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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교수가 예언한 대한민국의 미래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학문의 역전이 이루어졌다.”

  • 입력 2023.05.22 09:00
  • 기자명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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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84) 서울대 명예교수가 도발적인 제목을 단 책을 출간했다. ‘한일 학문의 역전(지식산업사)’이 그 문제의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은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선진 학문을 재빨리 배우고 실천하는 ‘수입학’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성취를 바탕으로 각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1980년대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선진화를 이루는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수입학’에 머무는 학계의 풍토가 오늘날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자기 일에만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인맥도 마찬가지다. 다른 직업을 가진 부류나 타단체와 토론하고 교섭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반면, 한국은 조선시대에도 ‘논쟁’이 빈번했을 정도로 학문적 논란에 비교적 열려 있었다.

분석은 시원하게 해놓았지만 불쑥 이런 질문이 뇌를 스친다. ‘노벨상은 일본이 더 많이 가져갔는데?’ 조 명예교수의 통찰이 옳다면 이는 시간 문제다. ‘역전’을 단언해도 될정도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는 만큼 조만간 열매도 맺힐 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패턴은 과거에도 찾아볼 수 있다. 단적으로 ‘유학’이 그렇다. 지금은 아시아의 학문으로 퉁치지만 과거에는 엄연히 수입된 학문이었다. 같은 학문이 한국과 일본에 흘러들었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달랐다.

일단 한국은 선비의 나라답게 공부에 진심이었다. 명칭부터 각별했다. 우리는 ‘성리학’이라고 부르는 이 학문은 중국에선 대개 ‘이학’이라고 불렀다. 굳이 성리학이라는 명칭을 많이 썼을 때는 중국보다 한층 더 깊어지고 발전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분이 퇴계 이황이다. 퇴계는 성리학 연구에 ‘한글’을 적극 활용했다. 자세하고 친절하게 한글 주석서를 써서 조선의 학자들이 이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본은 유학과 관련해 두 가지 포인트가 강조되었다. 늘 일본적인 부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유학의 깊은 부분을 이해하기도 전에 급하게 일본적 색깔을 가미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그래서 늘 ‘극복’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시작됐고, 그 뒤로 메이지 시대가 이어졌다. 이 시대에 가장 많은 나온 말이 ‘주자학이 극복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선언이 여러 번 나왔다. 완전 정복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오규 소라이(1666-1728)가 대표적이다. 후대 학자들은 “주자학을 극복하고 소라이학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를 더 깊이 연구한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주자학을 극복해서 소라이학이 되었다.”

그런데 ‘주자학이 극복되었다’는 선언은 한 번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극복된 것이 또 극복되었다는 것인데, 이를 달리 해석하면 진정으로 극복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주자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하고 성급하게 뛰어넘었다고 단정지었기 때문에 다음 학자들이 또 극복을 운운할 수있었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19세기 이후의 ‘수입학’의 양상과 비슷하다. 대강 훑어보고는 ‘다 마스터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은 사뭇 달랐다. 앞서 언급한 퇴계 선생의 경우 주자학의 약한 부분을 보강했다고 평가된다. 제대로 이해하고 핵심을 파고 들어간 후 심화시켰다는 뜻이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극복도 발전도, 혹은 부정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일본은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표피적인 경우가 많다. 사무라이의 후예답게 지적인 적극성과 진중함이 부족하다. 문화적인 부분을 봐도 복제하듯이 똑같이 이어가는 건 잘하는데, 거의 변화가 없다. 이 변화 속에는 발전도 포함된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다. 조 명예교수의 말이 옳다면 해방 이후 정신없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경제위기까지 ‘눈앞의’ 위기들에 급급해 살아온 것 같은데 사실은 내적인 부분에서도 옹골차게 성장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결과물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노 학자의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이 하루라도 더 빨리 증명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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