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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기

우여곡절 시골 합창단 창단공연기(記)

  • 입력 2024.03.07 11:23
  • 기자명 이종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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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늘 도망가’라는 노래가 청도군 청소년수련원의 다목적 홀에서 울려 퍼지면서 남녀 혼성합창단인 ‘안코라 죠바니’의 창단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2023년 12월 15일, 합창단을 만든 지 꼭 14개월 만이었다.

작년 9월에 7명으로 합창을 시작할 때만 하여도 1년여 만에 창단 연주회는 꿈도 꾸지 못했다. 노래를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유학파 지휘자 선생님 부부를 중심으로 모여서 시작한 합창 모임이었다.

합창단을 만들고 1년이 지나 선생님께서 창단 연주를 할 계획을 발표했다. 나를 포함해서 단원들은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창단 연주를 하기 전부터 무대에 몇 번을 섰지만, 두서너 곡의 노래를 선보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창단 연주회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연습했던 노래들을 부르며 합창단으로 태어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부푼 가슴을 안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나 창단 연주회라는 큰 행사는 노래만 열심히 연습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노래 외에 부수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현실적으로 회원들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 들었다. 그래서 단원들이 부담하는 비용을 정하고 그 이상은 단원들 각자 찬조를 받기로 했다.

참으로 찬조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힘들었다. 한 달이 넘도록 다른 사람에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다른 단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11월 초에 단장님께서 먼저 큰 금액을 쾌척하셨다. 무대도 빌려야 하고, 작은 책자, 초대장도 만들고 일을 진행함에 시기적으로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합창한 지 1년이 되었고 창단 연주회를 앞두고 있는데 단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라서 찬조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오빠는 부부가 같이하는 취미생활을 참 잘했다며 “얼마면 되노?”라며 흔쾌히 찬조금을 보내어 주었다. 처음 말하는 것이 힘들었지 두 번째는 쉬웠다. 이웃에 통닭 가게를 하는 동생에게 말하니 선뜻 동참해 주었다. 단원들 각자 열심히 노력해서 찬조금과 단원들 회비로 공연 금액을 드디어 마련하였다. 뿌듯하고 기뻤다. 이제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단원들이 무대 위에 서는 단상이 없었다. 여기저기에 빌려 보려고 알아봤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살 시간도 빠듯했고, 사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 들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단원 중에 한 분이 직접 만드시겠다고 했다. 딸기 농사를 지으시는 분인데 용접도 하시며 뛰어난 손재주로 익히 알려져 있었다. 연세도 있고 하여 너무 힘들 것이라며 말려보았지만 재능 기부하겠다며 의지를 보이셨다. 그러자 다른 분들도 힘을 보태시겠다며 단상을 만드는 것에 동참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꼬박 3일을 매달려서 9개의 튼튼한 단상을 만들었다. 꼼꼼하게 오일스텐까지 칠해서 완성도 높은 단상을 만들었다.

자발적인 참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공연 당일 합창단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업체에 맡기면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자 여성 단원 중 한 명이 영상 만드는 것은 안 해봤지만 한 번 해보겠다며 나섰다. 영상 만드는 앱을 자비로 사 몇 날 며칠을 밤잠 설치며 만들어서 멋진 홍보영상을 만들어냈다. 후문에 의하면 공연 영상을 담당하는 업체에서 단원 소개 영상을 서비스로 해주겠다고 지휘자 선생님께 말했는데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 단원 중 한 분이 그 영상을 만들었으니 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다”라고 지휘자 선생님께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 또한 멋지지 않은가.

안무도 한국 무용을 배우시는 단원이 며칠 동안 잠을 설치고 고민하여 만들어 재능 기부를 하였다. 무대 배경을 꾸미기로 하여 가지고 있던 한복 천을 기부하여 그 천을 예쁘게 만들어 무대에 설치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단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창단 연주회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러한 배려와 사랑으로 모였지만 연주회 전날 위기의 사건이 생겼다. 노래에 맞춘 안무가 있었는데 잘 맞지 않아서 안무 수정을 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수정을 하다가 연주회 전날까지 수정하니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노래만 하기에도 바쁜데 안무까지 자꾸 바뀌니 당연히 불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동작을 틀리지 않으려고 동작에 신경을 쓰니 노래를 흘려버리는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더 그러했을 것이다. 큰 소리도 나오고 감정의 대립도 생겼다. 예민해져서 그런지 작은 것에도 감정이 튀어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그날이 왔다. 연주회 전날부터 이틀 동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기대감과 불안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일찍 가서 총연습하고 공연 시각 7시 정각에 단원 소개 영상을 시작으로 드디어 연주회는 시작되었다. 관객들은 얼마나 왔는지 무대에서 실수는 하지 않을지 무대 뒤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웠다. 관객석을 보니 좌석을 다 메우고 자리가 모자라 관객들은 통로와 뒤쪽에도 가득 서 있었다.

한 곡 한 곡 무대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우리에게 호응해 주었다. 어제 문제가 되었던 안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더욱 빛이 났다. 힘찬 박수로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앙코르곡 ‘두 개의 작은 별’을 부를 때, 관객들은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호응해 주었다. 앙코르곡을 부르고 있는데 지휘자님의 땀과 눈물이 뒤섞인 모습을 본 단원들 한 명 한 명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전문 합창단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마추어 티를 팍팍 냈다. 아마추어이지만 우리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닿아서 감동을 준 것이었다. 그런 감동은 다시 우리에게로 전해졌다. 프로 합창단의 감동도 있겠지만 우리는 계속 마음을 다하는 아마추어의 감동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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