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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화산 폭발로 세계적 기후 재앙 조선 대기근 덮쳐 인구 35% 잃어

기고

  • 입력 2023.02.24 09:00
  • 수정 2023.03.06 09:5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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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대구한의대 교수
김성우 대구한의대 교수

  1815년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에 위치한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지난 2000년 이래 규모가 가장 컸던 화산으로, 9세기 중ㆍ후반 동아시아의 지각 변동을 가져왔던 백두산 화산보다도 2배나 강한 초대형 화산이었다(화산 폭발 지수 7). 참고로 백두산 화산의 화산 폭발 지수는 6.5정도라고 추산한다.

  탐보라 화산이 불러온 지구적 재앙

  탐보라 화산의 폭발로 지구의 기온은 2도 가량 급락했고, 지구 곳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재난이 발생했다. 특히 서유럽과 미국은 1816년이 여름이 없었던 해(a year without Summer)’라고 부를 정도로 혹한으로 인한 대흉작을 기록한 해였다. 기온 급강하가 가져온 혹한과 단기적인 과다 강우, 그리고 빠르게 찾아온 가을과 겨울 추위로 각종 작물들이 기록적인 흉작을 기록했고, 곡물 가격이 급등했으며, 양식을 구하지 못한 유럽의 농민과 도시민들은 시위를 벌이고 폭동을 일으켰으며, 강도 행각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아사하기도 했다. 1816-17년의 기근은 서구사회에서는 마지막 세계적인 기근이었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탐보라 화산과 그 영향에 대한 연구들이 엄청나게 진행되었으며, 특히 탐보라화산 폭발 200주년을 맞았던 2015년에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수많은 학술회의가 개최되었고, 그런 성과들이 수많은 논문이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면 한국의 사정을 어떠 했을까? 한국도 1816-17년은 서유럽이나 미국과 맞먹는 ‘여름이 없는 해’였다. 당시는 현재의 기후보다 1.2도 가량이 낮았던 소빙기(Little Ice Age)의 마지막 시기였다. 이 시기는 소빙기의 평균보다 기온이 0.6-0.7도나 더 하락하여, 600년에 걸친 소빙기 기간 동안가장 추웠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한국은 서유럽과 달리 1816-17년에 극심한 흉년과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 화산 폭발로 인해 평상시보다 강수량이 증가하면서, 성장기에 농업용수가 많이 요구되는 벼농사의 작황이 좋았기 때문이다. 밀, 보리, 감자를 비롯한 밭작물을 주로 재배했던 서유럽은 지나치게 많아진 강수량으로 인해 흉년을 맞은 반면, 한국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벼농사에서 놀라운 풍년을 구가했던 것이었다.

  최악의 대기근 6년 만에 두 차례 발생한 이유 

  필자는 2023년 1월 호 세계적 기후학 학회지인 Climatic Change ( SCI 급 국제학술지)에 위와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1810년대의 기후는 1815년의 탐보라화산뿐만 아니라, 1809년 동남아시아의 ‘미지의 화산’(화산 폭발 지수5)의 폭발 이후 1815년 탐보라 화산(화산 폭발지수 7)에 이르기까지 7년 동안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화산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곧 이 시기는 1809년 열대지방의 ‘미지의 화산(unknown volcano)’, 1812년 카리브해 세인트빈센트 섬(Saint Vincent Island)의 수프리에르 화산(La Soufriere Volcano), 1813년 일본 류큐 제도의 스와노세지마 화산(Suwanose-jima Volcano), 1814년 필리핀의 마욘 화산(Mayon Volcano)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는데, 이렇게 크고 작은 화산들이 7년 동안 무려 다섯 차례나 연속해서 폭발하는 상황에서 1811년 이후 지구 기온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1815년 탐보라화산의 폭발은 그러한 지구 냉각 상황을 한층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화산의 연쇄 폭발로 인한 기온 저하, 혹한, 단기적인 가뭄과 홍수와 장마, 이른 서리와 추운 겨울 등이 1809년 이후 1819년까지 11년 동안 지속되면서, 지구촌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자연적,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는 1809년과 1814년에 기록적인 흉년이 들어, 1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기근이 6년만에 두 차례나 발생했으며, 1812년 1월에 발생한 평안도의 홍경래 난은 이런 기온 저하와 잦은 재난이 빚은 사회적 재난이었다.

  1812년 6월부터 1813년 1월까지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는 바로 이 시기의 혹한을 견디지 못한채 모스크바에서 후퇴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기온 급강하와 잦은 재난의 결과, 1816-17년에는 서유럽에서 기록적인 흉작을 기록했으며, 농민들과 도시민들의 시위와 저항이 분출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1809년-1819년은 소빙기( 14세기 중반-19세기 중반)의 마지막 시기인 동시에 가운데 가장 추웠던 시기였으며, 각종 자연적, 사회적 재난이 집중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 한국에서는 1809-10년 기경대기근, 1814-15년 갑을대기근 등 두 차례 대기근이 발생하여, 350만여 명이목숨을 잃었다. 당시 인구(1400만 명)의 35%에 이르는 기록적인 숫자였다.

  연쇄적인 화산 폭발이 가져온 인류의 위기 조명 

  그 동안 1815년 탐보라 화산에만 주목해온 서유럽과 미국의 기후학계 및 역사학계는 1812-1813년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의 실패, 1816-17년 일본의 정상적인 작황, 같은 시기 러시아 지역의 밀 풍년 같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고, 설명하지도 못했다.

  필자는 ‘마지막 소빙기 시기’를 1809년으로부터 1819년까지로 확대하고, 대상 지역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벼농사지대로 확장하면서, 1815년 탐보라 화산에 주목해온 기존의 연구들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1809-1815년다섯 차례의 연쇄적인 화산 폭발이 초래한 각종 재해와 재난, 인류의 위기와 극복, 생태계의 복원이라는 관점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마지막 소빙기 시기’ 연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연구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번 연구를 계기도 한국학계도 이제 화산, 소빙기, 재난과 위기, 그리고 복원과 같은 서구학계의 관심사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연구가 앞으로 한국학계와 서구 학계에 큰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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