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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준 교훈

  • 입력 2015.07.22 00:00
  • 수정 2015.12.03 15:15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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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의 전쟁, 총칼 전쟁보다 더 중요

전염병은 도시와 무역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 집성촌을 이루거나 이동이 잦으면 어김없이 전염병과의 사투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전쟁터도 예외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총, 칼보다도 전염병이 오히려 더 결정적인 승패요인으로 작용하곤 했습니다.

1525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신성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간의 전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로마로 진격한 카를 5세는 페스트 때문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를 틈타 프랑스 군대가 진격했지만, 황제가 나폴리로 도망간 사이 프랑스 군대에 이번엔 발진푸스가 유행했습니다. 황제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대관식을 진행했습니다.

한때 유럽전역을 강타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위생 군대’였습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위생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생과 군사력이 비례한 셈이었죠. 근데 단 한번의 예외가 있었습니다. 1812년, 러시아 원정 때였습니다. 45만의 병력을 데리고 출발했지만 장티푸스와 이질이 도는 바람에 모스코바에 입성했을 때는 10만, 프랑스로 돌아왔을때는 고작 전염서4만의 병사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식민지로 파견된 군대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18세기, 서인도 제도의 자메이카 에 주둔한 영국군은 매년 18.5%가 사망했습니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세는 전염병등으로 죽는 비율이 무려 36.2%에 달했다고 합니다.

군대는 전염병이 전파되기 가장 좋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단생활과 장거리 여행이라는 요인 때문입니다. 그만큼 전염성 질병에 대한 관리나 위생 의식이 철저해야한다는 이유입니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군 상사들이 지겹도록 ‘청결’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열린 문, 전염병도 함께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창궐하던 전염성 질병과는 다소 무관하게 살아왔습니다. 삼면이 바다인데다 6.25이후 오랫동안 하늘 길과 바닷길을 막아놓고 지낸 까닭입니다. 여행이 자유로워진 후에도 사방팔방 뚫려 있는 유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장벽이 튼튼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문호가 넓어지고 소득이 늘면서 나라 밖 나들이를 하는 사람과 여행객들이 어느 때보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오는 사람도 많고 가는 사람도 많은 만큼 질병의 위험도도 그만큼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시대와 환경이 급변했지만 전염병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이번에 전국을 강타한 ‘메르스 사태’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들어왔지만 정부 당국은 물론 전문가나 시민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시대에 동떨어진 사고와 행동을 보였습니다.

정부 당국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겠지만 초기 메르스 전파 병원에 대한 비공개원칙이 사태의 파장을 키운 단초가 됐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패착은 비공개원칙을 주창한 전문가 모두가 의사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병원소속 의사들은 공개시 예상되는 해당 병원의 치명적인 타격을 우려, 당연히 비공개원칙을 강조했을 거라는 논리를 정부 당국은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비공개와 함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메르스 확진자에 대한 정부당국의 안이한 초기대처와 격리자의 관리 부실 및 미숙함은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인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시민의식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은 분명 우리 모두가 한번 심각하게 되돌아 봐야할 사안입니다. 이와 반대로 확진을 받고도 골프를 치러 가는 등 병을 대수롭게 않게 여긴 태도도 더욱 되새겨야할 문제였습니다. 특히 대구의 경우 위험 지역에 다녀온 뒤 몸에 열이 오르는 상황에서도 정상 출근에 회식, 심지어 목욕탕 등 다중집합장소까지 아무런 제지없이 돌아다닌 공무원 때문에 온 도시가 공포에 떨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초라한 시민의식을 대변한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것입니다. 메르스 종식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의 문이 넓어지고 나라간 왕래가 급증하는 만큼 전염병이 전파될 위험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질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떠나서 이제는 대처를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더 큰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쇄국 정책을 펼칠 생각이 아닌 이상, 방역관리 시스템을 보다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전문가들은 전문가대로, 시민들은 시민대로 전염병 대처요령을 지금부터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와 문화, 그리고 질병의 세계화 시대, 우리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에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번 메르스 사태가 가져다준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유명상(대구한국일보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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