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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훈련으로 6번 대수술, 봉사활동으로 삶의 의욕 되찾았죠”

신체․경제적 역경 딛고 ‘자립․자활’모범
‘보훈 가족 복지증진’ 힘써 국가보훈처장 표창

  • 입력 2023.06.08 09:00
  • 수정 2023.06.22 18:27
  • 기자명 이종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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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최수곤씨
청도군 최수곤씨

호국보훈의 달 6월. 막상 본인이 처한 신체적 장애 및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보훈 가족의 복지증진에 힘쓰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에서 소규모 농사일을 하고 있는 최수곤(75)씨는 본인이 국가보훈대상자(상이 5급)로 불편한 몸과 어려운 경제 여건임에도 청도지역 보훈회원들을 직접 방문해 생활 사항을 살피는 등 단체 및 지역사회에 꾸준히 봉사하고 있다.

최 씨는 군 생활에서 얻은 깊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무기력함․피로감으로 일반생활이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끝없는 자기 노력과 단련을 통해 자활자립으로 이겨낸 모범 상이군경으로 대변된다.

 

훈련 중 부상으로 6회에 걸친 수술

그는 1970년 8월에 공수특전 하사관 1기로 자원입대해 훈련 도중 허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계속되는 치료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입대 약 2년 2개월 만에(1972년 11월 30일) 불구의 몸으로 하사로 의병 전역을 맞이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최 씨는 “제대 후 후유증 치료를 위해 경대병원, 보훈병원, 우리병원, 서울대병원 등에서 치료를 이어 가며 6회에 걸친 수술을 거치면서 겪은 고통과 실의에 빠져 막다른 생각까지 했었다”며 “장마철이면 상처 부위의 통증이 더욱 깊어 잠을 못 이루는 것은 물론이고 앉아서 잠을 청해야 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때 그의 나이 40대 중반이다.

이러한 실의에 빠져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갈 때 그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가나안 농민학교 김용기 교장(장로)이다.

최 씨는 “제대 후 살길이 막막해진 그에게 김 교장이 미래 농촌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말한다. 그 꿈을 실행하기 위한 선제적 조건으로 먼저 ‘결혼’을 제시하였고, 가나안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여인을 소개받아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긍정적인 생각과 타인에 대한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삶의 의욕과 목표를 되찾았다.

그는 통증 완화를 위해 몸속에 심어둔 스마트 칩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이제는 이 칩이 사용 기간이 지나서 작동은 되지 않지만 무리하게 각출할 필요성도 없어 그냥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새로운 제2의 인생의 시작을 가진 그는 1992년 몸 상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물, 공기, 인심 좋기로 소문난 삼청(三淸)의 도시 청도로 이사를 결정했다. 최씨는 “건강을 위해 청도로 이사를 했지만 막상 아무런 연고도 없는 형편에 경제적 여건마저 어려웠다. 주변에서 도와주시던 분들이 많아 어려움을 극복했다”면서 “두 딸과 연로하신 노모, 7명의 동생들을 떠올리며 늘 다음을 새롭게 먹었다”고 고백했다.

노모를 극진히 부양하는 한편, 집안의 가장으로서 동생 8남매도 경찰 간부와 교육자 등으로, 또 “가난으로 인해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자식에게 대물림할 수 없다”는 각오로 두 딸은 교사와 회계사로 키워냈다.

그는 “70대 중반인 지금도 통증은 여전히 나타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와 지역의 선․후배 보훈대상자들에 대한 봉사 활동이 삶에 에너지로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에게 ‘나라 사랑’ 보훈 가르쳐야

최수곤 씨는 2010년 6월에 상이군경회 청도지회 지도위원으로 임명받고 현재까지 11년 9개월동안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청도군 장학회 후원(3회), 상이군경회 청도 군지회 각종 행사 참여 및 적극적인 지원, 금천면 지역사회 발전과 유대강화를 위해 마을 봉사를 시작으로 경로잔치 참여와 물품 후원과 찬조를 통해 거동불편 회원을 직접 방문하여 회원을 돌보는 등 자신의 선행을 들어내지 않는 겸손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고 그의 지인들이 덧붙인다.

특히 그는 국가보훈대상자로써 청도보훈복지회관 부지조성․건립 등 청도군보훈가족 복지증진에 앞장섰다.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청도군은 2009년 보훈복지회관 설립추진위원 설립, 준비단계를 시작으로 부지조성을 하고 2013년 4월에 완공했다.

이에 최 씨는 2006년 청도군수 새마을지도자 표창을 받았고, 청도군 금천면 분회 총무로서 고령의 국가유공자 어르신에게 대구보훈병원, 보훈청 민원 등에 자차로 동행하고 회원 별세에 따른 장례 일체를 마지막까지 도우며 국가유공자의 예우 실현에 열과 성을 다해 2007년에 청도군모범군민상(2007년)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국가보훈대상자로서 보훈단체 및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한 혁혁한 공로로 국가보훈처장표창장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경남 하동에서 출생한 그는 “제2의 고향이자 마음속의 영원한 고향인 청도에서 앞으로도 힘 닿는 데까지 청도 군내 국가유공자의 위상과 복지증진에 힘쓰겠다”며 아울러“현충일 등 국경일에 각 가정마다 태극기 달기 홍보 및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음지에 있는 보훈 유공자 및 국가를 위해 희생한 애국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더불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라 사랑’ 보훈에 대한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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