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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 하늘아” 영상 통화로 14년 벗에게 마지막 인사 전하신 장인어른

  • 입력 2023.05.11 09:35
  • 수정 2023.05.16 10:51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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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식(성광고등학교 교사)

 사 년 전 일이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집 정리를 했다. 평소 즐겨 입으시던 칼주름 바지와 하얀 와이셔츠는 의류 수거함으로, 1층 베란다에서 커 오던 고무나무와 행운목은 미화원 아주머니에게로, 외로울 때 은은하게 틀어놓고 부르시던 가정용 노래방 기계와 마이크는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로, 그리고 14년간 그의 노년을 담당했던 하늘이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장모님 돌아가시고 난 뒤 혼자 계시는 곳이 적막할까 싶어 아내가 입양한 반려견이었다.

 사 년 전 오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평상시와 다르게 몸 상태가 무척 좋지 않다는 장인어른의 전화였다. 당장에 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일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장인어른을 모시러 갔다. 차가 문 앞에 서기도 전에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며 컹컹 짖는 하늘이의 소리가 들렸다. 저를 처음 만난 사람도 나이고 차에 태우고 금호까지 데리고 온 사람도 나이니 녀석은 나를 기억하는가 보았다. 게다가 14년 동안의 명절과 장인어른의 생신, 그리고 장모님의 기일이면 어김없이 만났던지라 반가운 마음이 더했다.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오월의 꽃향기가 좋았는지 빨강 신호등에 걸리기만 하면 하늘이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장인어른도 불룩한 배 위에 하늘이를 앉혀 놓고 푸른 하늘을 만끽하셨다. 마치 좋은 구경을 나온 듯했다.

 병원으로 떠나시던 날 아침 하늘이를 애처롭게 쳐다보시던 장인어른은 정성껏 그의 머리와 등과 허리와 목덜미를 어루만지시며 눈을 맞추셨다. 하늘이는 수술로 인해 짧아진 꼬리를 바람개비처럼 흔들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신 장인어른의 병세는 한 달 사이에 위중해졌다. 장인어른의 마지막 소원은 하늘이와의 만남이었다. 서둘러 녀석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반려견이 병실로 들어가는 일은 금지였고 장인어른의 거동도 어려운 상태여서 만남은 영상통화로 이루어졌다. 이산가족의 상봉이었다. “하늘아, 하늘아.”하고 부르시는 장인어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녀석은 익숙한 목소리에 먹먹한 두 눈으로 응답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 식구가 된 하늘이는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고는 제일 먼저 창밖을 내다본다. 베란다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삭막한 건물들뿐이다. 게다가 속도를 내어 달리는 자동차의 질주 소리, 그리고 미세먼지가 섞인 큼큼한 공기들이 답답하다. 그래도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베란다 밖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는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닌다. 아들아이의 침대 곁으로 가서 쿰쿰한 이불 냄새를 맡고는 딸 아이 방으로 가서 한참을 머물며 이것저것 향내를 맡는다. 마지막으로 큰 방으로 와서 아내 곁에서 물끄러미 아내를 쳐다보고는 겸연쩍은 듯 하품을 한다.

 하늘이가 우리 가족이 된 지 그렇게 사 년이 지났다. 지금 녀석의 이마에는 커다란 혹이 달려있고 앞다리 정강이에는 혈관이 다 들여다보이는 혈종이 자리 잡았다. 다리 힘이 빠져서 수컷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오른쪽 뒷다리는 들지도 못하고 소변을 본다. 반질반질했던 코는 이리저리 헤져 가끔 벌렁벌렁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냄새를 잘 맡지는 못한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시던 장인어른에게 전화가 왔다며 왈왈 짖었었는데, 지금은 제 귀가 어두워져서 불러도 모른다. 사실 앞도 잘 보지 못한다. 하루 두 번 아내는 병원에서 받아 온 안약을 넣어 준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검붉은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간식도 마다했다. 원래 제 주인과 같은 병을 뱃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의사는 종양이라고 했다.

 며칠 전 배가 불룩한 녀석을 사진관에 데리고 가서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기력이 없어서 겨우 고개만 들고 있는 녀석을 딸아이가 안고 있다. 온 가족이 하얀 와이셔츠와 블라우스를 입었다. 하얀 털을 가진 하늘이와 꼭 맞춤이다.

 수능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들과 취업해서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딸아이도 수시로 거실로 나와 녀석의 안위를 걱정한다. 멀리 사는 처제 가족도 더 자주 들린다. 장인 어른이 남기신 유산은 하늘이였지만 하늘이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의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

 오래지 않아 녀석이 장인어른을 만날 것이다. 마이크를 잡고서 사나이 순정을 나지막이 부르시는 장인어른 옆에서 전화가 왔다고 왈왈 짖어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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