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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거짓 뉴스, 그리고 의심의 힘

  • 입력 2017.03.09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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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뉴스’가 큰 화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거짓 뉴스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요 업무를 수행하는가 하면, 최근 일어난 김정남 암살 사건에서도 거짓 뉴스가 퍼졌습니다. 국내에서도 거짓 뉴스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저 오보가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잘못된 뉴스를 퍼트리려는 시도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의심’이 필요합니다. ‘카더라’ 식의 소문을 뉴스로 재생산할 것이 아니라 꼼꼼히 다져보다 검증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오류와 거짓을 다 걸러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깜깜한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사실 ‘믿음’보다는 ‘의심’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기 행각’
2세기 무렵 본의 아닌 ‘사기 행각’이 벌어졌습니다. 사기 행각의 주역은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루크레티우스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간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주도한 인물들은 2세기를 살았던 천문학자들과 수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선배 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무거운 물질은 우주의 중심을 향해 당겨진다. 흙이나 물은 모두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그러므로 지구는 곧 우주의 중심이다.’
150년 경 이런 아이디어의 종지부를 찍는 책이 나왔습니다. <알마게스트>.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이 책은 ‘진리’로 굳어졌습니다. 이후 1,000년 동안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의심하면 바보일 것이었습니다.
첫째, 이 어마어마한 생각의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시대를 초월한 거장들이었습니다. 거짓 뉴스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권위에 기대어 소식을 전합니다.
둘째, 너무도 많은 이들이 이를 ‘맞다’고 입소문을 냈습니다. 요즘도 입소문 덕에 거짓 뉴스가 퍼져나갑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덕에, 혹은 권위에 기가 눌리는 바람에 <알마게스트>는 1,400년 동안 도전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 거짓 뉴스가 살아남은 이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이 ‘거짓 뉴스(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다)’를 살펴본 이들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일단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비잔틴) 제국의 학자들은 책에 나온 계산법을 따라 수학과 천체를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알마게스트>가 유일한 답이라는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거짓 뉴스’는 아랍으로도 흘러 들었습니다. 아랍에서도 비잔틴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요약본을 썼습니다. 몇몇 부분은 수정하기도 했지만 깊이 파고 들진 않았습니다. 이슬람의 전통에서 과학은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부속으로서 과학이 필요할 뿐 눈이 빠지게 들여다 볼 만 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짓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증명해줄 뉴스가 필요한 것이지 팩트가 정확한 뉴스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허술한 구석이나 ‘이상한’ 부분은 100번을 읽어도 눈길을 잡지 못합니다.
이 ‘거짓 뉴스’는 1,000년을 넘어가자 이제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만큼이나 진실한 것으로 자리를 잡아버렸습니다.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이를 요약해서 개설서를 만들었습니다. 제목만 나열한 거짓 뉴스 목록을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1,400년이 흘렀습니다.
모두가 바보가 되었습니다. 모두 의심을 가지고 파고들 필요는 없겠지만, 몇몇은 깊이 고민해봤을 법한데도 아무도 진리를 전복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지적 게으름이 역설적으로 허구를 진리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토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의 ‘거짓 뉴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채, ‘팩트’의 권위를 보증자의 위세 아래에 복속시킬 때 진실을 멀어집니다. 봐도 봐도 진짜로 보이는 ‘거짓 뉴스’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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