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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기다리다 잠든 아이 보며 ‘1등 딸기’ 욕심 내려놓아

귀농일기
김희수•차선정 부부(하담원)

  • 입력 2023.02.16 09:00
  • 수정 2023.03.06 09:44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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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왼쪽) 차선정(오른쪽) 부부가 김하수(중앙) 청도군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희수(왼쪽) 차선정(오른쪽) 부부가 김하수(중앙) 청도군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보, 꼼짝없이 바빠지기 전에 제발 치과부터 갔다 와.” 

“여보, 딸기 쏟아지면 꼼짝 못 하니까 내일은 블루베리 화분 꼭 하우스에 넣자.” 

“우리는 딸기 따면 바빠서 모임에 잘 못 나와요.” 

겨울이 시작되기 전부터 항상 우리 부부의 이야기는 딸기 따기 전에 모든 일들을 마무리하자는 것으로 농사 계획이 시작된다. 딸기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농사로 우리 같은 성격은 새벽에 시작해서 밤늦도록 일을 해야 끝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도시에서 생활을 하다가 큰 아이가 일곱 살, 작은 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경북 청도로 귀농을 했다.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로 그때 마흔넷이었다. 귀농을 하기 전에 주변에서 반대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어릴 때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 농촌에서 부모님께서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아는데, 농사는 일일이 사람 손이 가야 하며 농번기 때는 아이들 손도 모자라 강아지도 일을 시키고 싶은 심정으로 바쁜 나날들이라 농촌 생활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는 말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요즘은 농촌도 옛날과 달라서 많이 기계화되어 사람 손이 예전보다는 덜 가며, 농촌에서도 자기만 열심히 노력하면 큰돈은 안되어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덜 받으며 물질적ㆍ심적으로 여유를 가지며 살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내 주장을 펼치기도 했었다. 

그 당시 우리 부부는 도시 생활의 각박함과 숨 막히는 경쟁에 너무 지쳐 있었다. 

막상 귀농을 하여 딸기 농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했던 말들은 허공에서 떠도는 말이 되고 있었다. 농사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딱 말하기 좋은 정도의 말이었던 것이다. 농사의 기계화가 아주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농사일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구석구석에 필요로 했었고, 짜여진 직장 생활은 아니었지만 너무 많은 일들 속에서 이것저것을 해내느라 정신적으로 여유를 찾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홀로 계신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귀농을 하였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아버지께 맡겨 놓고 새벽에 하우스에 나가서 일을 하고는 밤이 되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딸기는 9월 중순쯤 모종을 본 밭에 정식을 하면 12월 초쯤 수확을 시작한다. 모종을 본 밭에 심어 놓으면 끝이 아니라 좋은 결실을 거두기 위해 계속 모종 관리를 해 줘야 한다. 

생명으로 키워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집중을 해서 온 정성을 다해야 제대로 된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해를 거듭할수록 느끼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조금이라도 농작물에 소홀하면 결과로 반드시 답을 하는 것이 농작물인 것이다. 

우리 부부는 도시에서 살던 아파트를 팔아서 그 돈을 하우스 짓는 비용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실패를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에 매달렸다. 

기본적으로 딸기의 당도를 올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환경을 만드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고, 딸기 수확을 할 때는 바구니에 1단으로만 담아서 서로의 무게에 눌리지 않게 하였다. 

딸기 포장을 할 때는 더욱 신경을 써서 완벽한 선별을 하고 색깔, 모양까지 맞춰가며 포장을 했다. 그래서인지 첫 농사임에도 불구하고 공판장에서 1위로 성큼 올라섰다. 

그럴수록 1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잠을 설쳐가며 일에만 몰두를 했다. 

포장을 하고 있으면 “띠리리 띠리리” 핸드폰 벨 소리가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끊이지 않는다. 

“엄마 언제와?” “엄마 바구니 몇 개 남았어?” “엄마 10시에는 와?” “엄마 빨리 와.” “엄마 잠와.” 7살 아들의 전화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있지만 그래도 어두워지면 엄마가 그리워지는 것이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남편은 항상 마음 아파했다. 

이런 생활을 2여 년 정도 반복하던 어느 날, 그날도 딸기 포장을 마치고 12시 넘어 집에 가니 아들과 딸이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자고 있었다. 

아들은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 칼과 파란 야구방망이를 머리맡에 올려놓고 잠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건넌방에 계시고 동생과 큰 방에서 자면서 나름 무서움에 한 행동이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에 같이 울었다. 

그다음 날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도시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살아가는 것이 싫어서 귀농을 했는데, 여기서도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경쟁에 매몰되어 버린 것 같아.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닐까?” 

남편도 나의 말에 공감하며 1등이라는 것에 마음을 비우자고 했다. 

그렇게 딸기로 시작한 첫 농사는 10년이 되었고, 아이들은 17살, 14살이 되었다.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지금도 ‘하늘 담은 농원’의 딸기를 찾는 고정고객은 늘어나고 있다. 한 번 맛본 손님은 “이제 우리 입맛을 어째? 다른 건 못 먹어. 책임져야 해” 하시며 즐거워하신다. 

그렇게 전화로 애타게 엄마를 찾던 아들은 사춘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지나가며 이젠 자기가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는 모습으로 훌쩍 자랐다. 간혹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아이들이 잘 컸나요? 라고 물으면 변명 같지만 “제가 간섭 안해서 그런가 봐요”라고 말한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믿음을 주며 아이에 대한 믿음을 갖고 기다려 주는 것이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 같다. 

1월6일 아들은 중학교를, 딸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날은 딸기 작업을 잠시 미루며 아이들 졸업식에 참석했다. 반듯하며 의젓하게 자라는 아들, 또래보다 생각이 깊어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는 딸. 두 아이의 모습 속에서 저 멀리 “엄마, 바구니 몇 개 남았어? 엄마 언제 와?”의 소리가 들리며 절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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