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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발명가보다 망원경으로 우주를 본 갈릴레오가 더 유명한 이유

발행인 칼럼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 입력 2023.02.28 09:00
  • 수정 2023.03.08 11:25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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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icature_강은주
Caricature_강은주

 

얼마 전 케이팝 그룹 ‘뉴진스’가 중국인들에게 애꿎은 비난을 받았다. 한지 홍보 영상에 출연을 했는데, 중국인들이 “중국 유산을 도둑질한다”고 억지 논리를 펼치며 악플을 달았다. 영상에는 전혀 그런 내용이 없다. 중국인들의 도를 넘은 ‘애국주의’가 보고 듣는 것까지 왜곡시킨 셈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소위 4대 발명품 모두 중국과 연관이 있다. 아쉬운 점은(중국인의 입장에서) 중국에서 발명된 것들이 막상 꽃을 피우고 세상을 변화시킨 건 항상 중국 밖이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의 주장대로 제지술도 분명 중국이 원조다. 그러나 중국에서 만든 종이의 품질이 가장 뛰어났느냐고 하면 그건 의문이 납는다. 세종실록에는 중국 사신 앞에서 불꽃놀이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 화약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처럼 중국이 원조지만 우리 조상들이 더 잘 만든 것들이 많다.

사실 세계는 누가 원조냐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는 그 ‘새로운’ 무엇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 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을 최초로 만든 나라는 일본이지만 이 대목에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마트폰을 통한 혁신과 변화는 분명 미국이 주도했고, ‘원조’는 큰 의미가 없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구텐베르크와 원리가 동일한 인쇄기술 등을 개발했지만 결국 혁명에 이르도록 변화와 발전의 기폭제로 사용하지 못했다. 한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훌륭한 문자를 가지고도 500년 가까이 배우기도 쓰기도 어려운 남의 나라 문자를 들고 끙끙댔다. -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가!

망원경의 역사는 ‘원조’ 논쟁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환기시킨다. 대개 망원경이라고 하면 갈릴레오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좀 이상하다. 망원경과 관련해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다 망원경을 발명한 사람도 갈릴레오가 아닌 까닭이다.

망원경의 역사에서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은 중국인들이다. 기원전 2000년 즈음에 렌즈를 만들었다. 기원전 750년쯤부터 아시리아인들이 크리스탈을 갈아 렌즈를 만들었고, 기원전 3세기 경에는 철학자 유클리드가 빛의 굴절을 연구한 기록을 남겼다. 아랍 과학자 알하젠은 렌즈에 관한 논문을 썼고, 베이컨은 그 논문을 읽고 ‘천체 망원경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이란 언급을 남겼다. 실제로 망원경을 발명한 인물은 네덜란드 한스 리퍼세이였다. 그런데 이 모든 인물들이 갈릴레오의 명성에 못 미친다.

심지어 갈릴레오 하면 떠오르는 지동설도 코페르니쿠스가 70년 전에 더 정확한 수학적 논리를 근거로 이미 입증을 했다. 갈릴레오는 만들어진 망원경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게 전부인데, 가장 유명해졌다. 이론가와 실재 발명가, 그리고 지동설의 ‘원조’이자 권위자인 코페르니쿠스를 제치고 망원경과 지동설 모두에서 갈릴레오가 가장 큰 유명세를 얻었다. 이유가 뭘까?

첫째는 지식의 대중화다. 루터는 성경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을 해서 성경을 대중화했다. 갈릴레오 역시 자기가 천체 망원경으로 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지동설을 대중에게 전달했고, 이와 함께 천체 망원경의 존재도 뚜렷하게 부각됐다.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수학 공식만 가득해서 읽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 결과 재판이 열릴 만큼의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갈릴레오의 가장 큰 업적은 종교적 편견, 혹은 중세적 관념과의 투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망원경을 보는 것 자체를 꺼렸다. 사람의 눈과 물체 혹은 대상 사이에 무언가를 놓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봤다. 맨눈으로 봐야된다고 생각했다. 도구가 신이 부여한 능력을 잘못 인도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적인 관념이었다.

이러한 관념은 포크의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포크가 유럽인들의 손에 쥐어지기 힘들었는데, 그것은 신이 주신 손가락을 버리고 막대기로 음식을 찍어 먹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망원경과 거의 쌍둥이 같은 발명품인 현미경의 역사도 주목할 만하다. 현미경은 누가 발견했는지도 확실치 않고 이를 널리 알린 인물도 갈릴레오에 비하면 무명이다. 망원경과 비교해 그 시대와 싸운 흔적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의식 혹은 사고방식에 불러 일으킨 파장과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중국은 지금도 기술에만 국한되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중국도 스마트폰 쓰고 인터넷 다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는 아니다. 기술은 있는데 관념은 전제 시대 같은 부분이 많다. 요컨대, 발명과 발견보다 그 새로운 기계나 문물이 촉발시키는 변화를 사회가 수용해서, 편견과 낡은 관념을 극복하고 사회와 구성원들의 사고가 발전해가는 것, 그것이 훨씬 더 의미 있다.

원조에 집착하거나 기술을 가져가는 것에 몰두하기보다 공동체의 의식과 사회적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국은 이렇게 위대한데, 왜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가’를 외치기보다 진정으로 위대한지, 한 국가의 위대함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곰곰하게 숙고하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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