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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쌀 배달 아저씨’ “이제 시민들에게 클래식 음악 배달합니다”

민족운동가 서상돈 ‘아너 소사이어티’ 특별회원 추대
6년 동안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대표, 20년간 예술가 후원
그래미 어워드 프로패셔벌 아티스트 김소피수 ‘글로벌 메세나 in 대구’ 이름 지어줘
“메세나 활성화로 지역서 성장한 예술가들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으면

  • 입력 2023.11.23 10:07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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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식(68) 아트빌리지 대표는 올해부터 ‘글로벌 메세나 in 대구’를 이끌고 있다. 신 대표는 “지역에서 양성된 예술가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으면 한다”면서 “앞으로 메세나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규 기자
신홍식(68) 아트빌리지 대표는 올해부터 ‘글로벌 메세나 in 대구’를 이끌고 있다. 신 대표는 “지역에서 양성된 예술가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으면 한다”면서 “앞으로 메세나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규 기자

“처음에 그 아이디어를 냈더니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추진하자고 그래요. 다른 데서 알고 선수치면 안 된다고.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라고 감탄을 하더군요.”

발단은 대구 중구의 옛 중앙파출소 앞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이었다. 12월에서 1월 사이에 설치해 모금액이 모인 만큼 온도계의 수은주가 올라가는데 붉은 기둥이 좀체 위로 솟구치지 않았다. 모 일간지 사진물 제목도 ‘사랑의 온도탑 꽁꽁’이었다. 대구아너소사이어티회원 대표를 맡고 있는 신홍식(68) 아트빌리지 대표는 고심 끝에 고귀한 삶을 산 분이나 역사 속 위인을 ‘아너 소사이어티’ 특별회원으로 추대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첫 특별회원에 추대된 위인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 을 주창한 민족운동가 서상돈(1850~1913) 선생이다. 특별회원 추대는 제3자가 1억원 이상 기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추대가 성사됐다.

신 대표가 맨 처음 염두에 두었던 인물은 고(故) 심정민 소령이었다. 심 소령은 대구 능인고등학교 출신으로 지난해 1월11일 경기 화성시에서 비행 중 기체 결함으로 추락해 순직했다. 블랙박스 기록 분석에 의하면 사고 당시 전투기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을 향해 있어 비상탈출을 감행하지 않고 조종간을 끝까지 붙들고 기수를 틀어 야산으로 향했다. 탈출기회는 단 10초, 그 촌각을 다투는 시각에 과감히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신 대표는 고인의 흉상을 제작해 올해 봄 능인고에 기증했다. 동상은 교문 옆 화단에 놓아두었다.

 

꾸준한 기부, 쌀도 예술 지원도 20년 이상

서상돈 선생을 특별회원으로 추대했던 소식이 전해진 후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역시나”하는 반응이 많았다. 5년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대표를 맡고 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액수와 횟수를 떠나 아이디어가 빛난 경우가 많았다. 최초는 아니지만 2021년 작고하신 아버지(신현철)와 어머니(김옥순)의 이름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여원을 기부해 두 분을 아너 소사이어티 명예회원으로 등록하기도 했고, IMF 이후 26년 동안 매월 80가정 이상에 직접 쌀을 배달해 ‘쌀 배달 아저씨’라는 별칭을 얻기까지 했다.

그를 전국적인 유명 인사로 만든 기부는 아트빌리지다. 2005년부터 대구 달서구 두류동에 오피스텔을 사들여 (사)아트빌리지를 만들어 지역작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 계명대학교 미대 학장을 역임한 장이규 화백을 필두로, 김윤종, 김영대, 정창기, 박종경 등 50여 명이 아트빌리지를 거쳐 갔다. 금액으로 계산하면 30억 상당의 기부를 한 셈이다.

그렇게 예술가들을 후원한 세월이 20년이 다 되어가자 서울에 소문이 났다. 이름은 몰라도 “누가 예술가들에게 자기 건물을 작업실을 내주는 지원한단다”하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지난해 한국메세나협회에서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을 통해 대구경북 지역 메세나 운동을 주도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평소 가장 마음을 기울이고 있던 분야여서 흔쾌히 수락했다. 올해 3월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8명이 주축이 되어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경창산업 본사 강당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기부, 철학적 깨달음 있어야

분위기가 좋다. 무엇보다 출발이 근사했다. ‘글로벌 메세나 in 대구’란 이름을 지은 과정부터가 그렇다. 원래는 대구메세나협회쯤으로 지으려고 했으나 때마침 대구를 방문한 대구 출신이자 그래미 어워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프로페셔널 아티스트에 선정된 김소피수 만났다. 그때 대구에 국한되지 않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면서 위의 이름을 작명해줬다. 

“지역에서 양성된 예술가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이름입니다. 기업과 시민이 메세나를 통해 문화예술을 함께 누리는 동시에 세계와 호흡하는 거지요.”

신 대표는 “클래식 혹은 문화라고 하면 아직도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게 메세나 운동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시민들이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플레시 몹’과 같은 형태도 구현해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겠다”고 밝혔다. 

내년 3월에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이자 대구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혜선 씨의 초청연주가 기획되어 있다. 시민들이 무료로 공연장을 방문해 클래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오랫동안 기부를 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하도록 격려하고 이끄는 역할도 해온 만큼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름의 철학이 생겼다. 가장 안타까운 사례들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고도 남을 자산가들이 재산을 차곡차곡 쌓기만 하는 경우다. 신 대표는 “저절로 얻어지는 큰돈은 사람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면서 “필요한 만큼은 줘야겠지만 유산만큼 ‘과유불급’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부분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에 따르면 기부를 안 하던 사람이 기부를 할 때는 ‘동정심’이 가장 큰 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동정심’의 방향이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다. 

“기부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작은 세계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내가 왜 이렇게 살지?’ 하는 생각이 망치처럼 뇌리를 꽝 치는 순간 기부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흔히들 말하잖아요. 기부하고 봉사하면서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고. 누군가는 저한테 그래요. ‘우리 사회에 돈밖에 없는 거지가 너무 많다’ 고요. 나누는 행복을 모르면 가난한 거죠. 우리 사회에 따끔한 철학적 일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 대표는 “당분간 메세나에 주력하겠다”면서 “ 메세나를 통해 기부자는 베풀고 나누며 사는 보람을, 시민들은 함께 문화를 향유하는 데서 오는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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