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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효는 행복으로 가는 '테슬라'

  • 입력 2016.05.15 00:00
  • 수정 2016.06.24 17:55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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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이면 ‘효자 효녀 가수’들이 넘쳐납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자식들이 부모님 앞에서 노래를 불러 드리는 효자 효녀 ‘가수’가 되기도 하고, 크고 작은 무대에 차려진 <효 콘서트>에 나서는 ‘효자 효녀’ 가수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평생 고생하신 부모님께 하루라도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날을 선물하고픈 같은 마음에서입니다. <효 콘서트>는 어버이날 부모님께 들려드리고 싶은 자식들의 감사와 존경과 사랑의 노래를 인기 가수들이 대신 불러 드리는 자리입니다. 올해 콘서트도 만원사례. 다시금 효자 효녀들과 함께 부모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어찌 이날뿐이겠습니까. 세월이 많이도 바뀌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효라는 가치는 여전히 우리의 DNA 속에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효(孝)는 충(忠)과 함께 가장 뿌리 깊은 우리네 전통 사상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두 가치관을 마음에 굳게 새긴 사람만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일본은 충, 한국은 효, 그 결과…
그런데 효와 충 중에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까?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효가 더 중요합니까, 충이 더 중요합니까?” 대답은 열 명 중 아홉 명이 “효”라고 대답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아 우리나라는 충(忠), 효(孝), 서(恕, 용서·배려·관용의 정신) 중에서 효 도덕을 높이 실천했습니다. 효 중심 도덕으로부터 충, 서의 도덕을 아우르며 나아가 인(仁)의 도덕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는 선비들의 학문적 성향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사림들은 <소학>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주희가 편찬한 이 책에는 군신관계와 가족관계를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겼습니다. 직접적으로 충보다 효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나라의 영향으로 에도(江戶)시대(1603-1867)에 들어와 효 중심의 도덕이 사회에 정착됩니다. 그러나 명치(明治)시대(1867-1912)에 들어와서는 천왕을 주인으로 하고 국민을 신민(臣民)으로 하는 가족국가론을 형성하게 됩니다. 충, 효, 서 도덕 중에서 충과 서를 통합한 ‘오모이야리(思遣)’ 정신을 중심 도덕으로 강조했습니다. 충의 도덕에 따라 일본 국민은 천왕 앞에서 모두 평등하며, 가정이라는 소규모의 집단보다 국민 전체를 큰가족으로 하는 대집단을 강조하게 됩니다. 서의 도덕은 일본 국민끼리에만 해당하는 덕목이었을 뿐, 다른 민족에게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이율배반이 됩니
다. 일본은 결국 전범국가가 됩니다. 천왕주의, 가족국가주의의 한 사례로 일본은 <소학>을 푸대접했습니다. 충보다 효를 더 강조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도 국가를 상대화하거나 흔들 수 있는 존재로 자리 잡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국가보다 특정한 이념을 더 중시한 일이 흔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땅에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일어난 다양한 운동과 혁명이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때로 학생들의 시위(2·28)가 일으킨 정의 운동으로 최고 권력자가 하야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나 금모으기 운동 같은 시민 주도의 자발적인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일의 뿌리가 충보다 효를 더 중요시한 분위기에 있었다고 하면 과한 이야기일까요. 그러나 효(혹은 이념)보다 충을 더 중시한 일본이 개인의 개성을 살려서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것보다는 ‘위에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집단주의로 흐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지나친 해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효,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위대한 정신
안타깝게도 지금은 효 정신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사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공부에 바빠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지 오래고, 어른들은 무한경쟁 시대를 살면서 도덕성과 미풍양속을 망각한 채 그저 효율만을 쫓으며 살아왔습니다. 예전에는 가난했지만 굳건했던 반
면, 지금은 풍요로워졌지만 모든 것이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사람의 마음에게 가장 지극하고 진솔한 마음가짐인 효 정신이 사라진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본 정신인 효가 사라지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성장과 풍요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 될 것입니다.
효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과 캠페인은 이 땅에 형성된 중요한 정체성을 이어가는 몸부림입니다. 대구한국일보도 5년째 ‘온 가족과 함께하는 효 콘서트’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孝 콘서트’는 가수가 나와서 노래만 부르고 들어가는 단순한 공연에 그치지 않고 효 정신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극을 통해 효의 가치를 되새깁니다. 부모님에게는 즐거운 하루를, 자녀들은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뜻 깊은 시간이 되도록 기획했습니다.
지난달 자율 주행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예약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세상은 놀랍게 변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조차 기계가 대신해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바쁘게 살게 될까요. 아니면 현대인의 삶에서 비로소 조금이나마 시간 여유를 누리게 될까요. 후자 쪽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비게 되는 시간의 여유 속에 가족의 가치가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효 콘서트>에 오시는 분들마다 테슬라를 타고 오듯 여유롭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효는 100세 장수시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를 행복으로 안내할 자율 주행 자동차입니다. 뜻 깊은 콘서트에 여러분의 많은 호응과 격려를 당부드립니다. 더불어 5월 한 달 동안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과 함께 가장 멋지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유명상(대구한국일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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