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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은 시어머니가, 베트남 며느린 3년 동안 공부만 “그 덕에 통번역사 시험 합격했죠”

청도군 베트남 이주민 ‘代母’ 오명은씨

  • 입력 2023.05.08 09:00
  • 수정 2023.05.16 14:24
  • 기자명 이종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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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촬영한 가족 사진이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오명은씨.
시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촬영한 가족 사진이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오명은씨.

 

“베트남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 등 7명이 함께 살아가는 대가족의 일원이었어요. 한국에 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대가족에 익숙해서 오히려 더 좋았어요.” 

오명은(42)씨는 경북 청도군에서 베트남 이주민의 ‘대모(代母)’로 통한다. 베트남 3대 도시이자 항구도시인 하이퐁(Hai phong) 출신인 그녀는 2004년 8월에 한국으로 시집와 청도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지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름 지어준 운문사 노스님에게 너무 감사

결혼 즈음 그녀는 간호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 시절 베트남 국내 경제여건의 침체로 졸업이후 취직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껴 더 나은 간호사의 꿈을 펼치기 위해 이주 결혼을 선택했다. 국제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자 두분은 기꺼이 딸을 지지해주었다.

그렇게 2004년 8월 결혼 이민자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맨 처음 한 일은 새로운 이름을 갖는 것이었다. 한국 이름 ‘오명은’은 베트남 이름(오 티브이ㆍNGÔ ThㆍVui)에서 ‘오’ 씨 성을 그대로 가져오고, 거기에다 현재 살고 있는 매전면 관하리에 위치한 보현사 절에서 우연히 만난 운문사 노승에게서 ‘명은’(明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베트남 국민 대부분이 불교 신자고, 저 또한 절실한 불자입니다. 스님에게 이름을 받는 순간 한국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어요.”

 

“한국사람 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사람”...베트남어 통번역사로 현장 지원 

 시부모 남편 든든한 지원 ‘한국어 통번역사’ ‘사회복지사’ 취득

“가족은 사랑과 관심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사람들”

 가정의 날 ‘신나는 부모상(賞)’ 및 ‘23년 경상북도 심폐소생술경연 대상’ 수상

빈 창고 한켠을 개조해 공부방으로 만들어 공부에 전념했다.
빈 창고 한켠을 개조해 공부방으로 만들어 공부에 전념했다.

 

한국 온 지 7년만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사 시험 합격

한국 생활에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시부모님이었다. 오씨는 “먼 이국땅에 홀로 와서 남편 한 사람에 의지해 살아가는 며느리를 바라보는 시부모님들의 시선은 항상 따뜻했다”고 회상했다.

“시아버지가 3년 전에 82세로 돌아가셨는데, 살아생전에 늘 진심으로 저를 대해주셨어요. 친정아버지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어요. 제가 경험한 한국의 정서는 베트남 국민성과 비슷합니다.”

시아버지 덕분에 감동 이벤트도 펼칠 수 있었다. 시아버님이 강력하게 권유해주신 덕분에 친정 부모님이 한국 나들이를 여러 번 다녀갔다. 오 씨는 “홀로 타향살이를 하는 저의 마음을 보듬어주시고 친정 부모님에게도 좋은 선물을 해주셨던 시아버지께 늘 고마운 마음”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시어머니도 더없이 살가웠다. 당신은 “말을 잘해야 한국에 빨리 적응할 수 있다”면서 한국에 온 뒤로 2~3년 동안 오로지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 과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동안 시어머니가 집안일을 도맡았다. 오씨는 어머니의 배려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에 빈 창고 한켠을 개조해 공부방으로 만든 후 아이들이 잠든 후에 그곳에서 찬 밤공기를 견디면서 공부에 전념했다.

“시댁 형편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공부를 위해서 노트북과 전기난로를 사주시려고 했어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는데,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가족들의 지지와 후원 덕분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시집온 지 7년째 되던 2012년 1월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치러진 통^번역사 시험을 단 한 번 만에 당당히 합격했다. 다음 달에 청도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통^번역지원사로 입사해서 현장 업무를 11년간 이어오고 있다.

“모두 가족들 덕분입니다. 공부에 몰두하는 동안 가족들이 각자 스스로 건강을 잘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큽니다.”

6년 동안 주말 부부, 늦게 얻은 아들과 딸

의지력 강한 오 씨에게도 견디기 힘든 일들이 있었다. 결혼 이전부터 청도에서 소규모 포장 비닐을 주로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던 남편이 결혼 초기에 납품 거래처와의 부실 거래로 공장을 접는 사태를 맞았다. 경기도에 직장을 얻은 남편은 최근 6년 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결혼 이후 아이가 빨리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이 컸다. 불교 신자인 오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옆에 있는 ‘보현사’를 지성으로 빌었다. 그런 정성 덕분이었는지 아빠를 꼭 빼닮은 아들 정근이를 다소 늦게나마 가질 수 있었다. 2년 후에 엄마를 빼닮은 영은이도 얻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를 입학했고, 딸은 중학교 2학년으로 “두 명 모두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어서 행복하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베트남인이라는 이유로 혹시 학교생활에서 친구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을까 지금까지 노심초사했는데, 시골 학교라 학부모님들끼리 친밀하면서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학기 초에 열리는 학부모 공개수업에 이어 선생님 면담에서도 밝고 명랑하다는 말씀을 듣고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다소 내려놓았어요.”

간호사 대신 사회복지사 일에 뛰어든 이유

오씨는 현재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후배 이주민 여성들을 보면서 맨 처음 품었던 간호사의 꿈 대신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씨는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 여성들이 적지 않다”면서 “선배된 입장에서 후배들의 정착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의 목표를 바꾸었다”고 고백했다.

청도군에는 270여 개의 다문화 가정이 있다. 이중 베트남 출신은 150여 명에 이른다.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정착 초기에 겪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결코 적지 않다. 오랫동안 간직해오던 생활방식을 모두 바꿔야 하는 불편함을 스스로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살기 위해 한국에 온 이주자들이 언어가 통하지 않아 불편을 겪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비록 많지 않은 임금이지만 이들을 위해 앞으로 계속 이 일을 이어 가고 싶어요.”

그는 국제결혼 이주자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서 현실적으로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오 씨는 “국제결혼 이주자의 국적 취득은 결혼 이후 3년을 거주해야 가능한데, 아이 출생 등에 따른 불편한 일들이 야기될 소지가 있고, 배우자의 재산,경제 능력을 기준으로 출입국 제한을 두고 있는 부분도 개선이 이뤄져야 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금 우리나라가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잖아요. 계절근로자 유입이나 인구 유입 정책 등도 좋지만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부자는 아니지만 하루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대외 활동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분야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안동에서 열린 경북 소방본부 주관 제12회 일반인 심폐소생술 경연대회에서 한국 시어머니와 베트남 며느리 역할극로 짜여진 ‘다문화 고부열전’으로 참가했다. 심폐소생술로 하나가 된 시어머니와 베트남 며느리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펼쳐 ‘한국사람 보다 더 한국사람같이 사투리를 쓴다’는 평가와 함께 관람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참가 부문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2016년 3월에는 한국복지사이버대학 환경복지학과를 졸업했고,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가건모)’에서 주최한 좋은 부모 되기 대회에서 ‘신나는 부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아버님이 불어넣어주신 에너지가 지금도 제 마음에 있어요. 시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늘 ‘부자는 아니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 ‘오늘도 즐겁게 일 잘하고 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하루 하루 즐겁게 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뭐든 열심히 해서 행복과 즐거움을 쟁취하고 싶어요.”

오 씨는 “시어머니께서 앞으로도 오래토록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셔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 훌륭한 사회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올해 4월 경상북도에서 열린 일반인 심폐소생술 경연대회에 시어머니와 참가해 대상을 차지했다.
올해 4월 경상북도에서 열린 일반인 심폐소생술 경연대회에 시어머니와 참가해 대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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