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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냇가에서 래프팅, 시골 아이들의 특권

  • 입력 2023.06.14 09:00
  • 수정 2023.06.22 18:27
  • 기자명 차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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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더버라. 이런 날씨에는 강원도에 가서 래프팅하면 시원하이 좋겠는데.” 

 “동헌아, 동창천 물이 어떻노?”

“행님, 우리 어릴 때에는 동창천 물이 억수로 깨끗했는데예, 지금은 아닙니더.” 

 “우리 아이들 래프팅 시켜주까?”

 “하믄 되지예.”

 7년 전 어느 여름날, 남편과 동네 동생이 주고받는 대화였다. 아이들에게 자상하기로 동네에서 소문난 아빠들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무리 바빠도 하던 일을 잠시 미루는 성격의 두 남자들이다. 하우스 안의 온도가 40도를 넘어가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운 여름날, 두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동창천 래프팅을 즉석에서 계획해서 실행했다.

운문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금천을 지나 매전을 거쳐 밀양에 다다른다. 운문댐으로 인해 식수와 농업용수 등 주민들에게 이로운 점도 많지만, 동창천에서 물고기 잡고 멱감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동네 주민들은 아쉬운 점도 있다. 도도하게 쉼 없이 흘러야 하는 물이 항상 흐르는 것은 아니고, 그로 인해 옛날만큼 깨끗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리에서 삼족대까지의 동창천 래프팅이라는 두 남자의 실천에 엄마들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아이들을 물놀이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했다. 구명조끼, 물놀이 옷, 수건, 모자, 썬크림, 얼음물 등 계획에 없던 갑작스런 래프팅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엄마들은 각각 두 명씩의 아이들을 데리고, 아빠들은 튜브보트를 가지고 금천면 신지리의 물가로 갔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 네 명을 보트에 싣고 아빠 두 명은 보디가드처럼 보트 양쪽을 잡고 물로 걸어 들어갔다. 걸어가다 물이 깊어지면 보트에 올라탈 계획이었다. 그 모습까지 지켜보고 엄마들은 차를 되돌려 보트가 닿을 끝 지점이 잘 보이는 매전면 당호교 위로 갔다. 사진 찍을 준비와 아이들을 부를 커다란 목청도 함께 가져갔다.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리니 점처럼 보이는 물체가 점점 손바닥만큼 크게 보이더니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보트가 내려오고 있었다. 흘러오는 것이 아니라, 아빠들이 양쪽에서 보트를 잡고 물속을 걸어오고 있었다. 물이 얕아서 흘러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빠들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나와 동네 동생 명자는 아이들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사진을 찍어줬다. 아이들도 아빠들도 우리의 부름에 화답을 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 넘치는 래프팅이었다.

 온 농촌을 태울 듯한 기세인 더운 여름을 지나면 농촌은 수확으로 눈 코 뜰 새 없는 가을을 맞이한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면 농촌은 잠시 휴식기를 가진다. 하지만 딸기 농사를 하는 우리는 이때부터 다시 시작이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에도 또 일하는 딸기 농사이다.

 “동헌아, 삼족대 앞에 강물 얼었더나?”

 “아직 조금 덜 얼었던데예. 꽝꽝 얼라면 며칠 더 있어야 할 건데예.” 

 “내일도 영하 18도라는데, 내일 지나서 한 번 더 보자.”

 “썰매 두 개 만들어 놨는데, 시간 날 때 니도 썰매 만들어 놔라.”

 “예, 옛날에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게 진짜 좋았는데예.”

 남편은 이 바쁜 딸기철에도 혹독한 겨울 날씨로 강물이 얼면 아이들에게 강물에서 썰매를 태워주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가 드디어 기회의 그 날이 오면 일을 미루고, 자상한 두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들고 강으로 나선다. 엄마인 나와 명자는 또 바빠진다. 방한 모자, 목도리, 귀마개, 장갑, 방한화를 준비해서 아이들을 썰매 탈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강가의 한 켠에는 커다란 솥에 멸치육수를 내어 어묵꼬지를 준비해 놓는다. 엄마들과 아빠들은 어린 아이들을 썰매에 태우고 얼음을 지친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연신 즐거운 비명과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썰매 태워주던 어른들이 점점 스스로 신이 나서 혼자 얼음을 타고 어린 시절도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릴 때 도시에서 자란 나는 이런 경험이 없어서 잘 타지 못하고, 사진 찍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렇게 다리 밑 강가에서 얼음을 지치면서 놀고 있으면 한 명 두 명 아이들과 어른들이 늘어난다. 우리끼리만 놀기에는 얼음 강이 너무 아까워서 전화로 아이들 친구와 부모님을 불러낸다. “올 때, 썰매 꼭 가져 와” 라고 잊지 않고 말한다.

 신나게 얼음을 지치며 놀다가 배가 고프면 엄마들이 준비해 놓은 어묵꼬지탕을 먹으러 아이들이 모인다. 어묵 꼬지탕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소주 한 잔과 함께 뜨끈한 국물로 추위를 달래기 때문에 처음에 준비한 어묵은 금새 동이 난다. 그럴 때는 또 다른 이웃에게 전화해서 아이와 함께 얼음 지치러 오라고 한다. 이번에는 “오는 김에 어묵 사와” 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절반 넘게 모이고, 산그림자로 강이 어둑해질 때까지 얼음을 지치거나 어묵꼬지탕 중심으로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지금도 그 추운 겨울날의 따뜻한 풍경이 그림처럼 남아있다.

 아이들의 가슴 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새길 수 있게 해준 아빠들의 노력에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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