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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아들.서울대수석 딸 “진짜 스타킹은 우리 아버지!”

대구의 ‘스타킹’ 가족 정봉진씨네

  • 입력 2013.04.12 00:00
  • 수정 2015.08.18 11:22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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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진(48 . 대구시 북구)씨네 가족은 “스타킹 가족”으로 통한다. 지난해 말 SBS ‘스타킹’에 출연해 팝페라 가수 임형주와 함께 노래를 부른 이 집의 막내 정대균(19)군 덕분에 붙은 별칭이지만, 누나와 아버지도 ‘스타킹’ 감이다. 우선 누나(정지선 . 22)는 서울대 성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인테리어를 하는 아버지는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방송 세트를 새 단장하는 서울의 모 방송국에 대구 대표로 출장을 다녀올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온 가족이 자기 분야에서 나름 ‘스타’인 셈이다. 그러나 가족투표로 뽑은 진짜 스타킹은 아버지 정봉진(48)씨다. 지선 . 대균 남매는 “재능을 물려주고 발굴한 어머니의 공도 크지만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주신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성과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교 시절 대구 대표 권투 선수였던 아버지
정씨에게는 두 자녀를 예능 영재로 키운 것 자체가 일생의 도전이었다. 가정 형편
도 넉넉지 않은데다 예능 쪽으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재능 하나만 믿고 도
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아들 대균이가 음악에 재능을 드러냈
을 때 그저 취미 생활로 만족하길 바랐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오페라 하우스와
KBS 공개홀 무대에 선 정군이었지만, 공부도 곧잘 했다. 줄곧 전교10등 안에 들었
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절망이 오는지 잘 알고 있
었기에 아들의 손을 들어줬다.
정씨는 고교 시절 권투선수였다. 대구 대표 선수로 뛰었다. 승률도 높았고, 승리
한 게임 중 98%가 KO승일 정도로 주먹이 셌다. 말 그대로 타고난 복서였다. 그러
나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리디스크가 왔다. 오로지 권투밖에 몰랐던 그는 더 이상
링에 설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죽을 결심으로 단식에 들어갔다. 누나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그때 아사했을 수도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
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뼈저리게 깨달았죠. 아들에게 그 행복을 포기하라
곤 못하겠더라고요.”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는 삶의 태도
얼마 후 동생에 이어 누나까지 음악에 두각을 드러냈다. 반갑기보다 두려웠다. 그
때도 용기가 필요했다. 재정적인 문제가 제일 컸다. 레슨을 받으러 갈 때마다 빚을
내야했다. 다행히 지선씨는 집중력이 뛰어나 남들만큼 레슨을 자주 받진 않았다.
대입을 앞두고도 1달에 1번 정도밖에 레슨을 하지 않았다. 보통 성악을 전공하는 고
교생의 경우 레슨을 으레 평소 주1회, 콩쿨을 앞두고는 주3~4회 정도 한다. 그러나
기량은 다른 학생들보다 빨리 늘었다. 레슨을 하던 선생님이 대구에 다른 선생님이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지선씨는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레슨이라고 생각하
라는 아버지의 조언이 집중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정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평범하지 않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어려움을 어려움으
로 여기지 않는 삶의 자세”를 터득했다고 고백했다. 권투를 그만둘 무렵 교회를 다
니기 시작한 덕에 신앙에 의지한 부분이 크지만, 신앙이 깊지 않던 시절에는 고비
가 올 때마다 ‘깡’으로 버텼다. 순탄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장인이 울진에서 통신
공사업을 크게 하고 있었다. 장인 밑에서 고분하게 일을 배웠다면 지금쯤 남부럽
지 않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나중에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
할까. 그저 할아버지 덕에 먹고산 아버지라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독립을
결심했다. 이후 말 그대로 막노동판에 뛰어들어 인테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
서 고생을 한 셈이었다. 저녁에 누우면서 “다음 날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하는 기
도를 한 적도 많았지만, 그런 세월을 보낸 덕에 어려움마저도 마치 남의 일처럼 관
조하는 삶의 자세를 터득했다. “고민은 아무 소용이 없더라구요. 신앙 안에서 내
려놓는 연습을 한 거죠. 문제는 여전하지만, 마음은 평안합니다. 늘 감사하죠.” 정
씨의 다음 목표는 두 자녀를 정신적으로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이다.
딸은 대학을 가면서 온전히 독립하다시피 했지만, 아들 대균은 아직 아버지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싱가포르 국립 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NUS)에 합격하면서 한층 어른스러워졌다.
“두 아이 모두 스스로 잘해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신념과 목표가 너무도 뚜렷하
거든요. 특히 대균이는 그 누구보다 힘들게 공부한 만큼 싱가포르 음대에서 열심
히 공부해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 통하는 스타킹이 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
습니다.”

* 싱가포르 국립 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NUS)
-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대다.
도쿄 대학교, 베이징 대학과 함께 아시아 3대 명문대학으로 꼽힌다.
2011년 영국 대학평가 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에서 아시아
3위, 세계 28위의 순위를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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