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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초대석] 고인수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 추진단장

  • 입력 2016.05.29 00:00
  • 수정 2016.06.03 15:52
  • 기자명 김정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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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수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 추진단장이 가속기 건설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 오른쪽 원형 모양의 건물이 세계에서 5번째로 건설된 3세대 방사광 가속기, 왼쪽의 긴 막대 모양의 건물이 미국와 일본에 이어 3번째로 건설된 직선형의 4세대 방사광 가속기이다. 4세대 가속기는 건물 길이만 1.1㎞로 단일 과학 실험장비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포항가속기연구소 제공

포항가속기연구소의 고인수(63)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 추진단장은 핵심 장비의 국산화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4년간 4,298억원의 가속기 건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며 단 75명의 인력으로 주요 부품의 70%를 순수 국내 기술로 완성시켰다. 고 단장이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서 고가 장비를 수입하는 대신 국내 업체를 이 잡듯이 찾아다니며 노력한 결과다. 특히 핵심 부품에 속하는 전자총을 포항공대(포스텍) 박사과정 학생이 3년의 연구 끝에 개발해 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부품 생산업체인 백트론은 장비 국산화에 동참한 덕에 인도에 10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따냈다.

가속기는 강력한 전기장을 이용해 입자를 광속(1초당 약 30만㎞)에 가깝게 가속하는 장치다. 입자 종류에 따라 방사광(전자)ㆍ양성자ㆍ중이온 가속기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전자를 빛과 같은 속도로 가속시키는 장치가 방사광가속기다. 전자를 가속하면 태양보다 강력한 빛이 나와 물질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가속 방식에 따라 3세대, 4세대 등으로 분류된다. 3세대까지는 전부 원형가속기이다. 전자를 둥근 관 안에서 접선 방향으로 돌려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데 많은 이용자가 동시에 쓰기 좋다.

반면 고 단장의 지휘로 이번에 건설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직선형으로, 활시위를 당기듯 전자를 쏴 가속시킨다. 3세대가 태양보다 1억 배 밝은 빛으로 물질의 1조 분의 1초를 포착할 수 있다면 4세대 가속기는 3세대보다 10억 배 밝은 빛으로, 1,000조 분의 1초까지 파악할 수 있다. 3세대로 커다란 단백질과 죽은 냉동세포만 관찰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4세대는 살아있는 세포나 화학 물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담을 수 있다. 가령 산소와 수소가 만나면 물이 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결합 과정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하면 물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볼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물질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생물, 화학 분야에 주로 쓰이는데 정작 장치를 만드는 건 물리학 분야다. 물리학자인 그는 지난 1988년 포항공대에 3세대 가속기 건설이 추진됐을 당시 김호길 포항공대 총장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다. 김 총장은 물리학에서도 가속기 설계에 필요한 소립자 물리학과 플라즈마물리학, 전산물리학 분야 전공자를 찾고 있었는데 고 단장은 세 분야를 모두 경험했다.

그는 “미국 UCLA의 박사과정 초기까지 소립자 물리학 이론을 전공했는데 지도교수가 여행을 갔다가 별세, 전공을 플라즈마 물리학으로 바꿨고 그 중에서도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는 전산모사 분야를 전공하게 됐다”며 “돌이켜보면 가속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 건설추진본부'에 참여하며 가속기와 인연을 맺은 고 단장은 2003년 포항가속기연구소 부소장을 맡은 데 이어 이듬해 6대 소장에 올랐다. 지난 2011년 7월 미래창조과학부의 공모를 통해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추진단장에 선발됐다. 그는 다른 지역 가속기 건설에도 제의를 받았지만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고집했다.

4세대 가속기는 3세대보다 뛰어난 기술을 요구하는 만큼 건설 과정도 녹록하지 않았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추진되는 프로젝트로, 책정된 사업비만 해도 3세대의 4배가 넘는 4,298억 원에 달했다. 더구나 포항제철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구축된 3세대와 달리 4세대는 정부 예산을 받아 추진, 예정대로 돈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단장으로 오기 전 이미 설계된 4세대 가속기는 비용을 맞추느라 길이가 짧았지만 먼 장래를 보고 과감히 지금의 1.1㎞로 대폭 늘였다”며 “당연히 돈이 훨씬 많이 필요했는데 돈과 시간(공사시간), 성능은 계획대로, 그리고 국산화라는 김호길 총장에게 배운 원칙을 지키기 위해 건물 폭을 줄이고 반드시 있어야 할 부대시설만 놓고 다시 설계했다”고 말했다.

고 단장의 철칙인 장비 국산화도 공사비용을 크게 절감시켰다. 총 180개에 달하는 가속관 가운데 120개는 일본 미쓰비시 제품이지만 나머지 60개는 국내 제품 개발이 이뤄져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채웠다.

고 단장은 “‘국산화에 성공하면 당신 회사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 한 마디로 부품 업체들을 설득했는데 업체 대표들이 묵묵히 따라와 주었다”며 “짧은 기간이었는데도 국산제품이 일본제품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나고 들어간 비용도 저렴해 개발 과정을 지켜보며 기술력에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2월 말 가속기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본업인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로 돌아갔다가 곧 복귀했다. 행여 가속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모호할 수 있어 올 연말로 예정돼 있는 시운전기간까지 맡기로 한 것이다.

고 단장은 “올해 말까지 종합시운전을 마치고 4세대 가속기를 이용자들에게 넘겨주면 임무는 끝나지만 내년부터는 국내외 이용자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4세대의 방사광을 이용한 실험을 시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가속기로 연구를 했다”며 “국내 과학자들도 4세대방사광을 이용해 세계를 이끄는 연구 결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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