이가 나왔다면 한바탕 신나게 놀다 왔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어르신들이 남기신 후기를 읽으면서 반성 많이 했죠, 하하!”

최복지사가 어르신들의 나들이에 이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건 학부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생활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노인 학대 관련 연구 조교로 활동하면서 학대노인의 상담 녹음파일을 정리했어요. 어르신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 부분과 관련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며칠 밤을 새우면서 고민했었죠.”

최복지사는 “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 입사한 이후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서 이일 저일 겁내지 않고 뛰어들었다”면서 “여러 활동 중에 ‘나들이 맵’이 주목을 받고 있고 또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은 만큼 데이터를 더 쌓아 일반인들도 활용할 수 있는 어르신 나들이 종합가이드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진승희 객원기자(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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