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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국채보상운동과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의 공통점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 입력 2023.06.30 09:00
  • 수정 2023.07.03 15:2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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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가볍게 말하는 ‘수도권’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시골 사람들이 뭘 모르고’ 덤벼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혹자는 아주 극단적으로 ‘고추나 말리는 양양 고항을 보라’고 제시하기도 한다. 인구의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아이 낳아 기르기 힘든 환경과 주택과 환경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데도 그 문제는 그 문제고 지역 균형발전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1960년대에 이미 균형발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 헌법에 균형발전에 관련된 조항을 넣기도 했다. 이후 역대 대통령 중에서 균형발전을 외치지 않는 이는 없었다. 균형발전은 가장 오래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경상도 지역에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2006년부터 흘러나왔다. 이후 밀양과 가덕도가 유치를 놓고 씨름을 하다가 결렬되고 김해공장을 확장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으나 결국 가덕도와 군위에 각각 공항을 건설하게 되었다.

2006년부터 2023년까지 대구경북의 최대 이슈는 늘 신공항이었다. 추락하는 경제, 일자리와 청년 인구 감소, 지역 소멸 등의 이슈와 맞물려 늘 희망을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화두였다. 혹자는 “관심없다”고 했고 혹자는 “사활이 걸린 일”이라고 했다. 뜨겁게 논쟁하고 치열하게 다투면서 무관심과 희망적 낙관의 폭이 조금씩 좁혀졌다. 그렇게 20년의 세월 동안 ‘공항’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다양한 경제적 논의가 일어났다. 집단적으로 경제 공부를 한 셈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국채보상운동이었다. 100여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공항 이슈와 뭔가 닮은꼴이다. 당시 대구경북민들은 국채라는 화두로 국제 정세와 외교, 경제를 공부했다. 그 옛날 사람들이 ‘나라 빚’이라는 개념을 깊이 이해했다는 것은 곱씹어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소수의 지식인이 아니고 다수의 대중이 확고한 지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펼쳤다. 

대구는 사실 그럴 만한 도시였다. 대구는 당시 상업도시였다. 조선후기 3대 시장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었고, 낙동강 물류의 중심지였다. 1876년에 부산포 개항으로 외국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왔는데, 낙동강을 통해 물건을 많이 실어 날랐다. 낙동강을 무대로 성장한 상인이 서상돈 선생이다. 요컨대, 경제 상식이 풍부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바로 대구경북민들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이들에게 심화학습의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국채’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시민 사회 속으로 경제, 국제정세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지식들이 쏟아져 들어가지 않았을까.

국채보상운동을 들여다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여럿 있다. 그중 여성국채보상운동 단체의 설립을 주목할 만하다. 당시 여성들의 사회참여 정도를 생각할 때, 여성들까지 나섰다는 건 그만큼 관련 지식과 정보가 보편화되었다는 뜻이다. 전국의 여성들이 똑같이 반응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대구, 서울, 진주, 평양에 여성국채보상운동 단체가 설립됐다. 이중 분단이 되면서 멀어진 평양을 제외한 대구, 서울, 진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을 꼽으라면 삼성, 현대, LG, 그리고 대우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기업들이 출발한 지역들이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가 설립된 도시들과 일치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삼성은 대구, 현대는 서울, LG는 진주였다. (대우도 대구와 인연이 깊다.)

LG는 1931년에 경남 진주시에 ‘구인회상점’으로 시작한 포목점이 출발점이었다. LG든 삼성이든 해당 지역의 직원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일으켜서 다음 사업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봐야 한다.

국채보상운동이란 집단학습이 일어나고 한 세대쯤 뒤에 해당 기업들이 출발을 했다. 굳이 말하자면 경제공부에 가장 열심이었던 도시의 아이들이 성장해서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대기업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을 시민 운동을 넘어 집단 학습의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총을 든 의병운동이 의기와 분노가 원동력이었다면 경제구국운동에는 ‘지식’ 혹은 ‘경제 지식’이라는 또다른 요소가 필요했다.

신공항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공항은 여러 부분과 연결된다. 이를테면 교통과 산업의 관계, 국가균형발전의 당위성 필요성 등 공항을 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식들을 집단적으로 공부한 것이다. 공항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들어보면 부끄러울 정도의 말들이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언론, 다양한 강연회, 그리고 사적인 토론 등을 통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 공항이라는 시설 하나가 지어지는 것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인적 개발’을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세월이 대구경북에 남긴 것은 가장 작게는 공항이고, 크게 보자면 다음 세대를 이끌 만큼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한, 준비된 ‘시민 집단’의 탄생일 것이다. 공항이 들어서는 군위와 의성을 비롯해 대구와 구미, 포항 같은 전통적 산업 도시들이 100여년 전처럼 다시 한번 삼성, 현대, LG 못잖은 대기업을 탄생시키게 되지 않을까.

경부고속도로를 착공할 때, 인천국제공항이 첫 삽을 뜰 때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내다본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고속도로와 국제공항이 한국 경제의 ‘기적’을 견인했듯이 통합신공항 역시 균형개발과 젊음이 몰려드는 지역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믿는다.

Caricature_ 강은주
Caricature_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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