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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서향의 살아가는 이야기 (19)

인디언 마을의 며느리 고르기

  • 입력 2016.09.27 00:00
  • 수정 2016.10.13 11:52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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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선/ <문학세계> 신인문 학상으로 등단(2004년), 대구수필문학회 회원, 성광고등학교 교사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빵을 훔치기 전에 ‘굶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빵을 훔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겠지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냥꾼 역시 공주를 죽이라는 왕비의 명령을 받고 ‘공주를 죽일 것인가 살려둘 것인가’를 두고 갈등했을 것입니다. 인어공주는 어땠을까요? 사람의 다리를 얻는 대가로 목소리를 잃게 되고 걸음을 걸을 때마다 칼 위를 걷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데도 고민 없이 사람의 다리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해 왕자를 죽일 것인가 바다에 빠져 물거품이 될 것인가’ 결정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고민에 고민을 더했을 것이고 갈등에 갈등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고민에 고민을,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수없이 만나게 됩니다. 사소하게는 음식을 주문하거나 물건을 구입할 때도 그러하고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진로 선택이나 결혼 상대를 결정할 때도 선택의 순간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가 고민을 하게 되는 진짜 이유는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에 나머지는 모두 버려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렬할 빨강을 손에 쥐면 세련된 카키도 우아한 보라도 포기해야 하고, 한 남자와의 결혼을 결정하게 되면 송중기도 조인성도 모두 포기해야만 하니까요.


큰 옥수수를 찾아야 멋진 남자와 결혼을


인디언 마을에는 며느리를 결정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혼기에 찬 신부 후보들은 옥수수밭에 모아 두고 큰 옥수수를 하나씩 따오게 한답니다. 물론 가장 큰 옥수수를 따온 아가씨가 훌륭한 신랑과 결혼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규칙이 있습니다. 단 하나의 옥수수만을 따올 수 있다는 것, 한번 선택한 옥수수는 버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옥수수밭을 가로질러 곧장 앞으로 가되 한번 지나온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도착지점 앞까지 거의 대부분의 아가씨들이 빈손으로 나온답니다. 제법 굵은 옥수수를 발견하고도 혹시 저 앞에 더 큰 옥수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에 선뜻 결정을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지나친 환상을 버리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일러 주는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아가씨들의 갈등과 고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법 굵은 옥수수를 발견한 아가씨들은 꺾을까 말까 얼마나 고민을 할까요? 결국 빈손으로 나온 아가씨는, 자신이 그렇게 선망하던 멋진 총각과 결혼하게 될 다른 아가씨의 옥수수가 자신이 포기했던 옥수수보다 작은 것을 보게 된다면 속이 얼마나 상할까요?


송중기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선택의 순간은 시시때때로 찾아옵니다. 고민과 결단을 끝내고 나면 또 어느 새 다른 문제가 찾아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민도 없이, 후회도 없이 그냥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결정하는 대로 살아가면 행복할까요? 동전 던지기를 해서 ‘앞면 나오면 이것, 뒷면 나오면 저것’하고 운명에 맡기는 선택은 또 어떤가요? 내 삶과 관련된 일인데 적어도 스스로 고민하고 마음이 이끌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후회는 남을망정 원망은 없을 테니까요. 고민의 시간이 우리를 보다 더 성숙하게 하고 우리의 삶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게 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아요, 우리.
무뚝뚝한 침묵 씨를 선택하는 대신 멋진 남자 송중기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저의 이 선택이 최선이지 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나의 것’에 온마음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가끔, 지나온 길에서 놓쳐 버린 큰 옥수수 생각에 빠져 내가 선택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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