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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통 10통 있던 자리에 1통뿐 원인 복합…뾰족한 수 없어 한숨만

현장 속으로
‘참외 개화철에 꿀벌 품귀’ 성주 참외단지

  • 입력 2023.04.19 09:00
  • 수정 2023.05.12 10:14
  • 기자명 김윤곤 기자, 김영구 예비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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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외 농번기를 시작한 성주 참외 농가들이 시름에 잠겼다. 참외 농가의 큰일꾼, 화분 매개 꿀벌 개체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 참외 재배 하우스 안이 올해는 적막하다. 예년에는 잉잉대는 꿀벌들로 부산했다. 꿀벌들이 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꿀벌이 격감하자 꿀벌들이 해주던 참외 수분(가루받이)을 사람이 대신해야 한다. 그러잖아도 일손 구하기가 어려운 판에 농가들 걱정이 늘었다. 국내외에서 오래 전부터 꿀벌 개체수가 격감한다는 소식이 이어졌지만 양봉 농가만이 아니라 시설 재배 농가에 까지 직접적인 피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참외와 마찬가지로 화분 매개 벌을 이용해야 하는 딸기, 토마토, 수박 농가들도 같은 피해를 보고 있다.

 2021년 전체 꿀벌의 16% 사라져

 3월 22일 성주군 초전면 자양리 김OO 씨의 참외 재배동(하우스). 10개 동 한가운데에 벌통이 한 개만 놓여 있다. 한 동마다 한 통씩 놓이던 벌통이 올해는 10분의 1로 줄어든 것. 주변에도 사정은 마찬가지. 10개 동 이하의 소농들은 대부분 벌 한 통으로 버티고 있다고 김 씨가 귀띔해 준다. 수십 동 규모 중농들은 여러 통을 들여 옮겨가면서 작업한다. 다들 뾰족한 대응책이 없어 한숨만 쉬고 있다.

 지난해 4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겨울 전국에서 39만 봉군(벌떼) 78억 마리가 폐사했다. 이는 국내 사육 꿀벌의 약 16%에 이르는 규모다. 한국양봉협회가 2021년 소속 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도 전국 227만 6593개 벌통 중 39만 517개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월동 시기 벌통 안에 사는 꿀벌 개체수는 보통 1만5000~2만 마리.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지난 겨울 전국에서 60억~77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 양봉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농가의 피해를 고려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올해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전남도가 올해 22개 시군에서 월동 꿀벌 피해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 말까지 꿀벌 26만 7983봉군(통) 중 59.8%(16만379통)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충남은 25만1404통 중 절반이 넘는 13만7908통에서, 경기도에서도 55.7%의 피해가 나타났다. 벌통 한 통에 사는 꿀벌 수를 2만~3만 마리로 잡으면 위 3개 도에서 약 131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중앙일보 2023년 3년 15일자) 발표 기관이나 언론사에 따라 벌통 1통 속 꿀벌 개체수 기준이 다르고 폐사 피해와 실종 피해를 구분하지 않아 아쉬웠다.

 꿀벌 실종은 전 세계·장기적 문제

 꿀벌의 집단 실종은 전 세계적이고 장기적인 현상이다. ‘꿀벌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고도 하는데 2006년 11월 미국에서 처음 보고되면서 알려졌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지역에 따라 최대 25~50%의 꿀벌이 감소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그때 이 후 매년 평균 28.7%의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남아프리카, 중국 등의 지역에서도 꿀벌 집단 실종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벌꿀값이 치솟고 꿀벌 몸값도 크게 올랐다. 참외 개화철을 맞은 성주지역에서는 지난해 9월 12만~15만 원이던 벌 한 통이 올 2월 25만원, 3월 들어 30만 원으로 뛰었다. 1년 새 두 배 이상 올랐지만 이제는 돈을 줘도 구할 수가 없다. 꿀벌이 줄어든 만큼 일손이 필요하다. 하루 6시간 작업에 품삯 8만 원. 두어 명이면 하루 20만 원 안팎의 고정 비용이 나간다. 6~7월까지 작업하면 인건비만 2,0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참외 농가의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수확해서 대부분 서울 가락동 공판장으로 보냈어요. 지금은 성주에 다섯 군데나 생긴 공판장을 이용하는 농가가 많아요. 서울까지 보내는 상자당 배송비 2,000원을 아낄 수 있거든요. 몇 백 상자 출하하면 배송비도 커요.” 새벽부터 나와 수분 작업을 하느라 김 씨의 목소리가 지쳐 있다. 5, 6월이면 참외 출하 물량이 쏟아져 가격이 폭락한다. 그래서 3, 4월에 일년 농사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 그래야 5, 6월 벌어서 생활비 등을 댈 수 있다. 참외 농가들은 2월부터 11월까지 일한다. 1년 10개월이 농번기다. 6월 말이면 40도를 오르내리기 시작하는 하우스 안에서 종일 일한다. 이 기간 중 3~7월 6개월 남짓한 기간에 벌어서 일 년을 산다. 

수분 가능한 암꽃. 이 꽃에 벌들이 해주던 수분을 사람이 대신하고 있다.
수분 가능한 암꽃. 이 꽃에 벌들이 해주던 수분을 사람이 대신하고 있다.
인공 수분을 마친 참외 암꽃. 수분액을 소형 분무기에 담아 뿌려 준다. 수분액에는 와인색이 들어 있어 수분한 암꽃의 씨방에 와인색 물이 든다. 수분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다.
인공 수분을 마친 참외 암꽃. 수분액을 소형 분무기에 담아 뿌려 준다. 수분액에는 와인색이 들어 있어 수분한 암꽃의 씨방에 와인색 물이 든다. 수분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다.
씨방이 없는 꽃은 수꽃. 예전에는 이 꽃의 가루를 암꽃에 옮겨 묻혀 줬으니 요즘에 수분액으로 대신해 작업 효율을 높였다.
씨방이 없는 꽃은 수꽃. 예전에는 이 꽃의 가루를 암꽃에 옮겨 묻혀 줬으니 요즘에 수분액으로 대신해 작업 효율을 높였다.

 영농비 급등해도 가격 반영은 미지수

 문제는 꿀벌 폐사·실종으로 영농 비용이 급등했지만 공판장 경매로 가격이 결정되는 유통 구조에서는 이 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가나 제반 비용 등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공산품과 달리 농수산물은 경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된다. 농민들에게는 가격 결정권이 없다. 수십 년째 유통구조 개선을 말하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굳어지고 길들여진다.

 전세계적인 꿀벌 폐사·실종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은 한두 가지로 특정할 수 없을 뿐 복합적인 여러 가지 원인들이 대부분 드러났다. 지금까지 드러난 꿀벌 폐사·실종의 원인을 10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⓵ 기후 변화(온난화): 꿀벌들은 겨울에 봉군 내에 뭉쳐서 날개로 열을 내 겨울을 난다. 이런 역할을 하는 벌이 추분께부터 약 한 달 동안 태어나는 ‘겨울벌’이다. 그런데 10월 낮 기온이 12℃ 이하로 떨어지면 겨울벌이 태어나는 데 차질이 빚어진다. 기온이 12℃ 이하면 꿀벌이 먹이활동을 하지 못 하는 데다가 여왕벌을 중심으로 뭉쳐 보온활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온을 위해 다른 벌에 에워싸진 여왕벌은 산란에 차질을 빚는다. 여왕벌이 산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겨울벌 개체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11월부터 12월 초까지 낮 평균기온이 12℃ 이상인 날이 사흘 이상 이어지면 봉군에서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한다. 원래 겨울벌은 여름벌과 달리 육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명이 150일 정도로 길다. 이상 고온 현상으로 여왕벌이 이 시기에 산란을 하면 겨울벌이 육아를 시작하게 된다. 육아를 시작한 겨울벌은 체내 호르몬 구성과 생리가 달라져 수명이 40여일로 줄어들면서 대량 폐사한다. 더구나 다음해 1월과 2월의 이상 고온과 한파는 고온 때 계절을 착각한 꿀벌이 봉군을 떠났다가 막상 추위에 지쳐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⓶ 진드기(꿀벌응애): 농촌진흥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피해 농가에서 꿀벌응애(Varroa destructor)가 관찰됐다. 꿀벌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면서 체액을 빨아먹는 진드기로, 꿀벌응애로부터 피해를 입은 꿀벌 집단은 체중과 수명이 줄어들어 결국 붕괴한다. 특히 꿀벌응애는 기온이나 강수량에 따라 발생 시기가 달라 방재 적기를 놓치기 쉽다. 방재 시기를 놓치면 꿀벌응애는 급격히 증식해 꿀벌을 대량 폐사시킨다.(‘꿀벌의 월동 폐사와 실종에 대한 기온 변동성의 영향’, 이승재(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국가농림기상센터 연구개발부장) 외 8인, 한국양봉학회지, 2022년 가을.)

⓷ 꿀벌응애 등 피해를 예방할 목적으로 살충제 등 농약 과다 사용

⓸ 꿀벌을 잡아먹는 아열대성 등검은말벌은 방제가 어려워 꿀벌에 막대한 피해 가 

능성

⓹ 주변 대규모 재배 단일식물(단일밀원) 분포로 먹이 종류 단순화로 인한 영양 

소 부족

⓺ 장시간 이동 양봉, 특히 겨울철에 쉬게 하지 않고 남부지방으로 옮기는 양봉으 

로 인한 스트레스

⓻ 전자파 노출형 증가로 방향감각을 상실해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함 

⓼ 유전자 변형 곡물에서의 독소 검출

⓽ 근친 교배로 인한 열성유전자 발현으로 꿀벌의 면역력 약화

⓾ 양봉에 대한 최신 정보 부족과 꿀벌의 생리·생태에 맞지 않은 관리 기술

 

 하우스 연결형 꿀벌 수정 설비 개발도

 “꿀벌이 사라지면 4년 후엔 인류도 사라진다.”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이 말의 출처는 알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옮기는 사람에 따라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출처도, 정확한 인용문도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만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심각한 생존 위기를 맞을 것이다. 유명한 벌꿀 매장 간판에도 광고 아닌 이 경고가 걸렸다. 꿀벌이 사라지는 문제는 인류 전체의 문제다. 그 피해를 참외 농가들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절박하고 현실적인 대책이 급하다.

 김민수 성주군농업기술센터 농업연구사는 “성주군농업기술센터는 지난 3월 꿀벌 개체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참외 농가를 위해 ‘참외 하우스 연결형 꿀벌 수정 설비’를 개발해 시연회를열었다. 통당 가격이 급등한 꿀벌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종전 벌 한 통이 하우스 한 동을 수분하던 방식을 개선해 벌 한 통이 하우스 두 동을 수분할수 있도록 연결해 꿀벌의 수분 활동 영역과 효과를 높였다. 지역 참외 농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조은희 농업진흥청 기술보급과장은 “화분 매개 꿀벌의 폐사·실종으로 참외·수박 등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꿀벌 폐사·실종의 다양한 원인과 대책을 찾고 있다. 우선 개화철을 맞아 심각한 꿀벌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성주 현지에서 양봉 농가와 참외 작목반이 마주 앉는 수급 조절회의를 열었다. 화채류 재배와 농약 사용 등에 대한 컨설팅과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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