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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휴가를 쪼개 서울로 수업을 들으러 오는 중국 제자

  • 입력 2017.11.30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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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게 새삼 ‘열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 제자들이다. 레슨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온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제자는 한 달 내내 공연 일정을 소화한 후, 금쪽같은 1주일 휴가를 쪼개 한국에 온다. 레슨으로 자신을 재정비해서 다음 달에는 더 좋은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배움에 대한 그 배우의 열정이 내게도 전염되는 느낌이다.

나는 늦은 나이에 음악에 뛰어들었다. 고3 여름에서야 성악공부를 시작했다. 겨우 입시곡을 준비해 대학에 들어가 보니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의 실력은 내가 보기엔 교수님급이었다. 내가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육상선수였던 것이다.

대학 1학년 첫 여름 전공시험 성적이 나왔을 때가 기억난다. 83점. 노래로 받은 첫 성적이라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축하도 받았다. 다음날 학교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은, 1등이 88점이고 대부분 85점대였다는 거였다. 나는 꼴지 그룹이었다. 그래도 노래로 받은 첫 성적이어서 소중하게 느껴졌다.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하루에 한 발짝씩 앞으로!’

그때부터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정말 하루도 쉬지 않았다.

대학 1학년 때 나를 봤던 이들은 내가 지금까지 즐겁게 노래하며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비밀은 한가지다. 마음속으로 ‘하루에 한 발짝씩’을 매일 다짐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갔지만, 노력의 결과는 기적 같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공연을 하고 양국에서 제자도 키우고 있다. 10년 전 유튜브를 보면서 완벽한 연기에 매료됐던 브래드 리틀과 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꿈도 이루었고, 그에게 뜻밖의 극찬도 받았다. 최근에는 중학생 때 좋아했던 가수에게 “무대에 같이 서는 것은 물론, 음반작업도 도와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나에겐 말 그대로 매일 매일이 기적이다. ‘하루 한 발짝’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한다. 능력을 믿지 말고 노력을 믿길, 어떤 자리에 있든 늘 배우기에 힘쓰길, 그리고 욕심 부려 달리다 지치지 말고 하루에 한 발짝씩 오래 걷기를…….

대학교 때 은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한다. 동장군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이맘때쯤, 수업을 하다가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슨 수업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힘들고 지루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급한 사람은 사막의 홍수와 같단다.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지만 불과 한 나절도 안 되어서 사라지지. 꾸준한 사람은 큰 산에서 비롯된 강과 같아. 사막처럼 갑자기 불지도 않고, 가물다고 해서 금방 마르지도 않지. 사막은 언제나 황폐하고, 그치지 않는 강은 생명과 문명을 낳는다. 나는 우리 인생에도 그런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살아보니 선생님 말씀이 옳다.

홍본영 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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