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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셰프 스승에게서 독립 제 이름 건 첫 도전 시작합니다”

합기도 도장 접고 요식업계 뛰어들어 13년째 도전 중
일본 요리 학교서 배운 건 ‘특별한 비법’보다 ‘기본기’
정호영 셰프 제자, ‘그 스승에 그 제자’란 평가 받고 싶어

  • 입력 2023.11.28 09:08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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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우리한테 말을 한마디도 안 해. 맨날 꾸중 듣는 형이 오히 려 부러워.” 김영환(37)

 셰프가 일식계의 스타인 정호영 셰프의 식당에서 일하던 시 절, 사장에게 매일 꾸중을 듣는 게 힘들어 동료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가 듣게 된 일침이었다. 꾸중이 오히려 특혜라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오너인 동시에 ‘스승’인 정 셰프의 말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꾸중으로 포장되긴 했 으나 애정이 담긴 가르침이었다. 김 셰프는 13여 년 전 요식업계에 뛰어든 이후 정 셰프의 식당에 취업해 요리를 배웠다. 동료들의 말처럼 각별한 가 르침을 받은 적이 많았다. 2021년부터 약 1년 동안 지상파 텔레비전에 출 연할 기회를 얻은 것도 그에겐 ‘특혜’였다. 정 셰프뿐 아니라 당신의 가족 들까지 그야말로 가족처럼 대해준 것도 각별한 부분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올해 초 스승의 식당을 떠나 대구로 내려와 독립했지만 주방에 들어설 때마다 귓가에 늘 스승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 하다”면서 “대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제자로서의 도리라 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기도 도장 관장님’에서 요리사로

 요식업에 뛰어들기 전 김 셰프의 이력이 특이하다. 2010년까지 합기도 도장 관장 을 했다. 더 이상 도장을 경영하기 힘들다고 느꼈을 즈음 프랜차이즈 식당 하나가 눈 에 들어왔다. 저걸 해야겠다 싶었다. 도장을 접고 서울로 올라갔다. ‘식당으로 성공해 서 돌아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고시원에 방을 잡고 식당에 취직을 했다. 어쩌다 정 셰프의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 었다. 식당일은 만만치 않았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바빴고, 합기도로 다진 체력으로 도 일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결국 사표를 던졌다. 식당은 나왔지만 대구로 돌아갈 수 는 없었다. 2년 남짓 이 식당 저 식당 적을 옮기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상을 이 어갔다.

“너 여기서 뭐해?”

 우연히 정 셰프와 다시 마주쳤다. 대구로 내려간 줄 알았던 제자를 서울에서 발견하 고는 놀라서 던진 질문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일해라.”

그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부끄럽기도 하고 동시에 오기 같은 것이 불쑥 솟구쳤다. 일본행을 결심했다. 정 셰프의 입지전적 프로필이 시작된 곳은 일본의 음식 학교였다 는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스승의 길을 따라 걸으면 그만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 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일본 요리학교에서 깨달은 요리의 ‘진실’

 2013년 오사카로 떠났다. 부푼 꿈을 안고 조리사전문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나 얼마 안 가 환상이 깨졌다. 대단한 비결을 가르쳐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특별할 게 없 는 수업의 연속이었다. 다시 회의감에 휩싸였다. 그래도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 나름 열심히 파고들었다. 그러던 중 한인타운에서 사업가 한 명을 만났다. 그는 “내가 자금 을 대줄 테니 일식집을 해보라”고 권했고 그와 손을 잡았다.

 몇 달 후 스승을 다시 만났다. 학교에서 ‘성공한 선배’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홍보문 구와 함께 정 셰프의 사진이 떡 하니 내걸려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 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동업자가 가게를 책임지고 정리해놓고 가라고 요구했다. 실 랑이 끝에 고깃집을 새로 열어서 김 셰프가 3달 동안 일해주기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3달 동안 고깃집을 자리 잡게 해준 다음 한국으로 넘어왔다.

 자칫 악연이 될 수도 있었던 재일교포 사업가와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 다. 생각이 바뀌면 대뜸 사표를 던지고 떠나버렸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도 종종 그분과 안부를 주고받는 통화를 한다”면서 “일본에서 요리보다는 인생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 꾸중 들은 이유

스승의 가게로 돌이왔을 땐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7년 동안 말 그대로 수도하듯 요리를 공부했다. ‘요리’의 본질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요리에 뭔가 대단한 기술이 있 는 것도,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기본을 다지고 그 기본을 바탕으로 아등바등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김 셰프는 남 들이 칼질을 열 번 할 때 저는 백 번을 한다는 각오로 요리에 매진했다. 기본의 중요성 과 땀 흘리고 애쓴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스승의 말을 되새기며 하루하루 정진했다. ‘길’이 보이자 동시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전에는 숙제처럼 주어진 요리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마치는데 급급했다면 나름의 확신과 신념이 생긴 뒤로는 손님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숟갈을 딱 떠본 후 손님의 얼굴에 나타나는 반응이 있어요. 그게 제 요리에 대 한 평가인 거죠. 예전에는 요리 마치면 내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 터 첫 숟갈을 뜨는 손님들 얼굴이 확대경을 들이댄 것처럼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자기주도적으로 일을 한 뒤로는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나는 듯이 가벼워졌다. 매일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할까, 어떤 시도를 할까, 어떻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까, 하는 생각으로 출근길이 설렜다. 힘든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기본기에 대한 자신감, 땀에 대한 신뢰, 요리를 향한 진심으로 상황을 돌파해냈다.

 김 셰프의 최종 목표는 정 셰프의 아류가 아니라 그에게서 출발해 더 푸른 쪽빛을 내는 것이다. 이 또한 스승의 가르침이다.

 “언젠가 스승님께 스승님의 반만 따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호되게 꾸중을 들었어요. ‘그 생각 자체가 글러먹었다’고요. ‘나보다 잘해야지!’ 하고 말씀하 시더라고요.”

 김 셰프는 “그 단호한 목소리가 내내 마음에 맴돈다”면서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소리를 듣는 셰프로 우뚝 서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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