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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서향의 살아가는 이야기 (17)

봄날은 간다? 봄날은 온다!

  • 입력 2016.05.16 00:00
  • 수정 2016.06.22 18:2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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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선/<문학세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04년), 대구수필문학회 회원, 성광고등학교 교사

흩날리는 꽃비 아래 서서
꽃비가 내린다.
마지막 남아있던 봄 꽃잎들이 심술 난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흩날린다.
꽃비 아래 서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던 시인의 시를 읊는다.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며 
몇 해 전 봄에 찾아온 병마와의 싸움은 지리할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지내다가 봄이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 나를 괴롭힌다.
갑자기 찾아온 알 수 없는 통증을 진통제와 수면제로 달래며, 병명도 원인도 모른 채 검사에 검사를 거듭하며 병원을 오가야 했다. 그렇게 두어 달만에 밝혀진 병명에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는데 ‘이기려고 하지 말고 평생 친구라고 생각하며 지내라’는 의사의 말에 다시 절망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내 몸을 지켜 주어야 할 백혈구가 나의 몸을 적으로 인식하고 오히려 내 몸을 공격하고 있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한 달에 한 번,두 달에 한 번을 반복하며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르내렸다. 무리하지만 않으면 그냥 이렇게는 살 수 있단다. 죽을병은 아니라는 것에 위로를 삼긴 했지만 가끔 미친 듯이 찾아오는 통증은 참기가 힘들었다. 한의학에서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고통이라고도 표현한단다. 뺨에 흐르는 눈물을 내 손으로 닦을 수도 없는 순간에는 삶이 이대로 끝인가 싶기도 했다. 그 해 가을부터는 항암제재를 일부 추가한 탓인지 머리카락도 더 빠지고 눈도 침침해지는 것 같았다. 겨울이 빨리 끝나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봄은 그해 봄의 통증을 달고 왔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닫힌 문만 바라보며 절망한다.’ 헬렌 켈러의 말이다. 그해 봄엔 닫힌 문 앞에 서서 절망하고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세월이 가르쳐 준 지혜일까, 익숙함으로 생긴 내성일까. 이젠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웬만한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두렵지 않다. 잠시 손을 멈추고 쉬어 달라는 내 몸의 신호라 여긴다. 통증을 덜어주는 대신 내 몸 또 어딘가를 망가뜨려 놓을 한 알의 약도, 이제는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줄 안다. 약의 도움으로 사라진 통증에 감사하며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봉사활동의 즐거움과 보람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건강에 자신하며 혹사시켰던 내 몸을 돌아보게 되었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내 삶에 봄날은 또 온다
내가 봄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에 올봄도 다 가버렸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나약하지 않다. 절망하며 울지도 않는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번씩 비바람을 만나듯 나 역시 건강한 중년과 노년을 위한 고비라 생각한다. ‘뿌리’만 강하게 땅 속 깊이 박고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꽃잎 하나 지고 잎새 하나 떨어진들 대수일까.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오거늘.
내 삶에 봄날은 또 온다. 아니 저 멀리 오고 있다. 다시 돌아올 봄을 기약하며 돌아가신 울엄마 애창곡 한 가락 불러 볼까.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물며 산제비 넘다 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가~아~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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