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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키다리 아저씨’ 은혜 갚으려 평생 기부 실천했어요”

대구 키다리 경찰관, 모교에 이름 딴 장학금 이어진다
윤흥용 대구 성서경찰서 경위, 32년 선행이 장학금으로 이어져
지난 달 모교인 성서초등학교 졸업생에 윤흥용 장학금 수여

  • 입력 2023.03.06 09:00
  • 수정 2023.03.08 13:26
  • 기자명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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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용 대구성서경찰서 경위
윤흥용 대구성서경찰서 경위

 

“이번 졸업부터는 경위님 이름으로 장학금을 수여하는 건 어떨까요?”

지난해 11월 윤흥용(58) 대구 성서경찰서 교통사고 조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대구 성서초등학교 정종만 교장. 윤 경위가 자신의 모교인 성서초등학교 결식아동을 위해 21년째 이어온 기부금이 2,300만원을 넘어가자 졸업생들에게 윤 경위 이름으로 장학금 내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정 교장은 “교직 생활 35년 동안 이렇게 장기간 기부를 이어온 분은 거의 기억이 없다”면서 “모교에 선배의 이름을 딴 장학금이 수여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키다리 경찰 아저씨’ 윤 경위는 첫 월급을 탄 1991년부터 기부를 시작했다. 이후 32년째 매달 월급의 일부를 떼어 기부를 이어왔다. 현재는 8개 단체에 29만5,000원에 이르는 돈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간다. 이 중 모교인 성서초등학교에는 결식아동 돕기로 매달 9만원씩 21년째 기부를 했다. 2011년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시작되자 그의 기부금은 교재 구매 비용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얼마 후 교재도 무상으로 제공되기 시작해 기부금은 용처를 잃었다. 지난해까지 총 2,300만원이 넘는 금액이 통장에 차곡 차곡 쌓였다. 

학교 측은 기부자인 윤 경위에게 쌓인 기부금을 졸업생 장학금으로 사용하자고 건의해 동의를 얻었고, 올초 졸업생 11명에게 윤 경위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수여했다. 

지난달 6일 윤 경위는 내빈 자격으로 졸업식에 참석, 축사와 함께 장학 증서를 직접 전달했다. 기부를 이어온 지 21년 만에 공식 석상에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축사를 몇 번이나 거절하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와 스승에 대한 존경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난 후 장학 증서를 전달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힘들게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 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누군가로부터 학비를 받아 졸업을 했습니다. 축사를 하는 동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윤 경위의 초등학교 6학년 때 찍은 졸업앨범 사진. 3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이어온 그는 이미 이때 소년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매 끼니 라면에 국수면을 넣어 동생들과 나눠먹었지만 항상 배가 고파 평균체중 미달이었다고 밝혔다.
윤 경위의 초등학교 6학년 때 찍은 졸업앨범 사진. 3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이어온 그는 이미 이때 소년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매 끼니 라면에 국수면을 넣어 동생들과 나눠먹었지만 항상 배가 고파 평균체중 미달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30년 넘은 기부활동 원동력은 지독하리만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다. 병석에 누운 부모님과 동생들을 챙기느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다. 학교에 도시락도 못 싸가기 일쑤였는데, 친구들이 나눠준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할 뻔했을 때 이를모를 독지가의 도움으로 겨우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경찰관이 된 후에도 어려운 이웃을 보면 선뜻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정기 후원을 해오곤 했다.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준 사연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의 선행이 수면에 드러난 것은 2005년이었다. 윤 경위로부터 손주들의 급식비를 4년간 받아온 할머니가 경찰서를 찾아오면서부터다. 2021년에는 언론을 통해 그의 모든 선행 사실이 알려지자 지인과 가족들도 ‘선행은 하는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는 꾸준한 선행과 공로를 인정받아 행안부장관과 국방부장관, 경찰청장 등으로부터 받은 표창장만 54개나 받았고, 2020년에는 교육 발전과 학교 교육 지원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대구시교육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둘째 아들인 윤덕은(23·한예종 성악과3)씨는 “공무원 월급에 남몰래 30년간 기부를 이어온 것이 자랑스럽다”며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상에 도움이 되는 빛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료였던 손대호 전 성서경찰서 사이버 팀장은 “20년 넘게 가깝게 지냈지만, 윤 경위의 선행을 2년 전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며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고 범죄자들에게는 추상같지만 어려운 이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천성이 선비”라고 평했다.

윤 경위는 “어려운 시절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난 것과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도움의 손길을 준 40년 전 키다리 아저씨 덕에 나 또한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었다”며 “두 아들도 ‘사회생활을 하면 아버지 같은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하는데, 이러다 키다리 집안이 될 것 같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윤 경위의 아들(왼쪽 윤덕은(23·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3) 오른쪽 윤덕민(26·계명대 산업디자인과4))들도 아버지같은 ‘키다리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밝혀 이들은 키다리 가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경위의 아들(왼쪽 윤덕은(23·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3) 오른쪽 윤덕민(26·계명대 산업디자인과4))들도 아버지같은 ‘키다리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밝혀 이들은 키다리 가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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