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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만큼 아는 만큼' 박물관 산책 (5) 청동거울(대구박물관)

  • 입력 2016.01.06 00:00
  • 수정 2016.03.29 18:14
  • 기자명 김윤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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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녹을 벗기듯 나를 비추는

거울은 생활필수품이다. 특히나 여성에게 거울은 거의 ‘생존필수품’이다. 아니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남편 없이는 살아도 거울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 그 이름이 여성이다. 신석기시대 무덤에서부터 거울은 발견됐다. 이 당시 발견된 것이 동경(銅鏡), 고경(古鏡), 보경(寶鏡)이라고도 불리는 청동거울이다.

청동거울은 동판의 표면을 다듬고 문질러서 얼굴이 잘 비치도록 만들었다. 보통 그 뒷면에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무늬나 길상어(吉祥語) 등을 새겨 장식했다. 그런 까닭에 청동거울이 거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후대에 와서도 금속 공예적인 측면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빛의 반사를 이용해 물체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본래의 기능을 하는 거울면(경면)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청동 거울의 경면 처리는 거푸집에서 거울을 분리한 후 표면을 줄로 갈고 숫돌로 고르게 한 다음 빛의 반사효율을 높이기 위해 탄가루로 문지르거나 주석으로 도금을 하거나 수은 피막을 입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거울의 역사에서 중국 당대(唐代)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때는 활발한 대외교류를 통해 새롭고 독특한 외래 문물을 들여와 전통적인 것들과 접목·변용시킨 문화의 황금기였다. 다채로우면서도 풍성한 당대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뤄낸 이 시기는 ‘중국 동경의 르네상스’였다.

단일한 원형을 기본으로 마름꽃모양[능화형(菱花形)], 접시꽃모양[규화형(葵花形)], 사각형, 아자형(亞字形) 등으로 외형이 다양해졌고, 크기도 작게는 지름 4cm에서 60cm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동경에 나전, 옥, 금·은을 입힌 화려한 거울이 나왔고, 문양도 당대 이전의 동물 무늬 대신 꽃문양이 단독 주제문양으로 등장했다. 용도도 껴묻기[부장(副葬)]용이나 소원 성취, 벽사(辟邪·귀신을 물리침) 등의 주술 목적과 함께 얼굴을 비춰보는 일상 기물로 널리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청동거울은 선사시대부터 나타난다. 거친무늬거울은 크기가 작고 구성이 정밀하지 못하고 만든 수법도 아주 조잡한데 요령성 정가자와, 부여 연화리, 익산 오금산, 대전 괴정동유적 등에서 발굴됐다. 잔무늬거울은 발전된 형태로 한국식동검과 출토지역 분포가 거의 비슷하다. 삼국시대의 거울로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신수경과 전라남도에서 출토된 젖무늬거울이 있고, 신라의 거울은 금령총에서 나온 지름이 7㎝인 작은 거울이 있다.
청동거울은 옛글뿐만 아니라 현대소설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당나라 때에 유행했던 만자동경(卍字銅鏡)을 주제로 한국의 무속적 샤머니즘을 절묘하게 구현한 김동리의 『만자동경』,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것을 보여주는 거울을 형상화한 민경현의 『청동거울을 보여주마』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오정희는 그의 소설에서 청동거울을 소재로 즐겨 사용했다. 단편 『동경』에서 그는 동경을 “땅속에 묻힌 한 조각 거울빛”, “독한 칼빛”이라고 표현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그’는 박물관 매장문화재 전시실에서 말끔히 녹을 닦아낸 부장품인 동경을 보고 자신이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인 듯 느낀다. 죽음이란 주제에 천착한 소설가답게 이 작품에서도 억압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다. 청동거울은 인간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에로스적 욕망의 매개물이었다. 그런 청동거울이 동시에 억압된 죽음의 공포라는 오정희의 소설은 의미심장하다. 늘 그랬듯 다시금 박물관 진열대에 비스듬히 놓인 깨어진 청동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기 전에 거울이 나를 들여다 보고 있다.
김윤곤 기자 seo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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