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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밥상 최불암 선생님께 대접했더니 연신 ‘맛있다 맛있다’”

가족
팔 남매가 사는 법

  • 입력 2023.05.02 09:00
  • 수정 2023.05.16 10:57
  • 기자명 조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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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친밀하고 뭉클한 느낌은 변함이 없습니다. 가족의 수도 줄었고, 1인 가족도 많아졌지만 혈연의 끈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끈끈합니다. 가장 힘들게 찾게 되는 것이 가족이고, 가장 편안한 관계를 이야기할 때 ‘가족 같다’고 합니다.

 가족은 옹기종기 모인 것 자체가 감동입니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더 자주 모이고 더 깊은 정을 나누는 기족들이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마저 훈훈하게 만드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았습니다. 운동회도 열고 방송에도 함께 출연한 ‘8남매’ 이야기부터 할아버지 장학금으로 가족들을 더 자주 모이게 하는 할아버지, 장인어른이 남긴 반려견으로 가족의 끈끈을 정을 확인하는 사위와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기사 한편 한편을 통해 가족의 달 5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조남선(수필가)

조약국 집 팔 남매의 가족타운은 낙동강 강변에 있다. 팔 남매 중 1,2,3,4번 언니가 태어난 경북 선산 옥성과 5,6,7,8번이 태어난 경북 상주 화동에서 멀지 않은 경북 사벌국면 퇴강마을에 터를 잡고, 황톳집 네 채를 나란히 짓고 현재는 1,2,3,6번이 살고 있다. 함께 텃밭을 가꾸고 닭을 키우며 하루하루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며 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진 유산, 팔 남매

예순의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시골에서 조약국이라 불리던 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진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셨다. 그것은 생전에 몸소 가르쳐 주신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과, 사랑이 넘치는 여덟 명의 남매들이다. 

우리 남매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연한 기회로 세상에 알려져, 두어 차례 방송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유튜브 여러 채널에서 100만회, 56만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관심을 받고 있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방송 영상을 따뜻한 눈으로 봐주시고, 칭찬의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이 계셔서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다.

팔 남매의 방송 출연

근 십 년 전에 가족운동회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기사를 본 KBS 작가님께서 다큐멘터리 ‘사람과 사람들’ 촬영을 제의하셨고, 몇 해를 고사하다가 결국 방송을 타게 되었다. 가족타운의 취지와 공사 과정, 단체 이사와 그곳에서 펼쳐진 가족운동회와 둘째언니의 회갑잔치, 조카의 야외결혼식까지 긴 시간 촬영한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귀한 자료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이 나간 후에 가족타운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생겨나 한동안 언니들은 손님맞이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후로도 몇몇 방송국에서 여러 가지 콘셉트로 방송 제의를 해왔지만 모두 거절하다가 지난해 ‘한국인의 밥상’에서 추석 특집으로 ‘돌아가신 어머님께 차려드리고 싶은 밥상’을 주제로 촬영 제의를 해왔을 때는 팔 남매의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모두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음식, 차려드리고 싶은 음식 등 마음에 품고 있는 사연이 하나씩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하며 다시 만난 엄마

몇 번의 회의를 거쳐 돌아가신 엄마를 위한 한상차림 메뉴가 정해지고 시래기 된장국, 고추부각, 돼지기름으로 부쳐낸 배추전, 돼지머릿고기, 수박국수가 차려졌다. 

가난한 시골 살림에 대가족의 삼시세끼를 차려내야 하는 엄마는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5일장 파장 무렵 채소전 천막 뒤에 버려진 배춧잎, 무청을 주워 와 시래기나 물을 마련하셨다. 처마 밑에서 말린 시래기나물은 구수한 된장에 버무려져 겨우내 팔남매의 밥상에 올랐다.

손이 맵도록 딴 고추를 가루에 묻혀 찌고 말려 한 해를 책임질 밑반찬거리를 만드셨다. 엄마만의 빨간 소스로 볶아낸 고추부각은 지금까지도 팔 남매의 최애 음식이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도 우리는 옛날에 엄마가 하셨던 것처럼 마당에 솥뚜껑을 엎어 놓고 돼지기름을 무 도막으로 발라가며 배추전을 구워냈다. 그 곁에 새끼제비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는 동생들의 입으로 뜨거운 배추전을 손으로 쭉쭉 찢어 넣어주는 언니의 손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국수 한 그릇 맛있게 드시는 모습 볼 수 있다면

내가 맡은 음식은 수박국수였다. 백혈병으로 투병하실 때 감염 문제로 날것을 전혀 드실 수 없었던 엄마는 그 좋아하시던 푸성귀 하나, 과일 한쪽도 맛볼 수가 없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계신 당뇨병 할머니들이 오이를 아삭아삭 깎아 드시던 여름 오후, “ 시원한 수박 한쪽 먹었으면…” 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수박을 깍둑깍둑 썰어 냄비에 넣고 끓여 보았다. 그렇게라도 울엄마 입에 수박 한쪽 넣어 드리고 싶었다, 진심으로, 절실하게.

그때 일이 생각나 수박으로 그릇을 만들고 색색의 고명을 올린 수박국수를 만들었다. 진짜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시원하게 국수 한 그릇 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데 늘 양보하고 희생하던 엄마 입에 우리가 마련한 음식이 들어간다면…. 그 기쁨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이신 최불암 선생님과 둘러앉아 엄마를 위해 만든 음식을 함께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순옥씨, 순자씨”하며 언니들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주시며 소탈한 웃음으로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하시는 말씀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졌다.

사랑하자, 행복하자, 밥 먹자

엄마의 수고로움이 우리의 배를 채웠고 그 사랑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 가정을 이루고 모두 엄마 아빠가 되었고, 몇몇은 할머니가 되었다. 팔 남매에서 뻗어간 가지는 2세대를 거쳐 3세대까지 모두 51명이 되었다. 혼사를 앞두고 있는 2세대들이 있으니 내년이면 그 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매년 엄마의 기일이 있는 10월엔 가족타운에서 가족운동회가 열린다. 마당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가게도 차려진다. 행운의 뽑기, 눈깔사탕, 쫀디기 같은 추억을 파는 가게엔 3세대들이 몰려들고, 떡볶이, 어묵, 번데기, 순대를 파는 난전에도 조약국집에서만 통용되는 엽전을 든 2세대들이 몰려 앉는다.

작년에 새로 가족이 된 다섯째언니네 신서방과, 남동생네 손서방을 팀장으로 팀을 나누어 시작된 운동회에서는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신발 던지기, 공굴리기, 이인삼각, 미션 달리기, 왕제기차기 등 형부와 처제가 한 팀이 되고 장모와 사위가 맞수가 되어 온 힘을 다해 뛰고 달린다. 3세대를 위한 보물찾기와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 터뜨리기까지 그 어느 운동회보다 알차게 이어진다. 언니네 집 소쿠리로 만든 박을, 지난밤 둘러앉아 만든 콩주머니를 던져 터뜨리자 ‘사랑하자, 행복하자, 밥 먹자’가 적힌 두루마리가 펼쳐졌다.

무엇이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깊은 밤까지 퇴강마을 가족타운은 2, 3세대 장기자랑으로 흥이 넘쳐 오른다. 엄마와 함께 준비한 엉터리 차력 솜씨를 뽐내는 건규와 지후, 여장(女裝)을 하고 섹시 댄스를 선보인 다섯째언니네 둘째사위 이서방, 큰언니네 딸 주희와 예나의 모녀 마술쇼, 2세대 신혼부부들의 알콩달콩 커플댄스까지. 무엇이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 밤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우리보다 그 누구 더 행복하고 유쾌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하나의 끈으로

우리도 가끔 서로를 향해 묻는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왜 이렇게 즐거운 걸까?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끈끈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걸까?”하고. ‘가족’ - 어쩌면 같은 살과 피를 나눠 각각의 몸으로 태어나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퇴강마을에 사는 언니들의 마음은 대구 사는 동생들의 안부가 늘 궁금하고, 대구 사는 동생들은 멀리 남해바닷가에 사는 셋째언니의 미소와 정(情)이 늘 그리운 걸 보면 우린 엄마 뱃속에서 줄줄이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나왔음이 분명하다. 여덟이면서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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