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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나서 성공한 줄 아세요?”

잊을 수 없는 사람들

  • 입력 2023.03.17 16:12
  • 기자명 추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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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금오전자 대표
김재원 금오전자 대표

 

“나 회사 그만둬야겠어.”

결혼을 해서 몇 해 지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불쑥 사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아내가 그 말을 듣고 나를 안방으로 데려가더니 수표 다발을 내놓았다. 1,500만원이었다. 

“당신이 불쑥 회사를 그만둔다고 할 것만 같아서 내가 모아뒀어요. 근데 지금껏 모은 게 이것밖에 안 돼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눈물겹게 모은 돈이었다. 새벽 4시에 몰래 일어나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스카치 테이프로 가장자리를 꼼꼼하게 여민 뒤 우유와 신문을 배달했다. 아이들 돌보기 벅찼을 텐데 그렇게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새벽일을 했던 것이었다. 

“아직은 회사 다니세요. 지금은 그만둘 때가 아니에요.”

결국 아내의 간청에 다시 눌러앉았다. 독립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부지런히 모았다. 회사에서 일찍 퇴근을 하면 보일러 청소를 하러 다녔다. 아내가 낮에 영업을 해둔 집들이었다. 주변에 “남편이 보일러 수리를 잘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닌 덕분이었다. 

하루 일과는 늘 자정 무렵에 마무리됐다. 곧장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가 잠시라도 산책을 했다. 가족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절, 그것이 우리가족의 여가 활동이었다. 

 

어머니와 아내 한 목소리로 당부했던 말

“형제부터 돌봐야지요.”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아내는 형제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지론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용돈이 늘어날수록 “형 동생들도 살펴보라”고 당부했다. 

형님이든 동생이든 돈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기꺼이 빌려주거나 지원했다. 아무리 형제를 돕고 싶어도 아내가 반대하고 나서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내게 늘 말했다. “맏형은 부모나 마찬가지예요” “가화(家和)가 있고 난 후에 만사성(萬事成)이 나오잖아요. 형제가 다 편안해야 사회 활동도 편히 할 수 있지요” 그 말들이 모두 우리 형제 사이를 살찌우는 좋은 자양이 되었다.

형제들도 네 것 내 것 따지는 일이 없다.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집안을 정리하는데 장롱에서 6,000만원이 나왔다. 그 돈을 막내에게 건넸더니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 같이 밥 먹을 때 공금으로 씁니다.”

막내 덕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형제들이 더 자주 만난다.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잘사는 것”

아내는 때로 선생님 같았다. 

“내가 사장 되고 돈 버는 건, 내가 똑똑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나를 돈 벌게 해주는 주변 사람들 덕분이에요. 내 능력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지인들, 그리고 직원들이 있어서 돈을 버는 거에요. 그러니 늘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 하고 잘 지내세요.”

처음 공장을 시작할 때 1년 동안 회사 안 빠지고 출근 잘한 직원들에게 금 한 돈을 선물했다. 고마운 마음 반, 격려의 마음 반이었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애착을 가지고 회사를 더 열심히 다녔다. 모든 직원이 금을 다 받았을 즈음에는 직원들과 해외 여행을 갔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직원들에게 보상하고 또 격려를 하니 회사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조언이 큰 몫을 했다.

내 인생에는 네 분의 스승이 있었다. 가정에는 늘 인내하고 자식들을 믿어준 어머니, 이웃과 베풀며 사는 법을 가르쳐주신 아버지, 형제간의 화목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수시로 일러준 아내가 있었고, 사회에서는 사회생활이 뭔지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아버지처럼 알려주신 이재욱 노키아티엠씨 명예회장님이있었다. 주변이 이렇게 훌륭한 이들이 있어서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잘 살아온 것 같다. 하늘은 내게서 어린 시절의 유복과 큰 유산을 앗아간 대신에 그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스승들을 내려주셨다. 이렇게 복 받은 인생이 있을까.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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