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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만큼 아는 만큼’ 박물관 산책(4)

청동기시대 화살촉(국립대구박물관)

  • 입력 2015.12.01 00:00
  • 수정 2016.03.24 14:35
  • 기자명 김윤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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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중하지 않고 날렵, 쏠살같이 날아 1km쯤이야

 

역사와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고구려군은 왜 그렇게 강했고, 몽고군이나 터키군은 무슨 이유로 세계를 정복할 정도로 강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무기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고구려나 몽고, 터키의 군대는 모두 상대방에 비해 특별히 우수한 활과 화살을 갖고 있었다. 바투가 이끄는 몽고군이 오늘날 폴란드의 왈스타트 평원에 92만의 유럽기사단 연합군과 전투를 벌일 때의 이야기다. 유럽의 기사는 사람과 말이 모두 무거운 무쇠갑옷으로 무장하고 긴창을 무기로 사용했다. 유럽기사들의 갑옷은 두꺼운 무쇠로 돼 있어 창으로 찔러도 뚫을 수가 없어 일단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창을 세워 들고 말을 달려 그 속도로 쾅하고 부딪혀야 겨우 갑옷을 뚫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이에 반해 몽고군은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작은 조랑말을 타고 짧은 창과 함께 활과 화살을 무기로 사용했다. 이 갑옷과 무기를 본 기사단은 전쟁 전날 카드놀이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웃었다고 한다. “바늘 같은 창을 들고 생쥐같은 말을 탄 타타르의 야만인을 물리치는것은 식은 죽 먹기다.”

실제 전투가 벌어진 초반엔 유럽기사단의 예상대로 몽고군은 상대가 되지 않고 뒤로 쑥 물러나자 유럽기사단은 몽고군 중앙으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이에 뒤로 물러난 몽고군은 삼면으로 유럽기사단 연합군을 포위한 채 접근전을 피하면서 유럽기사단에게 화살을 퍼부었다. 유럽의 둔중한 화살이라면 기사의 두꺼운 무쇠갑옷을 뚫을 수 없었지만, 몽고군의 화살은 유럽기사의 갑옷을 뚫을 만큼 작고 강했다. 몽고군은 유럽기사단 연합군을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우리나라를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동이’는 동쪽 오랑캐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의 뜻은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Scientific American》 1988년 8월호에 고대국가의 활과 화살의 성능에 관현 연구 논문
이 발표됐다. 이 논문에 따르면, 오스만 터키의 화살이 최장 860m까지 날아간 기록이 있다고 한다. 고대와 고구려와 이웃해 돌궐국을 세웠던 터키의 활과 화살이 이 정도라면 분명히 고구려의 활과 화살도 오스만 터키의 것과 비교할 만하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미국 브라운대학교 물리학과에 교환교수로 가게 된 김성구 교수(이화여대 물리학과)는 다른 교수의 소개로 브라운대학교 기계공학과 김경석 교수를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 김경석 교수는 역학(mechanics) 과목을 맡게 됐는데 탄성, 힘, 운동량에 대한 실험자료로서 고구려의 활과 화살을 재현해 학생들에게 실험을 시켰다. 고대 문헌을 찾아 고구려와 터키의 활과 화살의 재료가 됐던 나무를 찾고 나무의 탄성과 강도를 연구하고 활과 화살의 구조를 밝
힌 후 이것을 바탕으로 전자기적 기계장치를 만들어 재현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터키군의 화살은 800m 정도 날아갔고 고구려의 화살은 무려 1km 이상 날아갔다.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전시되고 있는 청동기시대 화살촉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20여 년 전 김경석 교수의 실험 결과가 새삼 와닿는다. 청동기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화살은 둔중하지 않고 날렵했다. 하나같이 버들잎처럼 경쾌하다. 청동기시대에 이미 저토록 날렵하고 예리해진 화살촉은 고구려시대에는 바람만큼이나 가벼워져 한번 시위를 당기면 1km쯤이야 쏜살같이 날아가지 않았을까. 저 화살촉들이 무려 3,000년 전 이 땅의 청동기시대 것이라니. 자꾸만 요즘 만들어진 것 같아 화살촉을 다시 들여다본다.


김윤곤 기자 seo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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