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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습관을 지닌 노인이 되고 싶다

이진숙 ‘클럽리의 문화마당’

  • 입력 2023.04.20 09:00
  • 수정 2023.05.08 16:50
  • 기자명 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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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하면서 책을 읽는 외국인들을 많이 보았다. 바닷가나 수영장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공원의 나무에 기대어서 책을 읽는 모습이 멋있었다. 노부부가 잔디밭에서 접이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영화 속에서 요양시설의 노인이 책을 읽고, 방문객이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책을 읽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인간이 무언가를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힘을 갖게 된다”고 ‘보다 읽다 말하다’에서 작가 김영하는 말했다. 어떤 씨앗들은 나도 모르게 심어지나보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것이 내 것이 되었다.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책을 읽는다. 읽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리며 몹시 행복하다고 느낀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축복임을 실감한다. 그때는 내가 여행하면서책을 읽는 삶을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경험이 최고의 선물 같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에도 그게 제일 같다. 어느새 결혼 40주년이라니!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주변 경치가 특히 마음에 드는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짙고 푸르다. 도시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온통 자연뿐이다. 그 어떤 소음도 나지 않고, 오직 새소리만 들린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렸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어느덧 생각은 집을 떠나있었고, 걱정이라고는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금세 행복해졌다.

 사방에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은 또 다른 세계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아예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한참 동안 점점이 박혀 있는 별을 응시했고, 별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별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있었던가. 오리온이 움직이는 것도 보았고, 별똥별이 지나가는 것도 보았다. 별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하루를 기분 좋게 마칠 수 있다니!

 시장과 슈퍼마켓에서 산 물건을 비닐봉지 대신 들고 간 에코백에 담는 것은 자연을 사랑해서다. 보이지 않던 개미들이 떼를 지어 숙소에 나타났는데, 이유는 비를 피해서란다. 이따금 출몰하는 손가락만 한 도마뱀(gecko)도 가만히 두고 보았는데, 생전 처음 듣는 소리를 내며 알아서 잘들 숨는다.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 나는 “꺄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는데, 이제는 내가 자연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된 걸까?

 떠나는 날의 걷기는 공항에서 해냈고, 더운 여행지에서는 걷는 대신 수영으로 대체했다. 물은 적당히 차갑고 적당히 따뜻했다. 너무 뜨듯해서 미적지근하다거나 너무 차가워서 큰마음 먹고 들어갈 필요가 없는 기분 좋은 온도의 물이 온몸을 감쌌다. 오래도록 바라왔던 ‘이른 아침의 수영’과 ‘해가 저문 후의 수영’을 마침내 해내어서 만족스러웠다.

  이번 여행의 ‘경험’은 마음에 쏙 들어서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또 보며 아주 조용하게 보냈다. 특별한 일 없이 매일 걷고(아니, 수영하고) 매일 책을 읽었다. 습관을 만들면서 작은 행복을 만나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걸 느낀다. 하루가 흡족하게 흘러간다. 내가 행복해지는 방식이 이렇게나 쉽다니!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작가 무무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다. ‘당신은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 “우선은 좋은 습관을 지닌 노인이 되고 싶다.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습관인 것은 성과보다 반복되는 리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복해 나가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제는 “너절하게 꿈꾸는 삶이 아닌 집중해서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다.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선택한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 나 자신을 개선하며, 나의 삶을 수정하고 싶다. 습관이 내 삶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나의 하루를 지지하는 탄탄한 근육이 될 거라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 역시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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