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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이상문은 언제나 ‘청년 리더’

축하의 글
권정달 전 자유총연맹 총재ㆍ전 국회의원

  • 입력 2023.03.17 17:21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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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의성축협조합장을 떠올리면 늘 ‘청년’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젊은 시절에 만난 것도 있겠지만 송림동우회라는 청년 조직을 만들어 청년들과 함께 지역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결했던 모습이 워낙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까닭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은 개성이 강하고 개인적인 일에 더 신경을 쏟기 마련이다. 그런 청년들을 한 사람처럼 한데 모아 지역을 위해 봉사하게 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리더십이었다.

1981년에 치러진 11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선거에 앞서 지도장(책임자)을 선발해야 했는데 금성면 지도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지도장을 맡겠다는 후보 2명이 극한 대립을 한 것이었다. 둘 중 누구도 양보할 기세가 아니었다. 

그런데 뜻밖에 이상문이라는 이름이 거론됐다. 두 사람이 똑같은 입장을 전했다.

“경쟁 상대한테는 지도장 자리를 양보 못 하겠다. 하지만 이상문에게 지도장을 맡기겠다면 물러나겠다.”

상대가 지도장 자리에 앉는 건 못 참아도 이상문이라면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상문이라는 ‘청년’이 가진 두터운 신망과 리더십 덕분에 금성면 지도장 선임 문제가 드디어 해결이 되었다. 

당시 선거에서 나는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아쉽게도 한 투표구에서 상대 후보에게 졌는데 하필 그곳이 이 조합장이 지도장으로 있던 금성면 투표구였다. 이 조합장이 죄송하다면서 머리를 조아렸지만 그럴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 상대 후보의 일가친척이 모여 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천륜에 진 셈이었다. 이 조합장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었다.

그의 저력을 제대로 확인한 계기가 있었다. 1986년 그를 금성면 명예 면장에 임명했다. 발표가 나자 이런 저런 말이 쏟아졌다.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아직 새파란 젊은이가 뭘 하겠나”하는 우려의 말들이 오갔다. 결론적으로 기우였다. ‘청년의 힘’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하나하나 깨부수었다. 송림동우회라는 든든한 우군과 함께 다양한 사업들에서 독보적인 실적을 드러냈다. 면에서 공공사업을 하려고 해도 주민들의 협조가 따라주지 않으면 힘들다. 그때마다 청년 이상문이 이끄는 청년 조직 ‘송림동우회’가 나섰다. 청년들이 앞장서서 공공사업에 뛰어드니 주민들이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불과 1년 사이에 “청년 면장이 더 낫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가 면장직을 수행하면서 이룬 가장 빛나는 업적은 금성면사무소 이전 사업이었다. 1930년대에 면사무소를 지을 당시 주민들 간의 갈등이 워낙 심해 얼토당토않은 자리에 면사무소를 앉혔는데, 이를 50여년 만에 옮기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대업을 이루어보겠다고 청년 이상문과 ‘송림동우회’가 두 팔을 걷어부친 것이었다.

면장을 필두로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일일이 설득해 면사무소를 합당한 자리로 옮기자는 여론이 형성됐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했는데, 청년들의 힘으로 그 때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청년들이 한번 해보겠다는데 선배들이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경북도를 통해 적극 지원했고, 결국 50여년 만에 면사무소 이전에 성공했다. 청년 면장과 청년 조직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1989년 면사무소 준공식과 함께 열린 면민 체육대회는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면민 절반이 운동장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면민 모두가 자기 집 경사처럼 기뻐했다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5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금성면이 생겨난 이래로 가장 즐겁고 기꺼운 주민 축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행정의 신화를 만든 청년 면장”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고 하는데 토시 하나 빼지 않고 저 말에 동의한다. 

그 시절을 회상하니 붓이 저절로 움직여 글이 써진 느낌이다. 새삼 이 조합장 덕분에 즐거운 추억 여행을 했다. 어찌 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명절 때마다 빼먹지 않고 안부를 물어오는데, 그대마다 목소리가 청년처럼 씩씩해서 나이든 줄도 몰랐다. 벌써 70을 넘기고 이렇게 자서전까지 냈다니 세월 참 빠르단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훌륭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온 이상문이다. ‘청년’ 이상문의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귀감이 되리라 믿어 마지않는다. 어서 빨리 책을 받아보고 찬찬히 읽으며 더 긴 추억 여행을 하고 싶다. 다시 한번 자서전 상재를 축하드린다.

“늘 우뚝한 금성산은 나에게 ‘큰바위얼굴’ 그 꼿꼿한 기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

“사람은 결국 이야기를 남긴다. 인간의 역사가 열린 이래로 먼저 살다간 이들이 숱한 이야기들을 남겼다. 입으로든 기록으로든 이야기를 남기는 목적은 결국 자신의 깨달음이나 교훈 혹은 경계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다. 먼저 살고 경험한 이들이 후대에 남기는 가장 훌륭한 무형의 유산이라고 믿는다. 먼저 살았던 이의 의무를 다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 이상문(의성 축협 조합장) 

 

◆ 이상문

의성군 금성면 최연소 면장에 임명되어 ‘행정 신화를 만든 청년 면장’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의성군 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를 거쳐 2004년 의성축협 조합장 선거에 나서서 승리한 이후 2019년 5선에 당선되었다. 지역 사업 활성화를 위해 농협중앙회 이사 선거에 도전해 거대 축협 조합장을 제치고 2등을 차지한 후 이 역시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임기 동안 ‘미스 의성 마늘소’ 선발을 비롯해 ‘의성 마늘소’ 홍보에 적극 나서는 한편 마늘소 전문식당 ‘덕향’을 열어 축산농가 소득 향상과 지역 경제 활력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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