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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음식의 위대한 맛

미식 여행 이렇게

  • 입력 2023.08.16 09:00
  • 수정 2023.08.17 10:17
  • 기자명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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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그 어떤 진수성찬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매력적인 맛. 가장 저렴하고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메뉴임에도 라면은 그런 ‘명성’을 누린다. 특히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에게 라면이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이다. 건강 프로그램에서 으레 피해야 할 음식으로 손꼽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국민들의 라면 사랑에 세계화에도 성공했다. 흔해 빠졌다고 해서 누가 라면을 무시할 수 있을까. 한번도 안 먹었다면 모르되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에게는 담배보다 끊기 어려운 것이 ‘라면 맛’이다.

 

‘진수성찬’ 만한전석, 그러나 황제는...

만한전석이라는 ‘코스’ 요리가 있다.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1654-1722)가 만들었다. 요리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가 중국을 다스리던 즈음에도 중원을 장악한 ‘이방인’ 만주족과 ‘원주민’ 한족의 갈등이 현재 진행형이었다. ‘음식을 통한 화합’을 시도한 것인 만한전석이었다. 각 지역의 최고 음식을 코스 안에 포함시 켰다. 일설에 따르면 코스가 시작되어 끝나는 때까지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만한전석을 최고의 코스 요리 중의 하나로 치는 듯하다. 강희제가 어떤 음식들로 만한전석을 구성했는지 정확하게 전해지지도 않으나 고급 식당의 메뉴판에는 만한전석이 종종 발견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 최고의 코스요리를 만든 강희제는 정작 화려한 요리보다는 소박한 음식을 즐겼다는 것이다. 황제만 그렇지 않다. 대기업 회장도 그런 일화를 전한다. 비근한 예가 삼성 이재용 회장이다. 옥고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맞은 첫 밥상에서 그가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특별히 요구한 음식이 하나 있었다. 뜻밖에도 그 소박한 통닭이었다. 통닭 값이 꽤 올라 ‘서민음식’의 영역에서 빼려는 분위기도 있지만 대기업 회장에게 통닭이 고급 음식일 리 없다. 가장 화려한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즐겨 찾는 음식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메뉴인 것이다.

18가지 코스요리가 국수 한 그릇만 못했던 이유

평범한 음식의 위대한 면모는 타인의 입장에 서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A씨는 얼마 전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식 ‘만한전석’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청나라의 만한전석만큼은 아니었지만 18가지 요리가 코스로 나온 만큼 고급 음식점이었다. 2시간의 코스가 끝난 후 식당 밖으로 나온 A씨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 ‘나시고렝’의 비밀은

최근 CNN에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았다. 1위와 2위가 모두 인도네시아 음식이었다. 1위 ‘렌당’은 스튜 형식의 고기찜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었다. 2위는 더 평범했다. 나시고렝이었다. 나시고렝은 인도네시아 음식이긴 하지만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볶음밥이다. 베트남에서 뽑힌 음식은 쌀국수, 한국은 김치가 선정됐다. 모두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흔하디흔한 음식들이었다.

‘귀한’ 먹거리들이 맛있는 음식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희귀하거나 고급한 음식은 요리사들도 자주 만들 기회가 없다. 향유층이 얇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도 다양하거나 세밀하지 않다.

그러나 매일 먹는 음식이 겪는 혹독한 경쟁이 차원이 다르다. 정말 맛있지 않고는 주식의 자리를 못 지킨다. 여러 식당에서 만들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다. 또 양념이 강하면 자주 먹을 수 없어서 자극적이지 않고 간도 정확해야 한다. 흔한 음식일수록 최고의 조리법과 숙련된 기술이 적용된다. 요컨대, 정말 맛있는 음식은 가장 흔한 음식이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시장과 동네 골목에 있다

한국에서는 라면이 그런 음식 중의 하나다. 한국인들은 평가에 있어 정말 까다로운 집단이다.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라면 회사들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면서 5,000만 시식단의 입맛을 충족시키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에는 면 요리가 많다. 그런 요리들과 경쟁해서 뚜렷한 성적을 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예부터 면 요리를 즐기던 나라가 아니고, 아시아에서도 대표적으로 밥심으로 살아온 민족인데 면요리에서 이렇게 단시간에 성적을 내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도체와 비슷한 느낌도 든다.

어느 나라를 가든 ‘라면’의 지위에 해당하는 음식이 있다. 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식당에서 가장 흔하게 맛볼 수 있는 메뉴들이다. 그 나라 요리사들이 가장 혹독한 경쟁에 시달리며 만들어낸 ‘평범한 맛’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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