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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기 한국도자기대구물류 대표이사 “평생 도자기에 미쳐 살았습니다”

  • 입력 2016.12.07 00:00
  • 수정 2016.12.15 17:56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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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홍기 한국도자기대구물류 대표이사.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 사람이 우리 건물을 산다고?”2012년 여름, 최홍기(53)한국도자기대구물류 대표이사는 사무실 겸 물류센터로 쓰고 있는 5층 건물을 샀다.

건물을 사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건물주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건물주가 되겠다는 그의 선언은 인근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이나 다름없었다. 최 대표는 건물을 사기 전까지만 해도 인근 건물 지하에 세를 얻어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은행에 데리고 가서 직접 돈을 건넸죠. 통장에 입금 직전까지도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죠. 건물주가 깜짝 놀라는 표정이 제게는 꽃다발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1년 만에 나름의 성과를 낸 거니까요.”

- “저 같은 장돌뱅이가 뭐가 부럽습니까?”

최 대표는 2001년에 도자기 물류업을 시작했다. 한국도자기 부사장(現 대표이사)의 권고가 계기였다. 자금이 부족하다고 하자 외상으로 물건을 주겠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지금 다니는 직장도 대우가 좋은데 왜 그만두려느냐”면서 말렸다.

결심을 굳힌 계기가 있었다. 잘 알고 지내던 모 은행의 지점장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됐다. 그는 명퇴를 앞두고 식당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식사자리에서 박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자네가 부럽네.”

그 말에 내심 놀랐다.

“저 같은 장돌뱅이가 뭐가 부럽습니까?”

그러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푸념처럼 말했다.

“난 지금까지 소위 말하는 명문대 나와서 지금까지 늘 승승장구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려고 하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 아내와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다녔는데, 시설비니 권리금이니 하는 말조차도 낯설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산 것 같아. 바보가 된 느낌이야. 자네는 당장이라도 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잖은가. 그게 너무 부럽네.”

그때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의 말마따나 최 대표는 한강이남에서 그릇에 관한 한 자신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던 터였다. 그의 말대로 사막에 내던져놔도 그릇 대리점 하나는 차릴 수 있을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은 없어서는 안 될 직원 대우를 받지만, 그 지점장처럼 원하지 않은 때에 퇴사를 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일은 알 수 없으니까요. 젊은 시절에 했던 ‘가난의 대를 끊자’는 결심도 새삼 마음을 울렸구요. 이왕 하는 거 내 사업을 크게 해보자 싶었죠.”

서문시장 인근에 세를 얻었다. 1층에 얻을 돈이 없어서 2층에 세를 얻었다. 얼마 후 퇴사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도자기 회사 본사의 영업직 직원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왕따 비슷한 경험을 했다. 큰 물류센터의 영업책임자로 있을 때는 살갑게 맞아주던 사람들이 ‘겸상’도 거부하는 거였다. 하는 수 없이 예전엔 말도 잘 섞지 않던 젊은 영업사원들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한 마디로 하면 부잣집 머슴에서 구멍가게 사장님으로 전락한 셈이죠. 후회와 함께 오기가 생기더군요.”

▲ 2012년에 매입한 5층 건물에 꾸민 매장.
▲ 다양한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

 

- “미쳐도 제대로 한번 미쳐봐라!”

최 대표가 가장 자신 있는 건 바로 ‘바닥’이었다. 사회 생활을 바닥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 대표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중학교 졸업장 하나 들고 대구로 나와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 시절에도 괜찮게 사는 집 친구들은 한 달 용돈이 최 대표의 월급과 맞먹었다. 그는 “없는 집에서 태어난 죄”라고 생각하고 말 그대로 하루하루 살았다. 보일러 기술을 배워서 수입이 나아지긴 했지만 무계획하게 살았다. 그때 다섯 살 많은 선배가 그에게 충고를 했다.

“너 왜 그렇게 사냐. 술이 그렇게 좋냐. 미쳐도 제대로 된 데 한번 미쳐봐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 처음으로 장래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다. 할아버지 대부터 아버지, 그리고 본인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끊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다섯에 보일러 일을 그만뒀다. 보일러 기술로는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수익이 고만고만할 것 같았다. 장사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문시장으로 들어가 그릇 도매점에서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를 탔습니다. 월급은 보일러 기술자로 일할 때와 비교해 반 토막이 났지만, 장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물불을 안 가렸죠.”

성실한 청년으로 소문이 나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큰 도매상 사장이 그에게 메이커를 파는 곳으로 와서 일을 제대로 배우라고 했다. “싸구려 제품으론 비전이 없다”면서. 바라던 바였다. 최 대표는 당시 한강 인마에서 제일 큰 도자기 대리점으로 통하는 곳에 들어갔다.

거기서 11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부하 직원만 30명, 말 그대로 남 부러울 것 없는 시절이었다.

한때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직원 시절처럼 남들보다 한 발짝 더 뛴다는 각오로 일했다. 실제로 많이 뛰었다.

-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건 돈이 아니라...

당시는 외상으로 물건을 받아온 까닭에 좋은 제품이 없었다. 이는 곧 경쟁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중에 있는 물건으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비결은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뿐이었다. 트럭을 타고 경북은 물론 강원도까지 오가면서 대리점과 가게에 그릇을 팔았다. 쏠쏠하게 돈이 들어왔다. 그렇게 1년 동안 종자돈을 모았다.

다음은 백화점이었다. 대리점에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에 거래를 했던 덕에 관계자들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불만이 많았다. 입점한 가게에서 세일 같은 이벤트를 자주 열지 않아 손님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퇴점 권고를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기회가 오겠다 싶었다.

역시나, 얼마 안 있어서 입점 제의가 들어왔다. “박 사장만큼 열정적으로 일해줄 사람도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렇게 백화점 4군데를 뚫었다. 믿고 맡긴 만큼 정말 열심히 일했다.

“매장이 죽어 있었죠. 다시 살리는 방법은 행사밖에 없었습니다. 네 군데 매장에 쉬지 않고 행사를 열었습니다. 일주일에 3일은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죠. 바겐세일 매대에 물건을 깔고 다시 철수시키려면 새벽까지 일해야 되는데 작업 시간이 많이 걸렸거든요.”

최 대표가 들어간 곳은 사람이 끓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다른 백화점에서도 그에게 인수 요청을 해왔다. 5개 매장을 추가로 열고 농협하나로마트에도 입점했다. 몇 해 만에 도자기와 그릇 업계에 형성된 카르텔을 혼자 힘으로 무너뜨린 것이었다. 빚으로 시작해 이루어낸 성과였다.

“지금은 대표이사님 됐지만, 당시 부사장님의 권고를 받아들이길 정말 잘했습니다. 한국도자기에서 물심양면으로 밀어주고 끌어준 덕에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갚을 일이 구만리입니다, 하하!”

돈도 벌고 5층 건물도 샀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꿈은 아니다. 90%이상 실현 가능한 계획들이다. 2년 전 안동에 ‘한국종합주방’이라는 매장을 열었다. 350평에 도기와 그릇은 물론이고 혼수용품과 주방에 쓰는 모든 용품을 구비한 백화점이다. 안동을 시작으로 영주와 예천 등 중소 도시에 주방 전문 매장을 5개 정도 더 내는 것이 목표다.

온라인 쇼핑몰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은 수익 창출이 그리 많지 않지만 결국은 온라인에서 승부를 봐야 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노하우를 쌓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젊은 시절의 목표는 달성된 걸까? 아직은 “아니다”라고 했다.

“처음엔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달라졌어요. 가난은 돈이 아니라 정신적 습관이라는 생각입니다. 목표를 정하게 거기에 미치는 습관요. 그런 열정이 마음에 갖추어졌다 싶으면 그땐 안심이 되겠죠. 제가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물려주고 싶은 건 돈이 아니라, 제 삶을 일으킨 열정과 몰입 그 자체입니다.”

▲ 2014년 안동에 문을 연 ‘한국종합주방’. 앞으로 경북 중소도시에 주방 전문 매장을 5개까지 열 계획이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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