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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유능해도 승진하면 무능해지는 이유 ‘이 지식’ 때문

  • 입력 2023.08.31 09: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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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icature_ 강은주
Caricature_ 강은주

 정부가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파격적이다. 핵심은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대학이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인데, 학생이 자신만의 전공을 만드는 수준으로까지 갈 가능성을 열어젖힌 결정이다.

 이와 관련해 날카로운 지적이 하나 있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늘어나면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기초학문이 외면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기초과학은 의대에 밀리고, 인문학은 이과 계열에 밀리는 형국이다. 그런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여섯 살 아이의 절반이 사교육을 3개 이상”

 크게 봐서 인류는 두 가지 류의 지식을 쌓아왔다. 하나는 ‘쓸모있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쓸모없는 지식’이다. 일단 쓸모가 있으려면 ‘점수’ 같은 측정 수치나 구체적인 쓸모가 있어야한다. 그런 것이 없으면 필요 없는 학문이 된다.

 쓸모없는 지식은 인간이 그 쓸모를 찾지 못했을 뿐 그 어떤 쓸모 있는 지식보다 유용하고 요긴한 경우가 많았다. 인간이 경험하는 최초의 교육은 스킨십이라고 생각합니다. - 과거에는 ‘쓸모없다’고 여겼으나 최근에는 그 효용을 발견했다.

 구체적인 예가 있다. 2차 대전 때 전쟁고아가 많이 생겨났다. 국가에서 고급 시설을 만들어서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위생까지 신경 써서 키웠는데, 환경이 열악한 민간 고아원보다 사망률이 높았다. 원인은 신체 접촉이었다. 돌볼 인원도 부족하고 또 지나치게 위생에 신경 쓴 결과 덜 안아준 것이다.

 제임스 프리스콧이라는 신경심리학자는 400여개 문화권을 조사해보고 애정 표현에 개방적인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여러 연구에서 부모와 스킨십이 많은 아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 폭력성이 낮고, 정신적 안전, 자존감, 자신감이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놀이는 사회적 관계를 연습시키는 측면도 있고, 나중에 몸으로 하는 일들과 관련해 기술적 숙련도를 높여준다. 젓가락이 정교한 작업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놀이가 그처럼 신체의 세밀한 근육을 사용하는 훈련을 시켜준다. 최근 “여섯 살 아이의 절반이 사교육을 3개 이상 받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너무 일찍 경쟁에 뛰어든다.

 학원에서 배우는 과목과 달리 스킨십이나 놀이를 통해 얻는 것들은 수치화하기 힘들다. 그래서 효용이 충분히 증명되었음에도 아직도 아예 없는 취급을 받기 일쑤다.

 ◇ “대학? 그 사람들이 뭘 알아요?”

 ‘에덴의 동쪽’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3달 과정의 ‘자동차 강습소’를 수료한 청년이 자동차에 대해 설명을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자동차가 막 나오는 즈음이었다.) 듣고 있던 사람이 “똑똑하네. 대학에 다니는 모양이지?”하고 말했다. 그러자 청년이 버럭 화를 냈다.

 “대학? 그 사람들이 뭘 알아요? 점화 시기 조절 장치를 달 줄 아나, 접점을 다듬을 줄 아나!” 자동차 강습소에서 시작된 인문학의 위기였던 셈이다.

 실용학문이 이렇게 무섭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에 목을 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과거시험 운운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했다. 진짜 학문에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효종 임금 때 5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관리가 차관급 관리에게 “기출문제집 달달 외워서 과거에 합격한 주제에...”하는 폭언을 한 일이 있었다. 과거 시험을 하찮게 보는 것이다 그 관리는 상급자에 대한 폭언 스캔들을 일으키고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개 그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 왜 유능한 사람도 승진하면 무능해질까?

 1969년에 재밌는 책이 하나 나왔다. 능력 있는 사람이 승진하면 무능해지는 이유에 관한 책이었다. 소위 ‘피터의 법칙’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성과가 좋은 직원을 관리직으로 승진시키면 관리를 잘할 것 같지만 그런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일에 대한 전문 지식과 능력은 뛰어나지만 더 큰 책임을 짊어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사회 생활 초기에는 실용적인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지만, 경력이 길어질수록 이전에는 필요 없었던 쓸데없는 공부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전공으로 취직도 하고 능력을 인정받지만, 가면 갈수록 저학년 때 교양으로 배운 쓸데없는 지식들이 요긴해진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졸업장보다 독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전공보다 꾸준한 교양 수업이 더 요긴하단 말로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필요한 지식에만 급급하면 결국 삶이 피폐해진다. 꾸준히 시야와 지식을 넓히지 않고 전공 지식과 경험만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오스카 상을 받은 윤여정 씨가 “나도 육십일곱 살은 처음이라 이 나이의 삶은 나도 서툴다”는 식의 고백을 했는데, 경험의 한계가 무엇인지 잘 설명한 멘트일 것이다. 당장은 필요없는, 쓸데없는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과거의 경험이 아무리 훌륭해도 누구에게나 ‘오늘’과 ‘현재’는 혹은 ‘지금의 나이와 자리’는 처음이다 공부가 필요하다. 나훈아가 ‘테스형’을 부르짖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젊은 시절엔 아무 쓸모 없이 느껴졌을 소크라테스가 생의 단맛 쓴맛을 보고 난 나이에 이르러서 소리쳐 불러보고 싶은 요긴한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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