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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교양 읽기

정치는 뉴스를 오염시켰다.
(…) 그러나 18세기에는 시끄 럽고 왜곡된 신문과는 동떨어진
새로운 형태의 정기 간행물이 대두하는 첫 징조가 나타났다.
‘저널( journal)’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입력 2023.08.25 09:00
  • 수정 2023.08.28 08:56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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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의 시대

진실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뉴스 보도의 권위가 위기를 맞이했음을 나타낸다. 정치적 환경이 점차 적대적으로 변하면서 뉴스 보도도 어떤 면에서는 퇴보한 것으로 보였다. 진실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혼미한 여론, 당파적인 정치가 행한 조작과 남용에 짓눌렸다. 정치는 뉴스를 오염시켰다. 이는 물론 결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뉴스 인쇄물을 설득의 매개체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현대까지도 계속해서 독자들의 비판적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시끄럽고 왜곡된 신문과는 동떨어진 새로운 형태의 정기 간행물이 대두하는 첫 징조가 나타났다. ‘저널(journal)’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8세기에는 정기 간행물의 눈부신 부상이 목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이 언론 매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었다. 그 대신 18세기에는 주간 또는 월간 단위로 배포되는 문학, 문화, 과학, 학술 저널 등 정기 구독자를 위한 연재물 형태의 출판물이 무수히 등장했다. 새로운 정기 간행물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는 번영의 시기였고 식자층도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전문 엘리트층이 확대됨과 동시에 과학 지식과 전문 지식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전문가 계층은 새로운 정기 간행물의 필자이자 구독자가 되었다. 이들 정기 간행물은 신문과는 달리 권위, 전문 작가, 담론 분석의 전통적인 원천에 기반을 둔다. 이 시기는 상당한 가처분 소득을 보유한 부르주아 계층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활발한 소비 사회의 새구성원들은 문학, 음악, 연극 등 고상한 취미 생활에 쓸 수 있는 돈도 충분했다. 그들은 사교계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디면서 어떤 지침이든 고분고분 따랐다. 세련된 문화를 처음 향유하게 된 이 신참들은 취향과 옷차림에 도움이 될 만하다면 무엇이든 반겼다.

출판사들도 저널 시장의 발전을 반겼다. 많은 저널이 당국의 반감을 살 수도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시대 사건에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그러한 정책을 엄격하게 고수하기보다는 지지하는 편이었다. 이들은 분명 상류 사회와 국왕의 스타일을 강박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당대의 유행을 포착하는 것이 저널의 주요 역할이었다. 사회 특권층과 그들의 사업은 보통 당대 최고의 유행이 되었다.

저널의 부상은 사회 현상으로서, 그리고 뉴스 시장에 미친 영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좀 더 사적인 논조의 장문의 기사를 특징으로 하는 저널이 성장하면서 지금까지 뉴스 보도에서 피해왔던 저널리즘 전통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사실 오늘날 저널리즘의 본질로 여겨지는 비판적이고 양식적인 특징들 중 상당수가 이 18세기 저널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저널은 대중에게 전장이나 궁정 알현식의 중요한 소식을 나열하면서 그때까지 신문이 놓치고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저널은 위협조의 정치 평론 신문보다는 좀 더 가벼운 어조로 비판과 취향, 판단을 제공했다. 저널은 독자들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시간을 들여 논쟁이 되는 사건을 설명하고 논변을 전개했다. 재미있고 즐길 거리로 삼기 좋았다. 무엇보다도 저널은 18세기의 《스펙테이터》에서선보인 기분 전환용 잡문(雜文)처럼 독자들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제공했다. 매주 독특한 목소리로, 독자들의 거실에 친숙한 인물과 새로운 패션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혹적이고 중독성 있는 혼합물이었다.

인터넷과 SNS가 없었던 시절, 더 나아가 TV 뉴스와 신문마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소식을 주고받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실 엄밀한 의미의 신문은 17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한,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다. 하지만 신문이 있기 전에도 옛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가깝고 먼 곳의 여러 정보를 공유했다. 21세기인 현재 못지않게 당대에 그토록 다양한 매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언론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으로 보는 신문의 탄생 배경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이 책이 ‘신문’의 역사에 국한하지 않고 ‘뉴스’의 역사 전반을 다룬다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중세 시대 일부 지배층이 전령과 서신을 통해 소식을 교환했던 데서 시작해 신문으로 먼 곳의 소식까지도 대중에게 널리 읽히기까지 뉴스의 역사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인물에 의해, 당대인의 수요와 취향에 따라 매우 다각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했다. 이 책에서는 필사본 소식지, 팸플릿, 대판형 뉴스, 발라드, 아비지, 저널 등 무수히 만들어지고 사라졌으면서도 각각 독자적인 위상과 독자층, 어조를 유지하며 사람들의 일상을 차지했던 여러 매체를 시대순으로 낱낱이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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